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굶고, 누군가는 버린다" 학교급식 폐기 현장서 시작된 변화

[인터뷰] 법적 공백 메우고 규제혁신 이끌어낸 오종민 사무관의 3년간의 여정

등록 2025.12.09 15:04수정 2025.12.0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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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소감을 밝히는 오종민 사무관
수상소감을 밝히는 오종민 사무관 오종민

지난 2021년 겨울,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 코로나19 확진으로 하루 1톤이 넘는 따뜻한 급식이 아무도 손대지 못한 채 그대로 폐기되고 있었다. 같은 날 오후, 학교 인근 무료급식소 앞에서는 한 끼를 기다리며 길게 줄 선 어르신들의 지친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떠오른 문장은 단 하나였습니다. '누군가는 굶고, 누군가는 버린다. 이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경기도교육청 오종민 사무관(현 용인 성지고등학교 교육행정실장)이 지난 8일 제31회 늘푸름환경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예비식 기부' 시스템의 출발점을 이렇게 회상했다. 다음은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이메일로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법적 공백을 메우기까지의 3년

오 사무관이 마주한 현실은 제도적 공백이었다. 학교급식법과 식품위생법 어디에도 '예비식 기부'라는 개념이 없었고, 식중독 발생 시 책임 소재도 불명확했다. 기부를 위한 조리·보관·운반 기준 역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니까 쉽게 동의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죠."

가장 큰 걸림돌은 법령 해석이었다. '미배식 음식물 재사용 금지'를 규정한 식품위생법 조항이 예비식 기부에 저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학교 현장에서는 "사고가 나면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현실적인 두려움도 존재했다. 인력도 예산도 없는 상황에서 누가 포장·운반을 담당할지 역시 문제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효원고 최영수 교장과 교직원들은 물론,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요. 우리가 포장·이동을 도울게요"라며 나선 인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다.

2025년 7월, 규제혁신의 전환점


 오종민 사무관
오종민 사무관 오종민

3년간의 꾸준한 제안 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다. 올해 7월 1일, 국무조정실 규제혁신단이 집단급식소의 예비식 기부를 일제 정비했다.

핵심은 명확했다.

"예비식 기부는 정해진 조건을 지키면 합법적인 기부 행위이며, 조리·보관·운반 기준과 당일 섭취 원칙을 지키면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제3조의 '미배식 음식물 재사용 금지' 조항이 기부식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교육부는 학교급식법 시행규칙 제6조의 '조리 후 2시간 내 배식' 규정이 학생 배식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예비식 기부 시 필요한 위생관리 기준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전국에 배포했다.

"이후 학교 현장의 질문은 '해도 되나요?'에서 '우리 학교는 어떤 방식이 가장 안전할까요?'로 바뀌었습니다."

폐기량 40~50% 감소... '따뜻한 한 끼'가 이웃에게

예비식 기부의 핵심 원리는 단순하다. 버려지는 잔반이 아니라, 배식되지 않은 '새 음식'을 당일 안전하게 기부하는 것이다.

배식 후 손대지 않은 예비식을 별도로 분리해 온도와 위생 기준을 지키며 보관하고, 당일 포장·운반해 기부한다. 학교, 사회복지법인, 푸드뱅크, 자원봉사자가 협업해 전 과정을 관리한다.

효원고의 성과는 뚜렷했다. 음식물 폐기량이 40~50% 감소했고, 월 50만 원 수준의 처리비용이 절감됐다. 지역 취약계층에 '당일 조리된 고품질 식사'도 제공됐다. 특히 시흥·수원·인천 남동구 등 여러 지자체는 '학교–푸드뱅크–지자체' 협력 구조를 구축해 도시형 순환모델로 확장하고 있다.

오 사무관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로 향한다. 지난해 국방부 수도방위사령부와 군부대 예비식 기부 방안을 논의했다. 2022년 기준 군부대 음식물 쓰레기는 11만 3,003톤, 처리비용은 189억 원에 달한다.

"군수품관리법 시행령 제28·29조만 개정되면 군부대도 합법적으로 기부가 가능합니다. 그 자체로 예산과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죠."

이 제안은 2024년 입법·정책 제안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노루페인트, 강원랜드 등 민간 기업도 구내식당·리조트에서 발생하는 예비식을 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세종시 찬성률 99.9%, 서울시교육청 정식 교육과정 채택

예비식 기부에 대한 공감대는 압도적이다. 세종시민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찬성률이 무려 99.9%에 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정식 교육과정으로 채택해 학생들이 직접 배우고 실천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단순히 '음식을 남기지 말자'를 넘어서, 쌀 한 톨이 밥이 되고, 그 밥이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전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 사무관은 이러한 경험이 장차 병영급식 개선, 기업 ESG 제안, 자원순환 정책 설계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올해 11월, 오 사무관의 예비식 기부 모델은 '2025 영국 그린애플 환경상' 우수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관련 기사: 코로나가 바꾼 운명... 버려진 급식 1톤 목격한 사무관의 혁신 https://omn.kr/2fb7z).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이 모델은 다른 나라가 그대로 가져가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차별점은 세 가지였다. 단순 기부가 아닌 법령 해석·조례·규제혁신까지 아우르는 제도 패키지, 세계 최고 수준의 식재료·위생시설을 갖춘 학교에서 이뤄지는 안전한 기부, 기부량·폐기물 저감·탄소 감축 등을 데이터로 증명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해 서울·세종·충남·전북 등은 조례를 제정하고 시범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사람은 무엇을 나누었느냐로 기억된다"

"이 모든 성과의 주인공은 학생, 교직원, 조리실 선생님, 자원봉사자분들입니다. 저는 제도를 정비했을 뿐입니다."

그는 최근 무료급식소 이용자가 급증한 대구 상황을 언급하며 "학교–푸드뱅크–복지기관을 연결하는 '대구형 도시 푸드브릿지'가 구축되면 전국 확산의 핵심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비전으로는 국가 AI 푸드브릿지 플랫폼을 제안했다. 학교·군·기업·공공기관·지자체를 연결해 남는 음식을 실시간으로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AI·데이터·배달·식품 안전·공공 인프라가 세계 최고입니다. 이 역량이 결합되면 세계 최초의 국가 단위 식품순환 플랫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때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없을 때 무엇을 나누었느냐로 기억됩니다. 공직자의 역할은 '확률'이 아니라 '의미'로 일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쪽에서는 따뜻한 급식이 버려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끼를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선다. 그 사이에 다리를 놓은 한 공직자의 여정은 이제 대한민국 전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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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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