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모험인 듯 로리는 계단을 즐긴다.
신혜솔
조금 뜻밖의 말이었다. 아직 아기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4살 남자아이. 그러고 보니 3층은 얼마든지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층이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러나 늘 아기와 함께 다녔으니 나는 당연하게 엘리베이터만 이용해왔다. 로리가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몇 번은 계단으로 올라왔다.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는 것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로리에게는 즐겁고 신나는 놀이였다. 생각해 보면 로리는 아직 도착을 서두를 이유가 없는 몸이다. 목적지보다 움직임이 먼저인 아이였다. 엘리베이터는 결과로 바로 데려다 주지만, 계단은 과정을 건너뛸 수 없게 만든다. 아이는 그 과정을 좋아하고 있었다.
요즘 계단 오르기 운동이 인기라고 한다. 20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날씨는 춥고 길은 미끄럽고, 바깥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은 겨울, 실내 계단을 찾게 된다. 걷지 않게 만들어진 생활 속에서, 걷기 위해 다시 계단을 찾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구석에 남겨진 길에서 배우는 것
계단은 원래 그런 곳이었을까. 건물의 중심이 아니라 늘 한쪽에, 구석에 붙어 있다. 엘리베이터가 주인공이고 계단은 비상시에만 쓰는 통로처럼 취급된다. 편리함을 중심에 두고, 몸을 쓰는 일은 가장자리로 밀려난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그런 구조가 아직 중요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빠르다는 것도, 계단이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모른다.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된 기쁨과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몸의 감각이 동시에 좋은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포기하지도, 계단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둘 다 원했다. 누르고 싶었고, 오르고 싶었다.
이쯤에서 환경이나 에너지 절약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아이에게 따로 설명한 적은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전기가 들고, 계단을 오르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언젠가는 할 것이다. 그러나 로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너지는 아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몸이 먼저 쓰여야 하는 것이라는 감각을.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편리하다. 버튼 하나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계단은 로리에게 아직 충분히 재미있는 세계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그래도 다시 한 계단을 오르게 만드는 세계다.
계단은 오늘도 구석에 있다. 가위 바위 보를 배우고 한 계단을 오르면서 누가 먼저 오르는지 시합을 한다. 그 구석에서 로리는 자기 몸의 크기를 확인하고, 움직이는 즐거움을 배운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감각도 그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빠르게 도착하지 않아도 되는 삶, 굳이 아끼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덜 쓰게 되는 삶의 리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와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잠시 겹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로리는 오늘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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