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종 이것은 2015년 1월 충남 계룡의 두계천변에서 풀줄기에 맺혀있던 종 모양의 얼음을 발견하고 신기한 마음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김영빈
여러분은 겨울이 오면 어떤 사진을 주로 찍으시나요? 저는 겨울이 깊어질수록, 하천으로 발길이 향합니다. 특히 그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종(鐘)과 닮은 형상의 독특한 얼음을 찾아다니곤 합니다. 저는 그것을 '얼음종'이라 부릅니다. 그것을 처음 만났던 것은 2015년 1월쯤 충남 계룡의 두계천 상류에서였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위로해 준다
보기만 해도 들려오는
거룩한 신의 음성
- 김영빈 디카시 <복음> 전문
변변한 장비도 없이 스마트폰 카메라만 들고 다니다가, 물가 풀줄기에 맺혀 있던 귀여운 얼음을 발견하고 사진에 담게 되었는데요. 당시 근무하던 부대 사람들도 이 사진을 보여주니 무척 신기해 했습니다. 누군가 기상 사진 공모전에 내보라는 권유까지 해서, 한번 내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가을에 공군 기상사진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놀랍게도 참모총장상(장려)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뜻밖의 행운을 거머쥔 뒤, 해마다 날이 추워지면 종을 찾아 헤맸지만, 몇 년 동안 동일한 형상의 얼음을 만나진 못했습니다.
고군분투 끝에 만난 얼음종
그러던 중 2018년 초, 얼음종을 찍었던 장소 바로 옆에서 그에 못지않은 형상을 만났습니다. 하나는 샹들리에처럼 아름다웠고, 다른 하나는 심장을 관통당한 듯한 강렬함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둘 중 한 작품으로 그해 공군 기상사진공모전에 응모하여 다시 한번 참모총장상(우수)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내가 찾아 나섰다기보다 저 형상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31년의 긴 군생활을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왔어도, 군인이던 시절의 습관처럼 여전히 겨울이면 하천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2023년 겨울, 청주 무심천 상류에서 오랜만에 얼음종을 닮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안타깝게도 하천 한가운데 있는 버드나무에 맺혀 있어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아닌 이상 선명하게 잘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깊이가 가늠이 안 되어 망설이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하천물에 첨벙 발을 담갔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찌릿 통하는가 싶더니 살을 에는 느낌이 이런 거라고 겨울 하천이 준엄한 가르침을 전해 주었습니다. 덜덜 떨며 밖으로 나온 뒤, 다른 얼음들을 몇 장 찍었지만 영 만족스럽지 않아 큰맘 먹고 장화옷까지 하나 장만했습니다. 뭘 찍겠다고 저렇게까지 하나, 아내가 의구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관통 샹들리에 사진과 함께 바로 옆에 맺혔던 얼음으로, 심장이 관통 당한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아 찍었던 사진입니다.
김영빈

▲와인바 2023년 겨울 두계천 상류에서 찍었던 얼음으로, 마치 와인바에 거꾸로 걸려있는 와인잔들을 닮아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영빈
올해 초에는 드디어 장화옷까지 갖춰 입고 결전의 장소로 다시 가서, 허리까지 차는 하천에 몸을 담갔습니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또 다른 모양의 신비로운 종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좀 더 고화질의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고급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해 최선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라, 그 순간을 알아보는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카시를 쓰기 위해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이 얼음종 앞에서는 당당한 사진 작가이고 싶었습니다.그러던 중 구미 상공회의소에서 '삼성 갤럭시 사진 공모전'을 주최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 얼음종 사진으로 응모를 했고, 당당히 입선을 했습니다. 더 높은 순위의 수상을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였습니다.

▲얼음종2 2025년 1월 청주 두계천 상류에서 발견한 새로운 얼음종 사진입니다. 구미 상공회의소 주관 갤럭시 사진 공모전에서 입선을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영빈
내가 얼음종이라 부르는 저 신기한 형상들을 만나려면 몇 가지 행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적어도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사흘 이상 이어져야 하고, 그 사이 물길은 얼지 않은 채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 바람의 방향, 물의 속도가 어긋나면 얼음은 종이 되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 버립니다. 물에 드리워진 풀줄기나 나뭇가지에 물이 찰랑거리다가 점차 얼어붙고 자꾸 덧칠하는 과정을 겪으며 종과 같은 모양으로 변하게 되고, 그 투명한 몸체 안에는 바람과 시간의 결이 층층이 새겨집니다.
얼음종을 만나기 위한 조건

▲얼음종3 얼음종2와 같은 공간에 있던 다른 종 모양의 얼음입니다. 시린 하늘로 들어올려서 보니 어릴 적 만화에 나오던 UFO와도 닮아보입니다.
김영빈
더구나 얼음종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해가 조금만 높아져도,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만 해도 조용히 녹아 형체가 어그러집니다. 사진은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늘 마음이 급해집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같은 종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기상 정보를 더 민감하게 찾아보게 됩니다. 차가운 물 위에 매달린 투명한 얼음종을 마주할 때면, 이 풍경이 얼마나 많은 조건과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됩니다. 사진 한 장에 담기기까지의 시간은 짧지만, 그 장면을 기다린 겨울은 무척 길었습니다.
기상 이변, 온난화로 인해 겨울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나의 '얼음종'들은 천연기념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겨울이 건강하다는 하나의 지표로 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나 아직 살아있으니까, 올 겨울에도 꼭 보러 와줘.'
겨울이 오면, 어릴 적 멀리서 들려오던 교회 종소리처럼 얼음종들의 속삭임이 다시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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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빈 │ 디카시 작가·시민기자
2017년 이병주 문학관 디카시 공모전 대상, 2025년 경북문경연가 디카시 공모전 대상, 사진시집 『세상의 모든 B에게』와 디카시집 『Pause』를 펴냈으며, 청주에서 지역의 자연과 문화 현장을 취재하고 기록한다.
사진과 문장을 통해 사라지기 쉬운 작은 목소리를 기사로 옮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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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종' 만나기 위해 장화옷까지 마련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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