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과 성벽 복원된 하동읍성의 남문의 옹성과 성벽. 성벽에 기댄 민가가 보인다. 최근까지 두어 가구가 성안에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이전하였다.
이영천
전란이 끝난 17세기 초,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관아를 다시 짓는다. 성은 더 넓어져 둘레가 1.4km다. 읍성이 섬진강 관문의 위용을 되찾는다. 18세기 들어 행정 중심을 지금의 하동읍으로 옮겨온다. 왜구 침탈이 잦아들고 발달한 수운이 직접적 요인이다. 넓은 강과 기름진 평야를 낀 입지를 찾아서다.
그로부터 하동읍성은 천천히 세력이 약해져 수십 민가만 성을 지킨다. 금오산이 드리운 긴 그림자와 함께다. 그랬어도 성은 듬직했고, 주교천은 섬진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아갔다. 하동읍성은 단지 돌로 쌓은 성이 아니라, 백성의 손과 마음으로 세워진 삶의 성채였다.
섬진강 길목으로
세월이 흘러 세상이 달라졌다. 강과 바다가 전쟁이 아닌 삶의 현장으로 거듭났다. 드넓은 섬진강 하류와 남해안에 조운선과 교역선이 유유히 떠다녔다.
성곽보다 길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시장이다. 섬진강 따라 발길이 빈번해지니, 길이 넓어졌다. 강을 건너는 나루가 번성하면서 하동의 경제 중심도 서서히 새 읍으로 옮겨갔다. 섬진강이 바빠진다. 지리산 자락을 병풍 삼은 새 읍은 홍수 피해는 적고 교통은 편리했다. 평야도 제법 넓다. 성벽보다 발걸음이었고, 새 읍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 사이, 금오산 뒤 옛 읍성은 점차 소소해진다. 군데군데 성벽이 허물어져 쇠락한다. 성문 자리에 밭이 생기고, 봉화가 오르던 산정이 비워진다. 조선의 세월이 저물자, 일제의 깃발이 산하를 점령한다. 남았던 읍성마저 주춧돌과 군사용으로 흩어진다. 하동읍성은 그렇게 시간의 뒤로 밀려나,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하동읍성 남문 하동읍성의 남문과 성곽만큼이나 나이 들었을 고목이 어우러진 광경이 이채롭다. 가파른 구릉에 둥근 옹성을 가진 남문을 두었다.
이영천
그러나 성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기억은 물론이고 성안 마을도 온전했다. 한때 3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 성안 사람들이 돌 하나, 흙 한 줌까지 애처롭게 지켜낸 것이다. 1960년대 하동읍성이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부득이 성 밖으로 이전해야만 했다.
남문을 비롯한 일부 구간 복원으로 옛 읍성의 윤곽이 조금 드러났다. 그럼에도 허물어져 돌무더기로 남은 옛 성벽이 더 정감 간다. 폐허에 가까운 성벽에 시간이라는 작가가 엿보여서다. 이 터가 마지막까지 보듬은 가느다란 생명력이다. 읍성과 동갑으로 보이는 우람한 고목도 그대로다.
옛 읍성이 더는 하동의 중심이 아니다. 그러니 하동의 정신과 정체성은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이제 성 앞에 두어 채 남은 민가만이, 읍성이 한 시절 복닥거리며 살았던 기억을 속닥인다. 바람이 보드랍게 그 기억을 어루만진다. 아이들이 웃으며 성벽 위를 걷고, 연인들이 그 길을 따라 앞날을 이야기한다.
섬진강의 시간 위에 선 고장
오늘의 하동은 여전히 지리산과 섬진강의 고장이다. 곳곳에 벌판이 편편하고 골마다 녹차밭과 송림이 짙푸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아 이 골짜기는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외적이 아니었다. 우리끼리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총을 겨누었다. 전쟁은 무참했다. 이제 이념의 담벼락이 아니었다. 죽고 죽인 원한으로 또 다른 총구를 들이댔다. 전쟁이 아득해졌다 해도 그 쓰린 상흔까지 씻겨나갔을까?

▲화개장터 구례 석주관에서 섬진강을 따라 악양으로 가는 강변에 화개장터. 윗마을 구례와 옆마을 광양, 아랫마을 하동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다.
이영천
악양과 화개장터는 샘솟는 이야기 보따리다. 하동과 지리산을 따로 떼어 말할 수는 없다. 악양 최 부자 땅에 얽힌 계급과 삶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하동 역시 강제된 근대화에 맞서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고향을 버렸다.

▲악양벌판 평사리 '박경리문학관'에서 바라 본 악양 들판이 편평하다. 멀리서 휘도는 섬진강이 보인다.
이영천
어느샌가 지역 갈등이 동서를 갈라쳤다. 그랬어도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영·호남을 잇는 가교로 자리매김했다. 강을 사이로 광양과 구례가 하동의 5일 장을 공유하고, 서로 다른 풍토와 말투에도 삶을 섞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이곳에서 만나 밥을 나누고 술을 마시며 황소를 사고팔고 사돈을 맺는다. 짙푸른 섬진강 물줄기처럼 하동은 그렇게 화합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 곁에 이젠 발길마저 뜸한 하동읍성이 소슬하다. 시간이 성을 비워냈다. 그럼에도 절대 잊은 건 아니다. 이곳은 전장 터였다. 서로 명줄을 기댄 공생의 공간이었다. 허물어진 옛 성벽 위를 걷다 보면, 멀리 지리산 자락이 아스라이 다가든다.
시간이 그렇게 하동읍성을 품었다. 역사가 가한 상처와 성을 버리지 못한 백성의 온기처럼 돌이 햇살에 반짝인다. 듬직한 금오산은 미동도 없고, 소금 배 저어오던 주교천도 고현 들판을 말없이 흘러간다. 흐르되 뒤돌아보지 않는 강물처럼, 하동읍성은 그렇게 시간을 품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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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줄 기댄 공간, 그들이 불탄 집터에서 지켜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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