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새로운 해법

[물이란 무엇인가 ④] 보이지 않는 물이 폭염과 산불을 줄인다

등록 2025.12.19 09:35수정 2025.12.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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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기온의 문제가 아니라 물의 문제다

기후위기는 흔히 기온이 오르는 문제로 설명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겪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 폭염은 땅이 마른 곳에서 먼저 시작되고, 산불은 숲이 충분히 건조해진 뒤에 번진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단순한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물의 문제이자 불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거의 배우지 못했던 물, 바로 보이지 않는 물이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물은 강물이나 댐에 모인 물처럼 눈에 보이는 물이다. 하지만 기후를 실제로 조절하는 물의 상당 부분은 흙 속에 스며든 토양수, 숲과 나무가 품고 있는 식생수,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지하수다. 이 물들의 공통점은 흐르지 않고 땅과 숲에 머문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후는 바로 이 물이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가와 나무 그늘이 시원한 이유, 증발산의 힘

여름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물가를 찾고, 나무 그늘 아래에 서면 숨이 돌려진다. 이 시원함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물이 증발산을 통해 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생긴다. 토양수와 식생수가 충분할 때, 태양에너지는 기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증발과 증산에 쓰인다.

이를 에너지로 환산하면 그 효과는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나라 면적 약 10만 km²에서 하루 1mm의 증발산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약 1억 톤의 물이 증발하는 것이다. 물 1톤이 증발할 때 흡수하는 에너지는 약 700kWh. 단순히 계산하면 하루에 약 700억 kWh의 열이 사라진다. 이는 1kW짜리 가정용 에어컨 수천만 대를 한 달 이상 계속 가동한 것과 맞먹는 냉각 효과다.

대한민국에 내리는 비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문제는 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처럼 기후를 식히기도 전에 물이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린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후위기의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거대한 댐이나 더 강력한 냉방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빗물이 흘러가 버리지 않고 토양과 숲에 머무를 수 있느냐다. 물은 흐를 때보다 머물 때 더 큰 일을 한다.


보이지 않는 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기후위기의 해법을 설명하는 빗물박사. 보이지 않는 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기후위기의 해법. 숲 가장자리의 얕은 물과 촉촉한 풀밭은 폭염을 식히고 산불을 막는 힘의 원천이다. 토양과 식생에 머무는 ‘보이지 않는 물’은 증발과 증산을 통해 열을 흡수하며, 우리가 체감하는 기후를 바꾼다. 이 장면은 기후위기의 해법이 거대한 시설이 아니라, 물이 머무를 수 있는 가까운 자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기후위기의 해법을 설명하는 빗물박사. 보이지 않는 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기후위기의 해법. 숲 가장자리의 얕은 물과 촉촉한 풀밭은 폭염을 식히고 산불을 막는 힘의 원천이다. 토양과 식생에 머무는 ‘보이지 않는 물’은 증발과 증산을 통해 열을 흡수하며, 우리가 체감하는 기후를 바꾼다. 이 장면은 기후위기의 해법이 거대한 시설이 아니라, 물이 머무를 수 있는 가까운 자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무영

산불을 막으려면, 산에 물을 남겨라

산불도 같은 맥락에 있다. 산불이 커지는 이유는 불씨나 바람 때문이 아니라, 산과 숲이 지나치게 건조해졌기 때문이다. 숲 바닥의 토양과 낙엽에 보이지 않는 물이 남아 있을 때는 불이 쉽게 번지지 않는다. 반대로 토양수와 식생수가 사라지면 숲 전체가 하나의 불쏘시개가 된다. 문제는 많은 산이 물을 머물게 하기보다, 임도와 배수 중심으로 '물을 빨리 버리도록' 관리되어 왔다는 점이다. 산불은 불의 문제가 아니라, 물의 문제다.


산불의 원인이 산의 건조함이라면, 해법은 단순하다. 산을 촉촉하게 만들면 된다. 낙엽을 모두 치우는 대신 빗물이 머물 자리를 남기고, 작은 물모이를 숲 곳곳에 촘촘히 만들면 불은 쉽게 번지지 않는다. 불을 쫓는 것보다, 물을 붙잡는 것이 훨씬 근본적인 대응이다.

멀리서 기후위기 해법을 찾지 말고, 가까이서 물을 붙잡자

이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물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매년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문제는 물의 양이 아니라, 그 물을 자산으로 관리하지 못해 왔다는 데 있다. 토양과 숲에 머무는 보이지 않는 물만 제대로 붙잡아도, 우리는 거대한 저수지를 분산해 가진 것과 다름없다.

소양강댐에 물이 가득 차 있어도 우리 집 앞 도로의 열기는 식지 않고, 우리 뒷산의 산불을 막아주지도 못한다. 기후를 식히는 물은 멀리 모아둔 물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머무는 물이다. 기후위기는 비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물을 자산으로 보지 않았던 선택의 결과다.

기후위기의 새로운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폭염은 줄고, 산불은 멀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글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물’은 거창한 기술이나 대규모 시설을 의미하지 않는다. 빗물이 땅에 스며들고, 숲과 토양에 머물며, 천천히 증발하고 증산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는 이미 물가에 가면 시원하고, 나무 그늘에 서면 숨이 돌려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다.

폭염과 산불 앞에서 우리는 종종 해법을 멀리서 찾는다. 더 큰 댐, 더 강한 소방 장비, 더 정교한 예측 시스템을 떠올린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상당 부분은 땅이 마르고 숲이 건조해진 결과이며, 그 해법 역시 물을 가까이에 머물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산을 촉촉하게 만드는 작은 물모이, 빗물이 흘러가지 않고 스며들 수 있는 공간, 토양과 식생을 되살리는 선택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기후 대응이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이미 시원하다고 느껴왔던 그 자리, 보이지 않는 물이 머무는 곳에 있다.
#기후위기대응 #물모이 #보이지않는물 #토양수 #식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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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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