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인 13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 속초고등학교에 마련된 수험장을 향해 수험생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도 사탐(사회탐구)을 보는 수험생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이공계로 대학 진학을 계획한 수험생들도 상당수가 과탐(과학탐구)을 보지 않고 사탐을 봤다고 합니다. 2025학년도 수능과 올해 치러진 2026학년도 수능에서 사탐을 선택한 학생의 비율이 77%를 넘었고, 과탐만 선택한 학생은 겨우 22%에 그쳤다고 합니다.
소위 '사탐런 현상(사회탐구 영역 선택으로 몰려가는 현상)'이 일어난 데는 교육 정책의 변화 등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교육부가 2018학년도부터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통합교육을 추진해 왔고, 나아가 2028학년도부터는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공통과목을 응시하는 통합형 수능을 도입하려는 점이 하나의 이유입니다. 교육부는 이와 같은 취지에 맞춰 학생들이 계열에 상관없이 다양한 전공에 지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고, 나아가 대학에는 재정지원사업 평가를 통해 특정 과목 응시 제한의 폐지를 유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서울대와 카이스트와 같은 과기특성화 대학, 최상위 학생들이 몰리는 의학 및 약학 계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공계열 전공을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과탐을 필수로 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융합인재 양성 취지는 공감하지만
교육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이과의 구분이 융합인재 양성의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에 학생이 문과 이과를 강제로 선택하고 이에 따라 본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아가 미래 사회가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문과생은 사회 중심으로, 이과생은 수학과 과학 중심으로 공부하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교육 정책은 사탐런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공계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과탐을 보지 않아도 대학 진학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탐보다는 사탐을 공부하는 것이 좀 더 쉽다고 생각하다 보니 학생들은 과감하게 사탐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탐런 현상은 충분히 예측되었던 것이지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 방안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먼저 과탐을 선택하는 학생수는 전체의 22% 정도로 급격히 줄고 이들의 상당수는 최상위권 대학 또는 의학 및 약학 계열 지원자들인지 보니 상대적 경쟁이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 치열하게 벌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공계 전공을 선택해서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학생들이 이제 과탐을 선택하는 데는 더욱더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대학들은 이제 이공계 진학 신입생들이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적인 과학지식이 매우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학 입학 전 제대로 기초과학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을 데리고 대학 수준의 과학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기초과학 역량 평가를 통해 필요한 경우 기초과학 교과목을 먼저 이수하고 대학 수준의 과학과목들을 이후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 대학은 기초과학 수강생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관리하고 이후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대학이 이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대학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대학들이 고민하는 또 다른 문제는 이제 입학자원인 고등학교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이미 대학 진학자의 절대 수치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10년 후에는 급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이 학생들을 까다롭게 관리하기보다 (즉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낮은 학점을 부여하기보다) 학생들의 입맛에 맞게 후한 성적을 부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즉 학생이 갑이고 대학이 을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국공립대학들과 입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위권 대학들을 중심으로라도 대학의 기초과학 교육역량 제고 및 철저한 수업 관리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고등학교에 미국에서와 같은 AP(Advanced Placement)과정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AP제도는 고등학교 때 대학 수준의 교과목을 이수하는 경우,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해 줌으로써 대학 학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 학문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지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수학, 과학, 사회, 언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수학과 과학 관련 과목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것을 고려해 볼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아무래도 과도한 사교육의 문제나 지나친 학업 부담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사탐런은 보다 궁극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어쩌면 이제 이공계로 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즉 고등학교 시절 제대로 과학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다면 과학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과학기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서 요즘에는 초등학교부터 과학기술, 공학 및 수학(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교육에 더욱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최소한 수학 및 과학교육은 어느 정도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이 근간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며 과학기술 역량이 국가의 역량이 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뒤처지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가 밝을 수가 없습니다.
사탐런이 어쩌면 한 학생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선택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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