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물학회 개막식에 등장한 ‘Brown is the New Gold’ 슬라이드 국제물학회(IWA WDEC) 개막 연설에서는 배설물을 오염원이 아닌 자원으로 바라보는 세계적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황금 똥’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연사는 “Brown is the New Gold”라는 문구와 함께, 똥이 75%의 물과 다양한 유기물·영양소(N·P·K)를 포함한 회수 가능한 자원임을 강조했다.
한무영
12월 8일(현지시각),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물학회(IWA WDEC). 전 세계 물 전문가 1400명이 모인 개막식 스크린에 갑자기 반짝이는 '황금 똥'이 등장했다.
올해 연구부문과 실천부문 국제상 수상자 두 명은 모두 '배설물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실천한 전문가'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개막식에서 직접 발표에 나섰다.
그는 선언하듯 말했다.
"Brown is the New Gold(똥은 새로운 자원이다)."
똥을 버릴 대상이 아니라 회수해야 할 자원으로 보라는 메시지였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배설을 바라보는 세계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왜 갑자기 '똥'인가
기존 수세식 하수 시스템은 너무 많은 것을 멀리 보낸다. 물을 한 번에 수십 리터씩 흘려보내고, 배설물은 수 km의 하수관을 지나며, 오염물은 대규모 하수처리장으로 이동한다. 이 전 과정은 많은 에너지와 탄소를 소비한다. 즉, 물 마일리지, 오염 마일리지, 에너지 마일리지가 모두 길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런 '장거리 위생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배설물이 멀리 가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처리하고 자원으로 회수하는 '짧은 마일리지(short mileage)' 체계로의 전환이다.
이 변화는 지구보다 우주에서 먼저 구현됐다. 우주에서는 물을 버릴 수도, 배설물을 멀리 보낼 수도 없고, 모든 자원을 순환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NASA는 오래전부터 말했다.
"배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우주는 갈 수 없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오줌의 98%를 식수로 회수하고, 대변은 즉시 건조·압축해 폐쇄형 순환 구조로 운영한다. 이는 사실상 제로 마일리지 위생(Zero Mileage Sanitation), 즉 배설물이 그 자리에서 완전히 처리되는 형태다. 지구의 하수 시스템보다 훨씬 진보한 기술이 이미 우주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셈이다.
기후위기, 물 부족, 도시 확장, 고령화, 탄소중립 압력. 지구는 점점 우주와 닮아간다. 이제 물을 적게 쓰고, 배설물을 분리하며, 현장에서 처리하고, 자원으로 회수하는 시스템이 필수가 되었다.
국제물학회가 강조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길게 보내지 말고, 가까이에서 처리하라."
지금까지의 시스템은 수세식 기반, 장거리 하수관, 대규모 처리장, 많은 물과 에너지 사용이라는 구조였다. 새로운 시스템(WESS)은 물을 거의 쓰지 않고, 대변·소변을 분리하며, 현장에서 처리하고 자원으로 회수한다. 이동 거리를 최소화해 '짧은 마일리지' 시대를 연 것이다. 국제물학회가 '황금 똥'으로 상징한 변화가 바로 이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의 가능성
한국은 이 변화와 놀랍도록 잘 맞는 문화적·역사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첫째, 해우소 철학이다. 조선시대 해우소(解憂所)는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었다. 몸을 비우고 고민을 풀며, 부산물은 밭을 살리는 자원이 되었다. 배설물을 자원으로 보는 철학이 이미 존재했다.
둘째, 세대의 기억이다. 1960~1980년대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공통된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적 밭에서는 분뇨 냄새가 났지. 그 냄새가 나던 밭에서 나온 배나 무우가 얼마나 달았는지 몰라." 배설물은 토양을 살리고, 그 토양이 먹거리를 키우며,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일부였다.
셋째, 짧은 배설 마일리지다. 한국의 전통은 배설물을 멀리 보내지 않았다. 가까운 밭에서 활용했고, 그 순환은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지금 국제사회가 미래형 위생기술로 도입하려는 WESS 구조와 문화적으로 맞닿아 있다.
넷째, 기술과 문화의 만남이다. 한국은 기술 도입이 빠르고, 도시 밀도가 높으며, 환경적 감수성이 크다. 전통적 순환문화의 기억과 첨단 기술이 만나면, 새로운 위생 모델을 빠르게 제시할 수 있다.
배설물이 미래를 결정한다
국제물학회의 '황금 똥'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물을 많이 쓰고 긴 거리를 이동시키는 위생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우주처럼, 적게 쓰고, 가까이서 처리하며, 완전히 순환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은 해우소의 지혜와 현대 우주기술의 철학을 연결할 수 있는 드문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배설물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미래를 결정하며, 한국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토양을 가진 나라다.
세계화장실의 날을 기념하며 한 달간 이어온 12회의 연재를 마무리한다. 국제물학회 현장에서 확인한 흐름은 분명하다. 배설물의 마일리지를 줄이고, 물을 적게 쓰며, 그 자리에서 처리하고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향이 미래 위생기술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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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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