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養正 창간호 『養正(양정)』 창간호(1924), 그러나 당시 내용은 일본어(한글도 더러 있지만)로 쓰여 있는 것이 많았다. 학교차원에서 이러한 글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등에서 양정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자료들의 한글화 번역을 서둘러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배들의 글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정고
- 현직에 있으면서 별도로 양정의 옛 문헌과 역사관을 관리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고등학교라는 한계 때문에 별도의 역사관 예산이나 지원이 많이 모자랍니다. 그렇다고 담당하는 제가 요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니, 학교재단이나 관리자의 관심이 없다면 전혀 진행되지 않는 일입니다. 다행히 학교에서 관심을 보여주어 유지는 하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습니다."
- 양정고 역사관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3점을 소개한다면?
"자료들에 순위를 매길 수는 없는 일이라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굳이 든다면 학교이기 때문에, 졸업앨범, 교지, 학교신문일 것입니다. 역사를 정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 자료이기에 이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그밖에 위창 오세창의 휘호를 비롯, 30여 명의 당대 으뜸 서예가가 학교에 써준 휘호, 순종황제가 써준 학교명 <양정숙(養正塾)> 현판, 100년 전 금고, 107년 된 교문(校門), 손기정 졸업장(1937), 100년 된 럭비공, 117년 전 졸업장(1908), 120년 전 교과서 등 많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학교와 관련은 없지만 조선고적도보 전질(15권)-1915~1935-,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어사전(문세영), 1800년대의 한양지도, 대한제국시절의 기념장(記念章) 등도 귀중한 보물입니다."

▲순종황제 친필 순종황제 친필 <養正塾(양정숙)> 현판
양정고

▲졸업증서 양정의숙 1회 졸업증서(1908) -왼쪽), 손기정(양정21회) 졸업증서(1937)
양정고
- 양정고 학생들이 <양정역사관> 이용 현황은?
"신입생이 들어오면 사흘 동안 신입생교육을 하고, 그 첫 번째 프로그램이 '양정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양정역사관을 견학합니다. 또한 창체수업(창의적 체험활동의 줄인말)으로 양정의 역사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현재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학생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역사관을 1시간 동안 개방하고 있습니다. 방문하는 학생은 매주 10~15명 정도입니다. 또한 외부인의 방문 시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개방합니다."
- 양정역사관을 관리하면서 어려운 점은?
"단위 학교의 역사관을 운영하다 보니 많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인적 자원이 전혀 없어서, 많은 자료가 그대로 묻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앞에서 말했던 교지(校誌)가 87호까지 발행되었는데, 그중 16권은 일본어 표기(광복이전 발행)의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부 진행 중이긴 하지만 많은 자료와 사진이 아직 디지털화되지 않았습니다. 자료는 시간적 한계가 있는 만큼 급선무인데 여러 난관이 있습니다. 정년이 7년 남았는데 그때까지는 디지털화시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욕심을 부리자면 양정의 소중한 소장품의 도록도 만들고 싶습니다."
김병수 선생과의 대담은 길게 이어졌다.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20여년 넘게 '양정의 산 역사의 기록'을 묵묵히 관리하고 있는 한 교사의 노력을 기자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열정의 교사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서울지역 학교 탐방(자료 협조 차 들른)차 알게 되었다. 그 숨은 노고에 손뼉을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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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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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7년 남았는데 그때까지 자료 디지털화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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