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왓푸-홍낭시다 복원사업 준공식 이 11월 24일 라오스 참파삭 세계유산 왓푸사원에서 열렸다. 다라니 폼마봉사 라오스 문화관광부 차관(앞줄 왼쪽) 이귀영 국가유산진흥원장(앞줄 오른쪽), 백경환 국제협력사업팀장(뒷줄 오른쪽)
국가유산진흥원
폐허에서 시작된 첫 문화유산 ODA
백 팀장이 처음 홍낭시다에 도착했을 때, 사원으로 가는 길에는 다리조차 없었다. 현장에서 사무소까지 2km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걸어야 했다. 왓푸 주신전은 이미 여러 선진 복원국이 맡아 들어온 뒤였다. 한국에 배정된 구역은 그들 사이에서 '관심 밖의 변방'에 가까웠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첫 ODA였습니다. 참고할 사례도 없었습니다. 이미 현장에 와 있던 나라들도 한국이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죠."
남아 있는 자료도 거의 없었다. 프랑스어 조사보고서가 전부였고, 현장은 라오스어로 소통해야 했다. 저녁이면 그는 라오스 TV를 틀어놓고 단어를 외웠다. 다음날 현장에서 현지인에게 뜻을 묻고, 다시 익혔다. 더디고 조심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 시간이 현지인들의 마음을 여는 첫걸음이었다.
어느 날 그는 마을 축제에 초대됐다. 일곱 집에서 '귀한 손님'이라며 소 내장을 생으로 먹는 전통 음식 '마피아'를 내놓았다. 백 팀장은 일곱 번 모두 먹었다. 그리고 일주일을 화장실에서 보냈다. 그는 말했다.
"그때, 이곳 사람들이 나를 받아줬구나 느꼈습니다."

▲홍낭시다 복원 전(위) 복원 후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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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 선진국 방식과의 차이를 만든 선택
전기조차 부족한 현장에서 최신 장비는 의미가 없었다. 선진 복원국들은 체계화된 장비와 매뉴얼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한국은 처음이었다. 백 팀장은 현장에 맞춘 '적정기술'을 다시 짜야 했다. 그는 미륵사지 석탑 복원 경험을 기반으로 기록체계를 라오스 환경에 맞게 단순화해 재설계했다.
3D 스캔도 도입했다. 손 측량의 오차를 줄이고 복원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기반을 다진 어느 날. 2019년, 홍낭시다 전체를 뒤흔드는 순간이 찾아왔다. 발굴 중 흙 사이에서 금빛이 번쩍했다. 금동요니였다. 라오스에서 청동요니가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금동요니는 처음이었다. 요니는 힌두교에서 여신을 상징하는 여근상이다. 남신을 상징하는 링가(남근상)와 결합된 형태로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음날엔 정육면체 석재 내부에서 금박과 크리스털 상자가 추가로 발견됐다. 현장은 흥분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몰려와 "금동요니의 가로·세로·높이가 얼마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숫자로 로또를 샀다고 한다.

▲홍낭시다에서 출토된 금동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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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요니 발견 당시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흙밖에 없는 줄 알았던 곳에서 갑자기 금빛이 튀어나왔습니다. 모두가 비명을 질렀죠. 다음날 금박과 크리스털 상자가 나오면서 현장은 완전히 들떴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동안 어떤 나라의 복원팀도 관심을 두지 않던 변방에서 라오스 발굴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번아웃의 시기, 그러나 라오스 동료들의 성장
2021년. 1단계가 끝나고 2단계가 시작되던 시점. 그는 번아웃을 겪었다. 임신한 아내를 한국에 두고 다시 라오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그를 버티게 한 건 라오스 동료들이었다. 초기 통역 담당이던 시빌라이(왓푸 세계유산 사무소)는 한국의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거쳐 복원 현장을 스스로 지휘할 만큼 성장했다. 한국에서 대학원 교육을 받은 캄콘과 찬티바는 라오스 국립대 교수와 홍낭시다 연구사가 됐다.
라오스 실무자들은 말했다.
"한국은 복원 전체 과정을 라오스어로 기록해 줬습니다. 대부분 선진 복원국들은 자국어와 영어로 결과만 남기는데, 한국은 과정을 모두 알려주는 나라였습니다."
이 차이는 라오스의 신뢰를 바꾸기 충분했다.

▲백경환 팀장의 홍낭시다 복원 현장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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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 ODA 모델
유네스코 전문가 자문단은 홍낭시다의 보존을 '정교하고 진정성 있는 보존복원,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획기적인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복원 사업이 '보통'이나 '주의 필요'로 분류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이 사업은 ODA 평가에서도 '2024년 ODA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처음엔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변방의 사원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첫 문화유산 ODA는 이곳을 라오스의 중요한 유산으로 되살려냈다. 변화는 더 크게 이어졌다. 라오스 정부는 내년부터 루앙프라방, 씨엥쿠앙 항아리평원 등 자국 전체 세계유산 관리사업을 한국과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 라오스가 한국을 신뢰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입니까?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한 점입니다. 복원이 공사가 아니라 기록·기술·교육이라는 사실을 라오스가 직접 체감했습니다."
ODA의 확장… 앙코르와트·파키스탄·마추픽추까지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은 라오스를 넘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파키스탄으로 협력을 넓혔다. 내년에는 중남미 마추픽추 보존사업도 추진한다. 백 팀장은 말했다.
"문화유산 ODA는 K-헤리티지가 개도국 자립에 기여하는 모델입니다."
기후변화는 세계유산을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는 AI 기반 진단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보존 전략도 준비 중이다. 백 팀장은 라오스를 이렇게 표현했다.
"라오스는 시간이 멈춘 나라입니다. 느리지만 정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홍낭시다와 함께한 12년. 강산이 변할 시간이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돌 하나하나를 세우던 그 시간들이 이제 제 마음에도 세계유산처럼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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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를 라오스에서 해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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