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소유'하지 않고 '빌리거나 되팔며 순환시키는 소비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발표한 소비문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 10명 중 6명(59.4%)이 "물건을 꼭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특히 19~34세에서는 그 수치가 76.2%까지 치솟았다. 같은 연령대에서 최근 1년 동안 렌탈이나 구독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응답도 2020년 30% 미만에서 올해 절반을 넘어섰다. 소비 트렌드가 명확히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 데이터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는 올해 7월 산업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렌탈 시장 규모가 2020년 5조 원대에서 올해 11조 원 규모로 확대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패션·전자기기·레저 장비 분야의 성장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전 렌탈, 명품 대여, 카메라 공유, 자동차 구독 등 소비 영역은 넓어졌고, 중고 리셀 시장까지 확대되면서 기존의 '구매 → 사용 → 폐기' 방식이 점차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단순 유행이 아니라 경제 불확실성과 가치 기준 변화가 만든 구조적 전환이라고 분석한다.
서울 강남에서 명품 렌탈 서비스를 운영 중인 박아무개(33)씨는 2년 전과 비교해 수요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초기엔 가방이나 시계처럼 비싼 제품을 렌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골프웨어, 행사용 의류, 촬영 패키지처럼 특정 상황을 위한 소비가 더 많다"며 "고객들도 이제 사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 접근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9월 발표한 자료에서 "2030 세대는 장기 투자나 보유 비용을 부담으로 인식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소비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쉽게 사서, 쓰고, 되파는 구조가 아닌, '필요할 때 접근하는 소비'로 이동한 것이다.
이런 변화의 핵심을 2030세대의 '경험 우선 가치관'에서 찾기도 한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물건은 오래 두고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잠시 이용하는 서비스'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과 출신 김상열(50)씨는 MZ 소비 변화를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가치 확장"으로 설명했다. 그는 물건을 장기간 보유하는 대신, 필요한 순간에 접근하는 방식이 경제적 불확실성과 공간 제약 속에서 합리적 선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소비트렌드 연구팀의 한 연구원 역시 "2030세대는 소유가 주는 안정감보다,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편의성과 다양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본다"며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수록 선택 비용을 줄이고 싶은 심리가 강해지면서 비소유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대 성향에 더해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도 한 이유로 꼽힌다. 모바일 기반 렌탈·공유 플랫폼이 다양해지며 이용 장벽이 낮아졌고, 명품·전자가전·패션 등 전문 분야별로 서비스가 촘촘해지면서 "빌릴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빠르게 넓어졌다. 과거에는 중고 거래나 대여 서비스가 번거롭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결제·배송·반납까지 전 과정이 간편해지면서 소비자들의 불편 요소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납 시스템의 변화가 시장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는 직접 매장을 방문해 점검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최근에는 방문 수거, 무인 반납함, 자동 검수 시스템 등이 확산되면서 '빌리고 돌려주는 과정' 자체가 일상의 부담 없는 소비 경험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렌탈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춰 시장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비소유 소비는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기본 옵션이 되고 있다. 결제부터 반납까지 모든 과정이 서비스화되면서, 소비자는 '얼마나 많이 보유하는가'보다 '얼마나 목적에 맞게 쓰느냐'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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