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양명의 제자인 채세신이 그린 왕양명의 초상화는 현재 상하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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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 속 깨달음, 혹은 세기의 반전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비참했던 때 찾아왔다. 1508년, 서른여섯 살의 관리 왕수인(왕양명의 본명)은 황제의 환관 유근(劉瑾, ?~1510)을 비판했다가 40대의 곤장을 맞고 귀주성 용장이라는 오지로 유배된다.
용장은 말이 유배지지, 사실상 '알아서 죽으라'는 곳이었다. 뱀과 독충이 들끓고 독기 가득한 산골짜기. 거처라고는 동굴 하나. 왕양명은 그곳에서 스스로 관을 짜서 동굴 앞에 세워두었다.
"아, 이제 여기서 끝이구나."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 찾아온 건 절망이 아니라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어느 날 밤, 왕양명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고 한다.
"성인의 도는 내 본성 안에 있구나! 나는 지금까지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었어!"
이것이 바로 유명한 '용장깨달음'이다. 훗날 동아시아 사상계를 뒤흔든 '마음이 곧 이치'라는 명제가 용장 동굴에서 탄생한 것이다.
700년 권위에 던진 통쾌한 한 방
왕양명 이전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700년 가까이 주희(朱熹, 1130~1200)가 세운 성리학의 철칙을 따랐다. 그 핵심은 간단했다. "이치는 사물에 있으니, 사물을 열심히 연구하라(격물치지)." 대나무를 이해하려면? 대나무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라. 책을 읽고 또 읽어라. 그러면 언젠가 이치가 환하게 밝아질 것이다.
실제로 주희의 제자 중 한 명은 대나무 앞에서 7일 밤낮을 앉아 있다가 병만 얻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왕양명은 이 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선언했다. "이치가 밖에 있다고요? 웃기지 마세요. 모든 이치는 내 마음속에 이미 완벽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욕망과 편견이 그걸 가리고 있다는 거죠."
이것은 단순한 철학논쟁이 아니었다. 700년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책과 외부권위에 의존하던 기존체제에 "당신 안에 이미 답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교과서 덮고 네 양심에 물어봐"라고 외친 셈이다.
앎과 행함은 원래 하나였다
왕양명의 두 번째 폭탄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이었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저는 효도가 중요하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실천이 잘 안 됩니다."
왕양명이 단호하게 답했다.
"자네는 아는 게 아니야. 진짜 알면 반드시 행하게 되어 있어. 불 앞에 손을 대면 뜨겁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절대 손을 넣지 않지. 알면서 안 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건 아직 진짜로 모르는 거지."
이것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뼈아픈 일침이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 도덕을 논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탐욕과 권력에 찌든 관리들이 넘쳐났다. 왕양명은 그들을 향해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반역자들도 구해야 한다
1519년, 영왕 주신호(朱宸濠, 1479~1521)가 반란을 일으켰다. 왕양명은 당시 강서성 감찰어사로 있었는데, 겨우 43일 만에 반란을 진압했다. 군사 천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뒤였다. 왕양명은 포로들을 대할 때 이렇게 말했다.
"이들도 모두 본래 선한 마음(양지)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가려져 있을 뿐이다."
적군 포로들에게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교화를 실시한 것이다. 학살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반역자의 마음속에서도 양지를 찾으려 한 이 장면은 왕양명 사상의 진수를 보여준다.
동아시아를 뒤흔든 정신혁명
왕양명이 죽은 뒤 그의 사상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중국에서는 이지(李贄, 1527~1602) 같은 급진 사상가들이 양명학을 무기로 기존 질서를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나카에 도주(中江藤樹, 1608~1648), 구마자와 반잔(熊沢蕃山, 1619~1691) 등이 양명학을 받아들여 무사 계층의 정신개조에 활용했다.
특히 일본 막부 말기 개혁가들,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은 모두 양명학도였다. "알면 행하라"는 지행합일 사상이 그들을 행동하는 혁명가로 만들었다.
조선에서는 정제두(鄭齊斗, 1649~1736)가 양명학을 받아들였지만,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이단 취급받았다. 하지만 실학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영향을 미쳤고, 박은식(朴殷植, 1859~1925), 장지연(張志淵, 1864~1921)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양명학의 실천정신에서 힘을 얻었다.
마음의 민주주의, 그 빛과 그림자
왕양명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두가 양지를 갖고 있으니까."
신분, 학력, 재산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의 내면에 도덕적 진리가 있다는 이 선언은 혁명적이었다.
하지만 위험도 있었다. "내 마음이 이치다"는 말은 자칫 "내 생각이 곧 진리다"는 독선으로 변질될 수 있었다. 실제로 왕양명 사후 일부 후학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곧 양지를 따르는 것"이라며 방종에 빠지기도 했다.
왕양명은 이를 경계했다. 그가 말한 양지는 욕망이나 감정이 아니라 "시비를 분별하는 본래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 미묘한 차이를 놓치는 순간, 양명학은 무책임한 주관주의로 전락할 수 있었다.
오늘, 왕양명에게 묻는다
2025년 오늘, 왕양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첫째, 우리는 여전히 외부 권위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전문가, 책, 인터넷 검색에만 의지하며 정작 자신의 판단력은 키우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 우리는 진짜 '알고' 있는가? 기후 위기를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정의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침묵하는 우리는 왕양명이 보기에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다.
셋째, 타인의 양지를 믿는가? 범죄자든, 반대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든, 그들의 마음속에도 선의 싹이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왕양명은 쉬운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당신 마음속을 들여다보세요. 거기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그걸 가리고 있는 게 뭔지, 정직하게 마주하세요."
500년 전 용장 동굴에서 죽음을 앞두고 깨달음을 얻었던 한 남자의 외침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슴을 울린다. 책을 덮고, 검색창을 끄고, 당신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그곳에서 가장 정직한 답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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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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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이치다, 500년 전 반항아 철학자 왕양명의 뜨거운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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