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 팽나무 겨울 사진 겨울에 찍은 하제 팽나무 사진
김정희
처음에는 책 <할매>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기 때문에 이렇게 순하게 읽혀도 되나 싶었다. 뭔가 황석영 작가답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개똥지빠귀 얘기가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극적인 자연 다큐를 보는 듯했다. 먹고 먹히는 엄혹한 생의 순환과 생명을 이어가는 것들의 존엄성을 알 수 있도록 앞부분을 충분히 할애하고 있다. 결국 생물의 삶과 사람의 삶이 세대 교체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책 <할매>의 주인공은 사람이고 역사이다. 생물이고 갯벌이며 자연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가 다 주인공이다. 그들의 '자잘한 일에 지나지 않은' 일이 곧 역사를 이룬다는 작가의 생각에 닿았다.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머나먼 북방 대륙에서 날아' 온 덕에 오늘날 하제의 팽나무가 존재하게 된 인연의 서사가 아름다웠다. 개똥지빠귀의 목숨을 희생으로 뱉어진 씨앗 한 개가 긴 세월을 품고 축적의 미학으로 오늘도 여전히 나부끼고 있다.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에 있는 나무로, 2024년 10월 31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있어서 성취한 값진 결과이다.
작년 이맘때 팽나무를 보러 갔었는데, 바람과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을 뿐, 정적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더 신령스럽게 느껴졌을까? 아니면 나뭇잎을 죄 떨군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팻말도 없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는 작은 팻말이 전부여서 잠깐 실망스러웠다. 잎이 나오는 봄에 또 와야지 했으나 올해를 다 넘기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꼭 가야 할 명분이 생겼다.
책을 읽은 후에 그곳에 간다면 적어도 작년에 느꼈던 감정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니 말이다. 팽나무 앞에 서서 책에서 읽었던 사실은 물론이고, 군산에 살면서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부채감을 가진 것에 대하여도 팽나무 할매에게 말해 볼 작정이다.
몽각과 당골네, 유 사공, 배 지동과 춘삼, 배경순과 배동수, 유 신부(산하)등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삶과 청일전쟁과 일제 강점기, 조선시대의 서학과 동학의 탄압, '중일전쟁이 시작된 해에 비행장 부지로 결정되었음을 통보'받고 속수무책으로 그곳을 떠나야 했던 마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역사를 할매는 그저 켜켜이 나무에 새기고 있었음을 우리는 입에서 입으로, 기억에서 기록으로서 알고 있다.
한때 하제포구는 '서해안에서 최대의 조개 생산지'였다고 한다. 살아 숨 쉬는 갯벌에 조개처럼 모여든 사람들로 인하여 시장은 활기를 띠며 살맛이 나는 고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마을은 비었고, 사람의 흔적이 없다. 살아가야 할 오직 하나의 이유인 갯벌이 사라진 마을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의 하구를 막아 갯벌을 매립해서 농지를 얻겠다는 서해안 간척사업은 집권에 급급한 정치인과 탐욕스러운 건설업자와 사익을 위하여 거들었던 언론이 어우러져 저지른 토목 범죄였다. 신군부가 재집권하면서 전라도 민심을 달래고 표를 얻기 위해서 즉흥적으로 내놓은 안이 새만금 개발사업이었다.' - 195~196p.
지금도 진행형인 끝날 줄 모르는 이 사업으로 인하여 갯벌은 사라지고 하제 할매의 기억은 씁쓸함만 기록하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할매 나무에 부디 펄펄 살아있는 갯벌의 새들과 조개, 생명 있는 것들의 합창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군산 하제 팽나무 겨울 사진 겨울에 찍은 하제 팽나무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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