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어떻게 피자 가게를 시작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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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피자 가게를 시작하게 됐을까.
2007년 12월, 김씨는 아내가 2년간 아르바이트하며 지켜본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를 인수했다. 그 가게는 하루 매출이 좋을 때는 150만 원에 달했다. 아내가 한 달 내내 벌던 돈을 하루 만에 찍는, 겉보기에 완벽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당시 김씨는 중소 제조업체 영업이사로 일했지만 회사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며 월급조차 제때 받지 못했다. 그는 전세 보증금까지 빼 1억 3천만 원을 마련했고, 새로운 삶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보름을 넘기지 못했다.
12월 15일 개업 후 크리스마스와 연말 특수가 겹치며 보름 만에 매출 2천만 원을 올렸다. 하루 150판, 크리스마스에는 200판 넘는 피자를 밤새 만들었다. 초보 점주로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것은 즐거운 비명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1월 5일, 원재료비 결제일이었다.
"물대를 내려는데 숨이 막히더라고요. 통장 잔고가 빠듯한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아, 이건 뭔가 잘못됐다."
매일 100여 만 원씩 들어오던 현금은 착시였다. 매출의 50%를 재료비로 본사에 내야 했고 그에 더해 매입금의 6% 광고비와 수십만 원의 전단지 발주, 남은 돈으로 월세와 인건비 각종 공과금과 경비를 감당해야 했다.
"아내가 2년을 알바해도 이런 구조는 몰랐죠. 이건 가게를 실제로 운영해 본 사람만 아는 겁니다."
김 씨는 엑셀로 매출과 지출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살펴볼수록 답은 없었다. 매출을 늘리면 해결될까 싶어 전단지를 돌리고, 회사와 상가에 조각 피자를 나눠줬다. 매출은 늘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매출이 올라도 수익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결정적 원인은 본사의 '1+1 할인 정책'이었다. 학교와 사무실이 밀집한 상권 특성상 단체 주문이 주력으로 매출의 90%가 1+1 상품이었고, 원가율은 단품에 비해 훨씬 높아 50%를 넘겼다. 김씨는 장부를 정리해 본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돌아온 답은 늘 같았다. '다른 점주들은 잘하고 있다, 사장님만 문제다'라는 말이었다.
결국 그는 본사의 압박에도 손해가 큰 1+1 판매를 줄이고 손님들에게 단품 메뉴를 밀면서 버텼지만, 몸이 먼저 무너졌다. 이미 산업재해로 오른팔 장애가 있던 그는 과도한 노동으로 관절과 척추까지 손상됐다. 함께 일하던 아내 역시 척추와 무릎이 망가져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그때는 정말 본사 노예였어요."
2015년, 김씨는 점주 단체를 만들어 본사에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더 강한 압박이었다. 그는 가게 앞에 본사의 갑질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을 걸었고, 공정위는 물론 국회까지 가서 읍소를 했지만 결국 강제 폐점을 당했다. 1억 3천만 원과 7년의 시간은 빚과 상처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사무직부터 퀵서비스와 배달 대행까지 하루 수십 시간씩 일하며 버텼지만, 2019년 파산을 신청해야만 했다.
현재 68세인 김씨는 젊은 시절의 경력을 살려 유압기계 수리 일을 하고 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때로는 주말에도 현장을 나가지만, 그는 말한다.
"그래도 지금이 훨씬 낫습니다."
프랜차이즈 시절보다 정신적으로 덜 피로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가 손에 쥔다. 무엇보다 '기술자로서 존중 받고 내가 번 돈'이라는 감각이 있다.
"이 나이에 허울 좋은 겉치레보다는, 내 삶의 의미가 중요하죠."
2025년 12월, 가맹점주들의 숙원이던 단체협상권 강화가 마침내 법제화됐다. 본사가 정당한 협상을 거부할 경우 처벌 조항까지 포함됐다. 2015년, 자신의 매장을 걸고 현 개정안의 초석을 다지는 데 일조한 김씨는 담담히 말한다.
"법이 바뀌어도 본사들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아요. 자본은 늘 길을 찾으니까요."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다가오며, 많은 40~50대가 프랜차이즈 창업을 고민한다. 김씨의 조언은 단호하다.
"하지 마세요. 월급이 적더라도 눈높이를 낮춰 그에 맞는 일자리를 찾으세요."
'창문 너머의 무지개는 허상일 뿐이다. 쫓아가 봤자 비만 맞을 뿐이다'란 말을 뒤로 하며 김씨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잃은 것은 투자금만이 아니었다. 건강한 몸, 가족과 함께할 수 있었던 7년의 시간, 그리고 삶의 여유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잃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25년 12월, 그의 분투는 가맹점주들의 '협상권 강화'라는 제도적 변화로 돌아왔다. 물론 이제 그는 프랜차이즈 업계와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오늘도 '가족 같은 동반자'를 내세우며 새로운 점주를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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