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금지 사명을 띠고 길 위에 서 있는 캐리어. 엄마가 노란 캐리어를 끌고 여행갈 날은 언제쯤 올까.
안소민
캐리어 가방이 여행 갈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점포 앞 주차공간을 확보하려는 가게들이 주차금지 표시용으로 캐리어 가방을 요긴하게 사용한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누가 발로 차지만 않는다면 한 자리를 미덥게 지킬 수가 있고, 일단 바퀴가 달려 이동이 용이할 뿐더러 사이즈도 적당하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그러나 캐리어 가방 입장에서 보자면, 앞으로 멀리 나가 콧바람 쐬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주차금지'라고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써놓은 저 캐리어 가방을 누가 여행길에 데려가 준단 말인가. 주차를 금하기 위한 화분, 의자, 물통, 박스 등 다양한 대체물을 보았지만 캐리어 가방은 처음이다. 신박하다 못해 어이없다. 캐리어는 이동하는 게 본질인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아니면 발상의 전환인 걸까?
하긴 남 이야기 길게 할 것도 없다. 엄마 집에는 캐리어 가방이 없다. 있지만 철 지난 옷이나 물건을 넣어두는 '비키니 옷장'으로 둔갑한 지 오래다. 당일치기 외출은 가능하지만 1박 조차 쉽지 않은 엄마에게 캐리어 가방은 있어도 쓸모 없는 물건이 되었다.
10년 전, 아빠가 고관절 골절수술에다 관상동맥우회술이라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수술을 연달아 받은 뒤로 엄마는 꼼짝없이 아빠의 간병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엄마 아빠 나이는 60대 중후반이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아빠의 간병을 오랫동안 무궁무진하게 수행할 거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저 수술 후 아빠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엄마는 아빠와 함께 거주한다는 상황만이 있었을 뿐이었다(대부분 노노간병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는 사이에, 어쩌다 보니 엄마는 10년 넘도록 아빠의 가장 충실한 간병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한 번씩 들르는 자녀들은 그저 '우리 엄마 힘들어서 어떡해... ' 입술만 달싹거릴뿐, 볼 일 마치면 각자 집으로 흩어지기 바쁘다.
어제 엄마를 모시고 외출하는 길. 늙은 부모를 돌보는 청년 간병인의 현실을 그린 영화 <허들>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자신의 간병인 처지에 대해서 슬쩍 운을 뗐다. 청년과 엄마의 차이점이 있다면 청년들은 이제 막 사회생활에 진입하는 세대이고 엄마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경제적 차이도 있겠다.
영화 <허들> 이야기로 가족 간병과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엄마는 요즘 즐겨보는 일일 드라마 스토리로 화제를 옮기며 '그래도 누군가를 돌봐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누가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좋은 거'라며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나는 그 말이 엄마가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다스리기 위한 '팔할은 서글픈 주문'이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말을 보태지 못했다.
엄마의 처지가 주차금지 사명을 띠고 길 위에 서 있는 캐리어 가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걸까. 아빠의 삼시 세끼와 간병을 책임지는 엄마. 엄마는 집 위에 서 있다. 노노간병의 해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의 오래된 고민이다. 엄마가 샛노란 캐리어를 가지고 며칠씩 잠을 자고 오는 여행을 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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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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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금지' 캐리어를 보며 엄마의 처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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