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안전요원이 식사를 하기 위해 푸트코트에 있던 한 고객에게 노조 조끼를 벗으라고 요구해 논란이다.
김연주(가명)씨 제공, 롯데백화점 홈페이지
서울 잠실의 롯데백화점, 그 거대하고 화려한 소비의 성전(聖殿)에서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난 10일 저녁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 8명 등 11명이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을 방문했다. 백화점 부근 쿠팡 사옥 앞에서 열린 집회 참석 뒤 저녁 식사를 위해 백화점 지하 식당가를 찾은 것이라고 한다. 식사하러 가는데 입고 있던 조끼를 굳이 벗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끼를 입은 채 백화점 식당가 입구에서 백화점 보안요원들에게 제지당하며 실랑이가 있었다. 이 장면이 찍힌 영상이 SNS에 공유되면서 논란이 됐다. 보안요원은 조합원들이 입은 조끼가 "손님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며 벗을 것을 요구했다. 조합원들은 이게 무슨 논리냐 싶었을 것이다. 시위 목적이 아닌 단지 밥을 먹겠다는데 의상이 문제라고 하니 나라도 당황했을 것 같다. 실랑이 중에 보안요원은 이런 말도 했다. "나도 노동자"라고. "노동조합원 조끼 입은 노동자를 혐오하냐"는 조합원들의 불만에 보안요원은 자기도 같은 노동자라며 혐오나 차별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짧은 대화 속에 나는 한국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병리적인 시선이 모두 응축되어 있음을 목격한다. '나도 노동자'라고 자인하는 보안요원이, 또 다른 노동자를 배제하는 장면.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주요 목표로 하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게 거부 사유다. 백화점의 보안유지를 담당하는 용역업체의 과잉 충성이 빚어낸 해프닝같은 한 장면에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담겨져 있다. 우리 사회 내면에 뿌리 깊게 박힌 '노동 혐오'와 국가주의적 '근로' 의식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극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근로(勤勞)'라는 이름의 국가주의
한국 사회는 유독 '노동(Labor)'이라는 단어에 경기를 일으킨다. 헌법과 법률, 그리고 정부 부처의 명칭은 여전히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를 고집한다. '근로(勤勞)'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으로, 사용자의 관점에서 수동적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상태를 미덕으로 인식하는 용어다. 반면 '노동(勞動)'은 인간이 생존과 자아실현을 위해 주체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뜻한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5월 1일은 1923년부터 전 세계 노동자들이 노동의 가치를 기념하던 '노동절'(May Day)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치며 노동의 의미는 근로로 대체되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의 노동을 약탈하고 신민으로 억압하고 고분고분하게 부지런히 일만 해야 하는 '근로자'로 악용해왔고, 정부 수립 이후 반공주의가 국시였던 국가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불온한 색깔을 덧칠했다. 노동은 국가권력에 저항하므로 통제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근로는 장려되어야 할 미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1963년 박정희 정권 시절 제정된 '근로자의 날 제정법안' 이후 이름이 '노동절'에서 '근로자의 날'로 바뀌었다. 이름이 이렇게 바뀐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공산진영에서 이날을 정치적으로 역이용"한다며 '노동'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들린다는 이유로 대신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의 '근로'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부지런히 일해서 애국하라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던 것이다. 이후 60년 넘게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어 왔지만, 노동계에서는 꾸준히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다행히 2025년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11월 11일부터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공식적으로 바뀌었다.
이번 롯데백화점 사태에서 드러난 "고객의 불편"이라는 감정의 실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어쩌면 화려하고 웅장한 소비의 공간에 '날 것 그대로의 노동', '저항 주체로의 노동'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아닐까. 자본은 상품이나 서비스 같은 노동의 결과물은 전시하길 원하지만, 노동의 과정이나 노동의 주체는 은폐하려 하려는 속성이 있다. 특히 노동의 주체가 노동의 결과물인 상품의 진실을 말 할 때 더욱 그렇다. 노동조합 조끼는 은폐된 노동의 진실을 드러내는 실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품만 전시되는 백화점이라는 환상의 공간에서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과 작업장에서 그걸 만든 노동자가 같은 공간에 전시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을(乙)들의 갈등, 그리고 내재화된 혐오
내가 더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보안요원의 태도다. 그는 백화점이라는 거대 자본의 대리인으로서 또 다른 노동자를 배제했다. 사실 그 보안요원도 노동을 혐오해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관행대로 취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보안요원이 특별히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또한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내재화된 혐오를 무의식 중에 나타낸 것일 것이다.
보안요원, 청소 노동자, 판매 직원, 그리고 그곳을 방문한 대다수의 고객들조차 본질적으로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노동자다. 정치인도, 의사도, 변호사도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노동자다. 불로소득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모두 노동자라고 보는 것이 '노동'에 대한 본연의 의미에 맞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특정 직업군만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노동자. 그것이 '땀 흘려 일을 해야(성서 창세기 3:19)' 먹고 살 수 있는 인간 세상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자를 혐오하는 진풍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자신을 '근로자' 혹은 '직장인', '전문가'로 포장하며 '노동자'라는 정체성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한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이를 보며 연대감을 느끼기보다 "왜 저렇게 과격한가"라며 노동자가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를 타자화한다. 이는 식민지 백성이 같은 피지배 계급을 멸시하며 지배자의 시선을 내면화했던 메커니즘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을들의 갈등'은 갑이 굳이 손쓰지 않아도 을들이 알아서 서로를 검열하고 배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지배권력의 통치담론이기도 하다.
더욱이 기만적인 것은 사태 직후 백화점 측의 대응이다. 롯데백화점 쪽은 "보안요원이 불편 사항이 생길 수도 있어 조끼를 벗어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백화점 차원의 복장에 관한 별도 규정은 없다"며 뒤늦게 출입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논란의 책임은 용역업체 소속인 보안요원의 요청이었을 뿐 백화점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최종 고용업체인 백화점은 책임이 없고 용역업체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를 배제하려고 했다는 얘기다. 을(乙)들 끼리리의 갈등이었다는 말이다.
책 <을의 민주주의> 저자 진태원은 책에서 '을(乙)'이라는 용어는 본질적으로 '복수적'이고 '분할적'이라고 했다. 즉 을(乙)들의 전복 대상은 갑(甲)이 아니라 을(乙)이 되기도 하고 병(丙)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보안요원을 직접고용한 용역업체는 을이고, 백화접은 간접고용한 갑(甲)이다. 결국 갑이 항상 을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을끼리도 서로 배제 한다는 것이다.
북한과는 다른 길, 노동의 가치 복원해야
한국 사회는 이상하게도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면, 이것을 두고 북한의 사회주의 노동자 계급 담론을 연상하며 색안경을 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반공주의와 무지에 기인한 오해다. 북한이 지금 말하는 '로동'은 당과 수령을 위한 집단주의적 동원의 수단에 가깝다. 자유도 주체도 없는 노동자의 나라다. 그곳에는 노동 계급은 있으되, '자유로운' 노동 주체는 없다. 그러니 '노동'을 강조한다고 북한의 '로동'이나 '로동당'을 연상하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지한 주장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노동 존중 사회는 북한이 주장하는 노동계급 모델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개인의 존엄이 자본보다 우위에 서는 것,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더라도 그 자본이 노동을 멸시하지 않는 사회,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노동조합 조끼가 '불편함을 주는' 기호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상징하는 '노동권'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다. 이는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또한 노동은 남북한 주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인권의 토대이기도 하다. 오늘의 북한이 인권도 없고 저 모양인 이유는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고 국가가 자유로운 노동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의 노동조합 조끼 거부 사건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백화점은 사유지일지 모르나, 그곳을 드나드는 인간의 권리와 복장이 규제받아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복장을 하고 밥을 먹는 행위가 불편함을 주는 행위가 되는 사회라면,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 노조 조끼 입고 밥 먹는 게 잘못? 롯데백화점 대응 '인권침해' 논란 롯데백화점 푸드코트에서 다른 손님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로 고객이 입고 있던 노조 조끼를 벗어 달라고 요구해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상제공 : 스테끼(닉네임) *관련기사 : https://omn.kr/2gcuo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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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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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노조 조끼 사건', 북향민 눈에 더 기이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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