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화장실에서 본 야학 교사 모집 스티커가 이정현을 교육자의 길로 이끌었다.
사진제공 이정현
그 경험이 소중했다. 군 제대 후 다시 수능을 봤고 역사학과 대학생이 됐다. 새로 입학한 대학에서 늦깎이 대학생은 다시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물 위에 뜬 기름마냥 학교를 다니던 중 화장실에서 야학 교사 모집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멀지 않아서 찾아갔다.
"거기를 다니면서 '이건 또 나랑 잘 맞네'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많았지만 그때 처음으로 학교를 안 다니는 10대를 봤습니다."
낮에는 구두를 닦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학교밖청소년들, 부모나 가족 없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을 만나고는 큰 부족함 없이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처럼 치열하게 살지 않은 자신의 삶이 부끄러웠다. 그들로부터 진짜 삶을 배우면서 자신의 지식을 나눴다. 스물 셋부터 5년 가까이 밤이면 야학 자원교사로 살았고, 자연스럽게 교사의 꿈을 키웠다. 그 열망으로 대학원에 가고, 중등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터였다.
제자들의 신음에 뭐든 해야 했다
그때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대안학교에서도 교사로서 진심을 다했다. 수습 30만 원으로 시작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생활하길 6년, 사직서를 냈다. "아이들의 그 다음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따로 졸업은 없지만 검정고시에 합격하거나 대학에 가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대안학교를 떠났다. 대학 입학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생계전선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기술을 가르치거나 따로 직업 교육을 하지 않았다. 성인이 돼도 대부분 취업을 못하고 아르바이트나 겨우 하면서 지냈다. 그것도 오래 지속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성인기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해답을 찾고 싶어서 사직 후 박사과정을 준비했지만 탈락했다.
"다음해 복직을 했는데 예전처럼은 못 하겠더라고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해서요. 진전되는 것도 없이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는 수업을 또 하는 데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은 부모도 없이 우리한테 모든 걸 다 맡기는 거잖아요, 미래를 잘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데 아이들의 자립이 너무 요원해 보였습니다."
복직 후에는 인턴십 프로그램 시도 등 자립 영역을 계속 고민했다. 그러던 2012년 봄, 결정적인 사건을 맞았다. 학교를 떠난 후에도 대안학교 교사들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한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미 많은 제자들이 "사라지는" 두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입원하거나 잠적하고, 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친구들. 연락이 두절됐다가 나중에 사망한 걸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제자들이 신음을 하며 어딘가에서 널브러져 있는 느낌이었어요. 뭐든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이제 고립·위기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일은 "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이 됐다.
마침 그때 성남시에서 마을형 사회적기업 창업팀을 지원하는 공모사업을 하고 있었다. 되든 안 되든 우선 도전하기로 했다. 마감이 오후 6시인데 5시 50분까지 이름을 못 정하다가 간신히 '일하는학교'로 지원서를 냈다. 직접 '일을 하며 배운다'와 '일에 대해 배운다'는 의미를 담아서. 다행히 공모사업에 선정됐고 협동조합을 띄워 13년을 달려 왔다.

▲ 공모 마감 10분 전에 정한 이름으로 일하는학교는 13년째 달려왔다. 창립총회 모습.
사진제공 이정현
동굴 밖으로 나올 용기를 건네다
고립·위기 청년들이 '일하는' 사람이 되는 건 예상보다 훨씬 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경계성 지능인 친구도 있고, 많은 친구들이 심리·정서적으로 불안과 우울감이 컸다. 그러다 보니 출근시간에 맞춰 일터에 가는 것도 힘들고 일을 시작하더라도 한 번 심리적인 타격을 받으면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라도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곤 했다.
일터와 연계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했다. 인턴십이 가능한 곳을 찾기 위해 일일이 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위기 청(소)년에 대한 설문지를 돌렸다. 그러면서 "이런 친구들이 여기 와서 일경험을 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100군데도 넘게 돌아도 허락하는 곳은 손가락을 꼽았다. 고맙게도 수공예 공방, 타이어 가게, 디자인 회사, 음식점 등 몇몇 업체에서 인턴십을 허락했다. 그 의미가 크다고 그는 강조한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른이 생긴다는 게 커요. 일반 아르바이트는 평가받는 곳이잖아요. 좀 늦거나 힘들어하는 걸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곳은 아니잖아요. 그와 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른이나 사회에 대한 불신이나 두려움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죠."

▲ 자신의 동굴에서 나온 이들과 함께. 청년소모임의 제주여행.
사진제공 이정현
일하는학교는 2023년부터 고립·운둔청년 지원사업도 새로 만들었다.
"운둔 청년들은 바로 나오라고 하면 나오기도 힘들고, 외부 자극을 받아들일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 나왔다가 벽에 부딪히면 '역시 나는 절대 나가면 안 돼'라는 생각이 고착되더라고요. 무턱대고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온라인으로 만나는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고립청년 일상회복 지원사업, 괜찮은 하루!'이다. 직접 대면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처음엔 온라인에서 참가자가 스스로 정한 미션을 실천하고 인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일 물 한잔 마시기, 11시 전에 일어나기, 하루 한번 하늘 사진 찍기' 같은 미션들을 이루어내면서 참가자들은 자신만의 동굴 밖으로 나올 용기를 얻는다. '안무서운 공간에서 안무서운 사람들과 함께 해요! 나만의 속도로 조금씩 천천히 성장해 볼까요?' 포스터 속 홍보문구처럼 나만의 속도를 찾다보면 '괜찮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괜찮은 하루'에 동참한 한 참가자는 일하는학교 유튜브 영상에서 "물속에서 나를 끄집어내 구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누군가한테 말을 못 붙였는데 프로그램 하고 나서 스몰 토크를 하게 됐다. 너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게 아니고 한 10% 정도 바뀐 것 같다. 근데 이 10%가 저한테는 너무 크다"고 소감을 전했다.
여전히 불안한 청년들도 있지만 이제 안심이 되는 제자들도 많아졌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안정적으로 사는 친구, 사회복지사가 돼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선터에서 일하는 친구도 있다. 일하는학교를 통해 성장한 50명이 넘는 청년들이 일하는학교를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20년 전 첫 제자를 지금도 만나고 있으니까. 그래서 정현은 처음 상담을 오는 청년들에게 말하곤 한다. "우리 오래 만나요."
"상담할 때 많은 경우 일종의 이용자 마인드가 있어요. 사회복지서비스처럼 자신한테 뭘 해줄 건지를 묻죠. 그럴 때면 나는 해달라는 걸 해주는 사람도, 이걸로 실적을 내야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좋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같이 해결책을 만들어갈 거라고 설명하죠. 우린 오래 만날 거고 올해는 아주 짧은 과정일 뿐이라고요."
청년들의 성장을 말하지만 정현 스스로도 폭풍 성장을 했음을 느낀다. 일하는학교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안학교 교사 경력뿐이던 그가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사람과 돈을 모으고 청년들한테 미래 비전을 심어주는 일을 하게 될지는 생각도 못했다. 모두 해본 적 없었지만 안 할 수 없는 상황을 계속 맞닥뜨리다 보니 여러 일을 할 줄 알게 됐다. 그래서 청년들을 만나면 말한다. "특별한 사람이 뭘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고 노력하다 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또, 견디는 힘도 많이 생겼다. 힘들고 지치는 일이 늘 있어도 계속 힘을 내고, 잘 살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근력이 늘어나는 것처럼 하루하루 고통을 견디는 힘이 늘어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자주 말한다.
"지금 되게 힘든 것 같잖아요. 내년엔 지금보다 2배 힘든 걸 견디고 있을 거예요. 지금 이만큼 견뎠다는 건 여기까지 여러분이 커지고 강해졌다는 뜻이에요. 최소 여기까지는 견딜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지자체가 관련 예산을 전부 삭감해서 2년째 1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은 것을 비롯해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그가 터득한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그는 여전히 믿는다. '생각을 품고 있으면 세상에 너무 많은 사람과 돈과 기회가 있어서 만나게 될 때가 온다'고.
어려움에 처한 우주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 일하는학교의 10년 역사를 담은 사진들 앞에서. 이정현은 일하는학교를 찾는 청년들에게 “우리 오래 만나요”라고 말한다.
신정임
인터뷰를 끝내면서 조금은 형식적인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신중하게 답을 고르던 그가 긴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실 이런 청년들이 주변에 많이 있을 겁니다. 되게 무책임하게 일을 그만두거나 일을 너무 못해서 힘들게 하는 청년, 많이 버릇없이 굴거나 동료들과 밥을 따로 먹는 등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젊은이 등등. 이런 친구들 중 상당수는 결핍이나 어떤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관계가 잘 형성되면 그 연유를 알게 될 가능성도 크지요. 이런 친구들을 만난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한번 이해하고 품어주세요. 그러면 좋은 일터나 좋은 어른의 경험을 하면서 그 청년이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될 겁니다."
20년 동안 함께 해왔음에도 정현은 아직도 고립·위기 청년들과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바닷가에 청년의 삶 연구소를 만들어서 청년들의 아지트로 삼고 싶다. 또, 지금껏 만나온 청년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만들고도 싶다.
"청년들이 자기 과거를 되게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아예 망각하고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를 온전히 복원하고 좋은 해석을 하면 '내 삶이 괜찮았구나'도 느끼고, 앞으로 살아가는 힘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길을 못 찾는 형 누나들이 자기에게 맞는 직업을 가지고 꾸준히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일." 이정현이 이제 중3인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설명한 말이다. 바닷가에 청년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이루기까지 도시에서 아직 그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많은 이들의 후원과 응원도 필요하다. 그가 비영리단체에 재정 후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심스럽게 전했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너무도 소중한 하나의 우주이잖아요.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그 우주를 많은 사람이 붙어서 돕는 겁니다. 이렇게 열심히 돕는 사람들을 많이 두는 게 정말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선 재정 후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후원 참여]
https://box.donus.org/box/workingschool/youth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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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을 믿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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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없고 무책임하게 관두는 청년, 딱 한 번만 품어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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