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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데 하루 10만 원

인신 구속 대가치고 너무 싸... 20만원 정도로만 올려도 구치일수 반으로 줄어

등록 2025.12.15 15:59수정 2025.12.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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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원식 국회의장(왼쪽 두번째)이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벌금제 개혁으로 노역장 유치를 줄이자' 장발장은행 창립 1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2.25
우원식 국회의장(왼쪽 두번째)이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벌금제 개혁으로 노역장 유치를 줄이자' 장발장은행 창립 1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과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2.25 연합뉴스

장발장은행장을 맡고 벌써 두 번째 연말을 맞는다. 초대 은행장이었던 홍세화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과분하게도 내가 그 후임이 된 것이 지난해 7월이었다. '취임식' 자리에서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은행 문을 닫는 게 임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발장은행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많고, 장발장은행에 성금을 보내주시는 시민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2000명 가까운 개인, 단체, 교회가 19억 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주었는데, 막상 대출 총액은 27억 원이 넘는다. 그사이 대출받은 분들이 갚은 돈이 더해진 덕분이다. 전액 상환한 비율이 40%에 가깝고, 지금도 꾸준히 갚아나가고 있는 분들이 많다.

성금을 보내주시는 분들의 사연도 다양하지만, 대출받고 상환해 나가는 분들의 이야기도 다양하다. 5000원짜리가 생길 때마다 장발장들을 생각하며 한장 한장 모아 50만 원(100장)을 보내주신 분이 있는가 하면, 형편 닿는 대로 한 번에 천 원, 이천 원씩을 꼬박꼬박 갚아나가는 대출자도 있다. 대출받았던 분 중에는 대출금을 다 갚은 뒤 후원자로 전환한 분들도 있다. 간혹 거액을 기부하겠다는 단체의 제안도 있지만 뭔가 꼬리표가 달린 듯하여 그런 돈은 대출심사위원들 협의를 거쳐 반려하기도 한다.

4~5만 명 중 고작 200명 내외만 대출 혜택

성금을 보내주시는 시민 분들과, 불가피하게 대출창구를 두드리는 분들의 사연들을 보면 장발장은행이 나름 "선한 연대", "착한 다리 놓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근본적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란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매년 벌금을 내지 못해 유치(환형유치)되는 사람들 숫자가 4~5만 명에 달하나, 장발장은행의 대출 혜택이나마 받을 수 있는 인원은 고작 200명 내외이기 때문이다. 결국 벌금제 제도 전반을 개혁하지 않는 한 장발장들이 양산되는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장발장은행과 그 운영기관인 인권연대는 제도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제도개선을 위해 우리가 주장해 온 것은 소득별 비례 벌금제(일수 벌금제), 벌금형 집행유예제, 벌금 분납제, 벌금형 사회봉사 대체 등이다. 이 외에도 가벼운 범죄나 질서위반 행위, 특히 사인(私人) 간 민법 위반 행위까지 형벌 대상으로 삼는 데에 대한 문제 제기도 끊임없이 해 오고 있다. 가뜩이나 정원을 초과하는 과밀 수용으로 모든 교도소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가벼운 범죄인 벌금형 수형자까지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

그러나 우리들의 제도개선 노력은 법원, 검찰, 법무부, 국회의 이런저런 사정과 핑계들 때문에 생각만큼 쉽게 진척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와중에 지난 10월 21일 법원행정처장인 천대엽 대법관을 만났다. 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도 우리가 요구하는 다양한 제도개선책이 논의됐으나 여전히 넘어야 하는 관계기관들의 벽이 높다는 것만 확인하였다. 다만 이 자리에서의 성과라면 현재 하루 10만 원으로 책정된 환형 금액은 올려보자는 논의였다. 금액을 20만 원 정도로만 올려도 구치일수는 반으로 줄어든다. 법원에서는 이 문제를 연내에 논의해 보겠다고 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다.

장발장은행 홈페이지 장발장은행 홈페이지 갈무리. 대출신청 탭을 누르면 관련 서류와 신청방법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장발장은행 홈페이지 장발장은행 홈페이지 갈무리. 대출신청 탭을 누르면 관련 서류와 신청방법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장발장은행

오뉴월 엿가락 같았던 사람의 자유 값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자유의 값은 과연 얼마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행법대로 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데 하루 10만 원이라는 것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일까? 따져보면 명확한 근거도 없다. 그런데 이것이 사법부에 의해 고무줄처럼 늘었다가 줄었다 한 흑역사가 있다. 이른바 '황제노역'이 그것이다.

2008년,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의 탈세 및 횡령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형량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80억 원이었다. 판결문에는 벌금 미납 시 일당을 2억 5천만 원으로 환산하여 환형 유치한다고 하였다. 2010년에 내려진 2심 판결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 그런데 벌금 미납 시에는 하루 5억 원으로 노역 일당을 정한다고 하였다. 2심에서는 1심에 비해 노역 일당이 두 배로 뛰었다. 허재호는 확정판결 전 벌금과 세금을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출국하여 호화도피 생활을 하다가 2014년 3월 귀국 후 "벌금 낼 돈이 없다"라며 2심이 정한 일당 5억 원으로 구치소 노역을 살았다. 254억 원의 벌금이 불과 50여 일 동안 "몸으로 때우면 되는" 금액이 되었다. 당시 일반인 노역(일당 5만 원)의 1만 배에 달하는 노역 일당에 많은 국민은 "황제 노역"이라며 공분했으나 이후로도 이런 사례는 반복되었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에게는 벌금 3억 원이 병과됐는데 노역 일당은 하루 10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사람값'이 그가 가진 돈, 영향력에 따라 5억 원에서 1000만 원, 그리고 5만 원까지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만인 앞에 평등하여야 할 법이 현실에서는 이렇게 오뉴월 엿가락처럼 휘어지곤 했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여야 하고 사람의 가치 또한 그러하여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자유 값을 현행법은 하루 10만 원으로 산정하고 있다. 인신을 구속하는 대가치고는 너무 싸다. 새해에는 이것부터 좀 바뀌면 좋겠다. 대법원 행정처의 논의를 지켜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글쓴이 정범구 장발장은행장은 현재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행 #벌금형대출 #정범구 #인권연대 #벌금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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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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