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명장회 석공예 명장 임동조 대한민국명장회 석공예 명장 임동조
사진 제공 미성석재
서울 광화문 앞, 100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월대(月臺) 위로 20대 청춘들이 쏟아진다. 화려한 한복을 입고 스마트폰을 든 그들은 1923년 일제가 훼손하고 2023년 우리가 다시 세운 그 길 위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 풍경을 일조한 사람. 대한민국 문화재수리기능자, 도석수(都石手) 임동조 석장이다. 남들은 "그냥 돌 아니냐"고 무심코 밟고 지나가지만, 그에게 이 돌들은 자식이고 분신이다.
"젊은 친구들이 내가 깎은 돌 위를 걸으며 웃더군요. 그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느낍니다. 아, 내가 참 좋은 직업을 가졌구나. 이 돌들이 다시 숨을 쉬는구나."
1mm의 매끈함보다 위대한 '거친 숨결'
광화문 월대가 공개되었을 때, 일각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현대의 정밀한 기계로 깎으면 거울처럼 매끈하게 만들 수 있는데, 왜 굳이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거칠냐는 것이다. 임 석장은 지난 15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질문에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역사를 지키기 위한 '고집'이었다.
"광화문은 600년 전 조선, 미륵사지석탑은 1300년 전 백제의 돌입니다. 시대마다 돌을 쪼는 '결'이 달라요. 기계로 윙 하고 밀어버리면 작업은 편하죠. 하지만 그건 '복원'이 아닙니다. 그냥 현대식 공사판이지."
그는 1300년 전 이름 모를 백제의 석공이 되어야 했고, 600년 전 조선의 장인이 되어야 했다. 캐드(CAD)로 그려진 매끈한 도면은 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3D 프린터 대신 무쇠 망치와 정을 들었다. '치석(전통 방식으로 돌을 다듬는 일)'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기존에 남아있던 풍화된 돌(구부재)과 새로 깎은 돌(신부재)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게 하는 것. 일부러 투박하게, 일부러 거칠게 쪼아 600년의 세월을 맞추는 작업. 그것은 매끈함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정교한 기술을 요한다. 우리가 월대에서 느끼는 고풍스러운 아우라는, 편리함을 거부한 임 석장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매일 수백 번 망치질을 해야 하는 고된 노동. 진폐증의 위험이 도사리는 뿌연 먼지 속에서 그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일까. 임동조 석장의 입에서는 의외의 이름이 튀어 나왔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다.
"니체가 그랬지요. '나는 행복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일을 구한다'고. 행복은 누가 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내 일에 미쳐서 몰입할 때, 돌 하나를 제대로 깎아냈을 때 찾아오는 쾌감, 그게 진짜 행복이지요."
그에게 광화문 복원 작업 4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돌의 뒷면, 흙 속에 묻힐 기단석 하나까지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아무도 안 보는데 대충 하시죠"라는 유혹이 없었을까. 그는 단호했다.
"남은 속여도 돌은 못 속입니다. 4년을 매달려 완성했을 때의 그 희열, 내 손으로 국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국가유산을 복원한다는 것에 문화유산 기능자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삽니다."
아버지의 정, 아들의 손으로

▲ 작업 중인 임동조 석장
사진 제공 미성석재
임 석장의 곁에는 든든한, 그러나 때론 안쓰러운 제자가 한 명 있다. 바로 아들 임경목 이수자다.
"기술 끊어지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아들을 현장에 데려온 지 벌써 20년. 남들은 귀한 자식 힘든 일 안 시키려 하는데, 그는 도리어 호랑이처럼 가르쳤다.
"내 자식이니까 더 독하게 가르쳤어요. 20년이 지나니 이제야 내 일을 대신 맡길 만합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무겁습니다."
그가 말끝을 흐렸다. 월대를 깎는 치석공 15명, 돌을 쌓는 석공 8명. 광화문 복원에는 25명의 팀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현장에는 젊은이가 없다. 아들이 20년 뒤 홀로 남아 이 거대한 돌들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은 한 아버지의 걱정을 넘어,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위기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만 살지만, 내가 깎은 돌은 천 년을 버팁니다. 그거면 됐지요."
그의 투박한 손마디가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 보였다. 화려한 단청 아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어쩌면 왕의 이름이 아니라, 그 돌을 깎으며 '일의 행복'을 외쳤던 어느 석장의 땀방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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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월대 깎은 석장이 꺼낸 니체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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