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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으로 장독대 만들다 진짜 옹기장이가 된 남자

전북 무형유산 '진안고원형 옹기장' 공개 시연회... 손내옹기 대표 이현배 옹기장

등록 2025.12.15 12:14수정 2025.12.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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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 이완우

지난 11일, 진안 백운면 정송(鼎松)마을의 손내옹기에서 전북 무형유산 '진안고원형 옹기장' 공개 시연회가 열렸다. 지역 옹기 전승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려는 지자체와 주민 30여 명이 참여한 자리였다.

손내옹기의 대표인 이현배 옹기장은 옹기가 발효 문화를 담아온 그릇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물레 시연과 옹기가마 운영 원리를 설명했다. 전통 질그릇 제작 기술, 장독대 조형, 지역적 옹기 양식 등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내용을 공유하는 실연 중심의 행사였다.


이현배 옹기장은 전직 호텔 쇼피스 디자이너에서 옹기장(甕器匠)의 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발효 문화의 깊이를 다시 빚고 있다. 그는 호텔 조리부에서 '쇼피스(showpiece: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예술 장식품)'를 제작하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옹기 만들기 전엔 호텔에서 초콜릿으로 쇼피스를 만들었어요. 외국인 고객이 많았던 탓에, 한국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장독대'를 선택했지요. 장독마다 뚜껑까지 만들어 덮어 장독대 풍경을 표현했죠.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오브제가 장독이었거든요."

쇼피스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질그릇 옹기장이의 '그릇'과 '조형'의 문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초콜릿 장독대 이야기는 의미가 있었다.

한국은 '장(醬)'으로 음식을 다스린다

초콜릿 장독대에서 실제 옹기로 옮겨온 이현배 옹기장의 관심은 결국 발효 문화에 닿아 있었다. 그는 세 나라의 조리 문화를 하나의 단어로 설명했다.


"중국은 불(火)로 음식 문화를 다스리고, 일본은 칼(刃)이 발달했습니다. 한국은 장(醬) 문화죠. 그 장을 품는 그릇이 바로 옹기이고, 그래서 옹기에는 발효 문화 전체가 녹아 있습니다."

발효를 위해 숨 쉬는 그릇, 야외에 놓여 자연과 온도와 습도를 교감하는 장독. 장독이야말로 한국 옹기의 핵심이라고 이현배 옹기장은 몇 번을 강조했다. 장독대의 형태와 제작 방식은 지역마다 달라, 전라도식 장독대에는 또 다른 미감과 기능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라도의 장독대는 형태가 확연히 달라요. 오늘 공개 시연에서는 그런 지역적 특징까지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이현배 옹기장은 물레를 돌리며 옹기를 만들면서 옹기 그릇의 입술(가장자리) 부분을 종이컵의 원리에 비교하여 숨은 기술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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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 ⓒ 이완우


옹기장들은 엄지손톱 끝을 조금 길게 남겨 둔다

이현배 옹기장은 다양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중 '씨육'은 그릇 '입술'의 턱·선·마무리 곡면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옹기장들은 오른손 엄지손톱 끝을 조금 길게 남기는데, 그게 바로 옹기의 '입술'을 만드는 데 필요해서 그래요. 종이컵도 입술이 말려 있잖아요. 그게 컵의 강성과 지지력을 만들어 컵의 기능을 하게 합니다. 옹기도 마찬가지예요. 이 입술이 완연하게 잡혀 있는 게 한국 옹기의 조형적 특징이죠."

엄지손톱으로 흙을 밀어 올려 옹기의 입술 부분을 만들면서 이현배 옹기장은 한국 옹기 조형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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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 ⓒ 이완우


옹기의 조형 원리는 사실 매우 단순하면서도 깊다고 한다. 이현배 옹기장은 장독의 단면을 설명하며 말했다.

"장독을 밑에서부터 잘라 보면, 그 안엔 뚝배기가 숨어 있어요. 옹기는 결국 뚝배기에서 출발합니다. 달항아리를 단면으로 보면 밑은 밥사발, 위는 국사발입니다. 밥사발과 국사발 두 개를 크게 만들어 붙이면 달항아리인 셈이죠. 제가 뚝배기의 단면을 직접 보여드릴 텐데, 보시면 왜 모든 옹기가 여기에서 출발하는지 이해되실 거예요."

이현배 옹기장은 옹기는 뚝배기에서 기본 형태가 출발하고, 그 형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장독·옹기·물독 등 다양한 조형이 형성된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안 손내옹기 옹기가마 아궁이
진안 손내옹기 옹기가마 아궁이 이완우

옹기가마에 지펴지는 장작불, 전시실의 옹기 작품들

손내옹기의 작업실에서 이현배 옹기장이 공개 시연회로 옹기 제작을 시연할 때, 야외 작업장의 옹기가마에는 장작불이 지펴지고 있었다.

손내옹기는 이현배 옹기장과 그의 아들과 두 딸이 함께 일하고 있다. 손내옹기에서 이물(37)씨와 이솔(35)씨는 진안고원형 옹기장 이수자로 선정되었다. 문화저널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바우(33)씨는 손내옹기 관찰형 참여자로 역할하고 있다.

옹기점에는 전체 지휘와 공정을 책임지는 큰일, 물레에서 작업하는 앞일, 옹기를 건조하는 등의 뒷일, 흙 작업과 나무 마련하는 등의 막일로 여러 가지 역할을 분담한다. 이곳 손내옹기에서 이현배 명장은 가족과 함께 역할을 분담해 수백 년 전통의 진안 정송 옹기마을을 이어가고 있다.

옹기가마는 굴가마라고도 한다. 가마 내부가 한 통으로 되었다 해서 통가마, 언덕에 용이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용가마라고도 부른다. 옹기가마는 약 15~30도의 경사면에 지었고 길이는 30m내외, 너비와 높이는 2m 내외다. 가마의 어깨 부분에 40~50cm 간격으로 창불구멍(내부 온도·불꽃 상태 확인, 산소량 조절, 연기·가스 배출 보조하는 구멍)이 있다. 가마를 경사지에 지은 이유는 불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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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손내옹기 옹기가마 아궁이 참나무 장작불 ⓒ 이완우


손내옹기 마당에 있는 옹기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손내옹기에서 제작한 다양한 질그릇을 살펴볼 수 있었다. 쌀독모심과 물독모심이란 이름의 질그릇 항아리가 눈에 띄었다. 쌀과 물을 저장하는 항아리인 쌀독과 물독을 '쌀을 모시고, 물을 모셨다'는 의미의 쌀독모심과 물독모심으로 이름 지은 이현배 옹기장의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물독모심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물독모심 이완우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쌀독모심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쌀독모심 이완우

진안은 인삼의 고장이다. 인삼을 보존하기 위해 더운물로 삶거나 증기로 쪄서 햇빛에 말리는 백삼(白蔘)과 건삼(乾蔘)이 오랫동안 있었는데, 증숙(蒸熟)하는 과정에서 백삼으로는 지나치다 할 한 고비를 넘어서며 오히려 고려인삼의 극치인 고려홍삼이 되었다고 한다.

전시실 앞의 돌 축대 앞마당에 증삼기(蒸蔘器)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고 있었다. 옹기는 발효뿐 아니라 증숙·보존까지 맡아온 생활 그릇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듯, 손내옹기 마당에서는 고려홍삼을 찌는 '증삼기'가 동시에 불을 올리고 있었다.

진안 손내옹기에서 고려인삼의 정화(精華)인 고려홍삼 증숙과 이 땅의 그릇인 고려도기의 전통을 이현배 옹기장의 '고려홍삼 증삼기'가 재현하고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증삼기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증삼기 이완우

오래된 미래, 전통 옹기가 다시 말해주는 것들

전북 무형유산 진안고원형 옹기장 이현배 선생의 공개 시연회 참관을 마쳤다. 그의 옹기가 이제 단순한 '그릇'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옹기는 한국인의 발효 문화, 기후, 삶, 미감이 응축된 '살아 있는 호흡의 그릇'이었다. 옹기는 빠르게 만들 수 없는 느림의 기술이 만든 발효 문화 용기였다.

발효 식품의 가치, 지속 가능한 재료, 느림의 미학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옹기는 '옛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그릇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옹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흙과 불, 산과 강, 마을과 사람이 함께 만든 문화 자산이다. 전통 질그릇 옹기의 역사는 '느림의 가치'를 다시 묻고 있다. 오래된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의 질그릇 옹기 속에 있었다.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옹기가마
진안 손내옹기 이현배 옹기장의 옹기가마 이완우

#진안고원형옹기장 #손내옹기 #이현배옹기장 #전통질그릇 #발효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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