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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 입으면 '손님'이고 노조 조끼 입으면 '잠재적 난동꾼'인가

[주장] 롯데백화점 노조 조끼 탈의 요구 소동이 불편한 이유... 옷차림으로 사람 구분짓는 사회

등록 2025.12.17 14:19수정 2025.12.1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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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안전요원이 식사를 하기 위해 푸트코트에 있던 한 고객에게 노조 조끼를 벗으라고 요구해 논란이다.
지난 10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안전요원이 식사를 하기 위해 푸트코트에 있던 한 고객에게 노조 조끼를 벗으라고 요구해 논란이다. 김연주(가명)씨 제공, 롯데백화점 홈페이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자본'과 '권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통'이나 '관습'과 같은 문화적인 맥락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노동조합원들이 입는 조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입장을 조끼에 쓰여진 문구를 통해 세상을 향해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노조원의 조끼를 흔히 '몸자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노조원들에게 조끼는 투쟁의 현장에 나갈 때 반드시 착용하는 전투복인 동시에 일상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와 목소리를 일관되게 전하는 상시적 미디어인 셈이다.

백화점의 식당가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 외식과 직장인 점심, 관광객의 방문과 휴식이 일상적으로 영위되는 이 장소는 언제나 '중립적'이고 '안전한' 소비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최근 롯데백화점 식당가에서 벌어진 이른바 '노조 조끼 탈의 및 퇴거 명령' 사태는 그 누구나에게나 적용되는 소비 생활의 중립성과 일상의 안전성이 의복에 따른 차별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시위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밥을 먹으러 들어온 노조원들에게 백화점 안전요원들은 노동운동 구호와 문구가 새겨진 조끼를 벗어줄 것을 요구했다.

인근 지역에서 투쟁 중이었던 노조원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가까운 백화점 식당가를 찾았을 뿐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야외 투쟁 현장에서 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점퍼를 입고 그 위에 조끼를 걸친 차림새였다. 보통 사람들은 조끼를 외투 안쪽에 입지만, 노조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구호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두꺼운 겨울옷 위로 조끼를 입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었다. 노조원들에게 조끼 차림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연출이자, 자신의 몸뚱이 밖에 가질 수 없는 노동자가 스스로의 신체를 미디어화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들은 밥을 먹으러 온 것일 뿐이기 때문에 백화점 식당에서 집회를 벌이거나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그저 조끼 차림으로 식사를 하러 들어온 평범한 손님들이었다. 다른 방문자들과 마찬가지로 테이블을 잡고, 메뉴를 고르고, 한 끼 밥을 먹은 뒤, 비용을 치르고 나갈 참이었다. 그러나 백화점 측은 식당에 들어와 테이블에 앉은 노조원들에게 다가와 조끼를 벗지 않으면 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백화점이 내세운 이유는 "영업 방해 우려", "다른 고객의 불편"이었다. 노조 조끼 입은 사람이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다고 식사에 방해가 된다거나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날 백화점 식당가에서 다른 손님들 중 조끼 입은 사람들에게 불편이나 위협을 느꼈다고 호소한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백화점이 내세운 영업 방해와 고객들이 느끼는 불편함이라는 근거는 백화점이 일방적으로 정한 운영 방침이거나 노조를 대하는 사측의 태도 혹은 입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백화점을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유통재벌 롯데의 비상식적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응매뉴얼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소동을 빚게 만들었다. 물론 이 사건이 밖으로 전해지고 논란이 되자 롯데는 현장 직원 개인의 판단이었을 뿐 회사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노동은 사라지고 소비만 남은 세계


한국 사회에서 옷은 단순한 개인 취향만이 아니라 신분과 태도를 표시하는 기호이자 장치로 인식돼 왔다. 정장을 입은 사람은 '손님'이나 '관리자'로, 작업복이나 조끼를 입은 사람은 '노동자'나 '시위꾼'으로 성급하게 분류된다. 옷차림에 따른 구분은 곧 대우의 차이로 이어진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환영받는 손님'이 되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불편과 소란을 야기할 '잠재적 난동꾼'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혹은 강제력을 행사할 권한이 없는 이들이 그저 식당 손님으로 방문한 타단체의 노동조합원들에게 입고 있는 조끼를 벗어달라고 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 이 같은 몰상식한 탈의와 퇴거 명령은 여전히 노조 활동에 적대적인 한국 대기업의 태도를 반영한다. 또한 한국 사회 분위기 전반이 노동조합을 아무 근거 없이 정치적 불순 세력으로 오해하거나,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도 큰 문제다.


백화점은 모두에게 열린 자유로운 소비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누구나 들어와 걷고, 먹고, 쉬어갈 수 있는 장소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개방성과 자율성이 기업이 허용하는 분류 규범 속의 조건부 성질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백화점은 '착한 소비자'의 역할에 충실한 태도를 의복을 통해서까지 일체화하는 사람만을 환영한다. 겉모습을 통해 소비자보다 노동자의 정체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순간 환대는 중지되고 적대가 노골화 된다.

더욱 큰 문제는 백화점의 의복에 따른 차별과 배제의 정책이 '영업의 자유'와 '시설 및 고객 관리'라는 말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노조 조끼를 탈의하라고 요구하는 건 특정한 집단을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제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관리를 가장한 통제이다. 이는 매끄러운 소비 공간에서 끈덕진 삶과 치열한 노동의 흔적 따위는 없애고 싶어 하는 자본의 욕망이나 다름없다.

옷차림에 따른 차별은 비단 노조 조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를 은근히 경계하는 카페, 낡고 투박한 차림의 손님은 무조건 하대하는 고급 상점가. 우리는 옷차림에 따라 매일 누군가를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단정짓고 차별한다. 그 기준은 명확하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공간의 미관과 분위기에 맞아야 한다. 누군가의 옷이나 외관이 불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면 안된다. 속물적이고 퇴행적인 기준이다.

롯데는 이번 사태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어떤 옷차림의 사람만이 들어와도 되는지 선별하고 허락하는 기업이 돼 버렸다. 우리가 발 딛고 몸 부딪치며 사는 현실 세계가 언제나 꿈과 환상이 가득한 판타지 월드일 수만은 없다. 롯데가 바라는 대로 이 세계가 착한 소비자와 말 잘듣는 손님만으로 구성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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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조끼 #롯데 #조끼 #롯데백화점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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