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반에도 있다>(김현 청소년에세이)
낮은산
실수를 풍선껌이나 초콜릿 한 알처럼 여길 자유
숨죽여 열심이었을 열아홉을 잠깐 떠올려 보자. 수능이 끝난 철, 노력한 만큼 성과를 못 이뤘다고 여겨온 열아홉의 한겨울은 어떨까. 어쩌면 인생 첫 실패를 맛봤다고 책상 앞에서 자책하지 않을까. 현장 실습을 갔거나 취업해 출근하는 또 다른 열아홉은 어떨까. '쓸모'를 다하려면 '실수' 하지 않아야 한다고 노심초사하지 않을까. 일도 학교도 아닌 곳에서 시작하는 열아홉의 아침은 또 어떨까.
그렇게 잇몸이 조금씩 상하는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되기 전에,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났으면 좋겠다. 나의 실패도 친구의 실패도 긍정하는 어른이 되게 하는 마중물이니까. 실패를 긍정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다듬을 줄 알게 되면, 내 상처도 더 잘 돌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곧 스무 살이 되거나 막 성년이 된 이들에게는 어른이 됐다는 설렘만큼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불안이 도사린다. 하여 시인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한 십 대 시절의 상처를 찬찬히 그러모아 어린 독자들에게 고백한다. "큰 바윗덩어리가 가로막힌 것 같"아도 "용기 내어 바위를 올라가" 보자고.
그렇게 힘을 북돋은 끝에 남몰래 불안하고, 행복하고, 슬프고, 미워해온 자신 같은 사람이 "우리 반에도 있"으니, 안심하라고 안아 준다. 하여 이 책의 백미는 귀여움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선심 쓰듯 애써서 말하지 않고, "너 같은 애 또 있어" 하고 찡긋 윙크해준다.
코인노래방에서 애창곡 하나 뽑듯이 새해를 기운차게 보내고 싶은 어른도, 목표지향적인 논술형 책 읽기에 지친 청소년도 퍽 개운하게 읽을 수 있겠다.
"나는 유용한 것들에게조차 몸을 낮추지 않"는다고 했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문장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느긋함을 따라하기엔 깡 있게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유창한 인공지능의 답변 앞에서 무용한 것과 유용한 것을 구분하기 어렵고, 손해나 실수 없이 살아가려는 이익 집단 속에서 누군가는 벼랑에 몰리고 누군가는 신기루에 허덕인다. 그래서 실패를 풍선껌이나 초콜릿 한 알 만큼으로 여기는 자유가 새순처럼 우리들 사이에 희미하게나마 돌았으면 좋겠다.
힘을 조금 빼고, 멍청해져도 퍽 괜찮은 얼굴로. '망했어' 하고 사색이 된 친구의 얼굴이 여전히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희망이 습관처럼 새해에 번지길 믿는다.
우리 반에도 있다
김현 (지은이),
낮은산, 202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쓰는 일보다 보고 싶고 알고 싶은 사람이 많다. 너도밤나무 산신령에게도 만 가지 사연이 있다고 믿는다. 산신령의 등을 잘 긁어주는 한 마리 날다람쥐가 되고 싶다. 월간지 편집자로 일한다. e-mail/moonf66@naver.com
공유하기
방바닥과 혼연일체된 당신에게 윙크와 이 말을 전합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