조선 후기 대학자 추사 김정희도 스승이 있었네

추사 김정희 고택과 인근 화암사를 다녀와서

등록 2025.12.08 11:36수정 2025.12.0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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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예산 추사 고택.
▲ 충남 예산 추사 고택. 김병모

아침 햇살이 차다. 문득 추사 고택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지난 주말(6일) 아침, 겨우살이에 들어간 추사 고택을 위로라도 할 기세로 충남 예산으로 출발했다.

추사 고택에 들어서는 순간, 황량함이 그지없다. 해설사마저 쉬는 시간이란다. 이른 시각이라 고택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듬성듬성하다. 그들만으론, 예산 허허벌판에서 밀러 온 찬 바람을 막지 못했다. 그나마 고택을 감싸고 있는 것은 기둥에 걸린 푸른색 주련뿐이다. 고택 주변 분위기마저 홀로 뜬 달빛같이 쓸쓸하다. 많은 사람이 추사 고택을 찾아와 줬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황량한 들판에 고결함을 간직한 채, 외로움을 삭이며 우뚝 선 추사 고택. 마치 정치적 찬바람 맞으며, 제주도 귀향길에 오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심정 같다. 유배된 지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눈물 삼키며 제자 우선 이상적을 위해 세한도(歲寒圖, 1844년 헌종 10년)를 그리는 추사 선생의 마음이랄까. 세한도를 그리면서 세상의 인심을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야'라.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비로소 안다는 의미이다.

사랑채에 들어서자 필자의 눈에 띈 것은 댓돌 앞에 세워진 돌기둥이다. 이 돌기둥은 추사 선생이 사용했던 해시계 받침대이다. 돌기둥에 선명하게 보이는 '석년(石年)'이라는 추사체가 이채롭다. 추사 선생의 아들 상우가 새긴 것이라고 한다.

한 걸음 더 들어서니 안채가 보인다. 안채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 중, 유난히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와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이다.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과 나물이고,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자녀, 손자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평소 추사 선생이 섭생(攝生)과 가족의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했는가를 보여준 대목이다.

지난 봄철 어느 날, 추사고택 주변으로 활짝 핀 수선화에 취해 추사 선생과 인연이 깊은 근처 화암사를 가지 못했다. 일행마저 고택 주변 수선화에 홀려 있었다. 이번엔, 참 바람이 분 겨울 초입이라 추사 고택 주변으로 필자를 홀렸던 수선화도 없다.

고맙게도, 왕궁리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한 중년의 아저씨가 화암사 안내를 하겠단다. 그는 추사 고택 주변 이야기를 꿰뚫고 있었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중국 북송 시대 소동파 시인의 시구절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에서 나온 말로, 우리 삶의 가는 곳마다 고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의 안내로 화암사에 들어서자, 인적 없는 조용한 절간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과 인연이 있는 절간답게 무량수(無量壽), 무량수각(無量壽閣), 세한도(歲寒圖)가 절간 처마에 줄줄이 걸려 있다. 필자는 무심히 그 편액들을 바라본다. 그때 주지 스님으로 보이는 선승께서 오더니, 추사 선생의 화암사 인연을 술술 풀어낸다. 추사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 사위로 월성위가 되자, 영조는 예산군 신안면 왕궁리(추사고택로)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하사한다.

오석산 화암사 주변 역시 별사전(別賜田)으로 하사받으면서, 화암사(華巖寺)는 가문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원찰(願刹)이 된다. 추사 김정희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 거처하는 초의선사와 다선일미(茶禪一味) 교류로 불교문화에 익숙한 터라, 조선 최고 사대부 가문이었음에도 고향 예산에 내려올 땐 화암사에 수시로 들러 금석문 서체와 시문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추사 선생은 화암사 뒤편 오석산(烏石山) 병풍바위에 '시경(詩境)'과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란 글씨를 새긴다. 24세 때, 추사 선생은 청나라 연경에서 옹방강(1733~1818)을 뵙고 금석문 서론을 배운 후, 제자의 예로 '시경(詩境)' 예서체를 선물 받는다. 그는 스승의 학문과 덕망을 닮고자 화암사 뒤 바위에 시경 글씨체를 새긴 것이다. 시를 읊을 만한 좋은 경치란 의미이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역시 이 절집에 석가모니를 모신다는 의미로 새긴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의 속내는 스승 옹방강의 집 대문간에 걸려 있는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주련을 보고, 스승을 흠모하는 마음을 담아서 새기지 않았나 싶다. 당시 중국 청나라에서는 대문호이자 석학 소동파 시인을 석가모니와 빗대 '천축고선생'이라 했다고 한다.

사실 추사 김정희가 당시 청나라 대문호이자 석학 옹방강을 연길 초행길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북학파의 거두이자 스승 초정 박제가(1750~1805)의 제자 사랑 덕분이기도 하다. 초정 박제가는 연경에서 중국 석학들을 만날 때마다 제자 김정희의 천재성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중국 석학들은 추사 김정희가 궁금했으리라. 추사 김정희를 만난 옹방강은 서슴없이 '경술문장, 해동제일(經術文章, 海東第一)'이라 말한다. 학문과 문장에 관한 한 추사 김정희가 조선의 제일이라는 의미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당대 추사 김정희 같은 대학자도 스승의 뒷받침이 있었다. 필자 역시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추사 김정희와 초정 박제가 그리고 옹방강 간 돈독한 사제의 정을 시샘이나 한 듯, 화암사 뒤 병풍바위 주변을 한참 서성였다.
#예산추사고택 #화암사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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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오마이뉴스, 대전일보 등 언론사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로 교육과 역사 문화, 여행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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