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
codzilla_swiss on Unsplash
매일의 습관처럼 한 케이블 뉴스 전문 방송의 경제 뉴스를 시청하는데, 귀에 익숙하지만 늘 의문이 드는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월가가 선호하는"이라는 문구다. 최근 내가 본 보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차기 의장 인선을 둘러싼 전망 기사였고, 이 표현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두 명의 '케빈(Kevin)'이 아닌, 크리스토퍼 월러(Christopher Waller)가 "경제학자들과 월가가 선호하는 다크호스"로 묘사됐다. 정치적 충성도가 높은 인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선택이라는 인상을 주는 서술이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과연 문제없이 사용될 수 있을까.
월스트리트(Wall Street), 이른바 월가는 미국 금융과 주식 시장을 상징하는 지명이지, 단일한 의견을 가진 주체가 아니다. 수많은 투자은행,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애널리스트,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로 구성된 이질적인 함께 공존하는 용광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가가 선호하는"이라는 표현은 이 복잡한 집합을 하나의 의지와 판단을 가진 행위자처럼 단순화한다. 이 지점에서 독자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왜곡된다.
물론 이 표현이 완전히 근거 없는 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일부 대형 투자은행 이코노미스트들의 설문 결과나, 선물시장에 반영된 기대치, 혹은 특정 금융 매체의 코멘트를 요약한 결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느 기사에서는 어떤 자료에 기반하는지 설명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월가"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될 때가 다반사이고 요약이 설명을 대체하는 순간이다.
내가 시청한 뉴스에서도 "지난 10월 월스트리트 저널이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선호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다만 두 명의 케빈에 밀리는 건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신분이 없다는 겁니다"라고 보도하며 월가가 선호하는 월러를 긍정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한다. 문제는 월러를 긍정하는 조사 결과와 트럼프와의 관계를 언급할 뿐 월러에 대한 다른 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트럼프의 무역·경제 정책이 전 세계 경제와 무역 질서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보도의 맥락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월러 개인이 전 세계 경제와 무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인물인지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인물 평가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러한 맥락들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월가가 선호한다'는 표현 하나로 판단이 정리되는 보도 방식에 있다.
이러한 일반화는 한국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현지에서도 "Wall Street thinks…"라는 상투적 표현은 오래전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월가 클리셰를 퇴출할 때"라는 제목의 한 미디어 비평 칼럼들이 지적하듯, 이 표현은 시장 참여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내부의 이견을 지워버리고, 금융 엘리트의 관점을 '시장 전체의 상식'처럼 포장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 언론에서는 이 표현이 거의 여과 없이 반복될까. 흔히 '게으름'이라는 말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구조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동한다. 해외 통신사 기사를 빠르게 재가공해야 하는 생산 구조, 통신사 원문 제목을 거의 손대지 않는 관행, 속보 경쟁 속에서 문장을 최대한 압축해야 하는 압력, 그리고 클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유통 환경이 결합된 결과다. 복잡한 맥락을 설명하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표현을 가져오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단순한 표현의 부정확성에 그치지 않는다. "월가가 선호하는"이라는 말은 분명한 이념적 뉘앙스를 갖는다. 이 표현은 종종 '안정', '합리성', '전문성'이라는 이미지를 동반하며, 그 반대편에 있는 정치적 선택이나 규제, 혹은 비주류 인사를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으로 대비시킨다. 연준 의장 인선처럼 정책적 함의가 큰 사안에서 이런 프레이밍은 독자의 판단에 선행하는 가치 판단을 만들어낸다.
한 가지 더 짚어보아야 할 점은 월가가 과연 언제나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왔을까. 2008년 금융위기를 떠올려 보면, 금융 시장의 탐욕과 위험 추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분명하게 보인다. 오늘날에도 "월가가 반대하는 규제"가 자동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순간, 언론은 대형 금융기관의 이해관계를 무비판적으로 중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들이 "월가가 말하면 미디어가 메아리친다"고 꼬집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표현이 반복될수록 독자는 미국 경제를 '월가 대 정치'라는 단순한 구도로 이해하게 된다. 그 결과, 거론되는 인물들의 실제 정책 성향, 금리나 통화정책에 대한 구체적 입장, 시장 데이터가 보여주는 미묘한 신호들은 쉽게 가려진다. 언론이 제공해야 할 분석의 자리는 상투적인 문구가 대신 차지한다.
결국 "월가가 선호하는"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유용한 요약어가 아니다. 언론이 정말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면, 이 문구 대신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주요 투자은행 이코노미스트 다수는 ○○를 안정적 선택으로 평가했다"거나, "선물시장에서 반영된 기대치는 △△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식의 서술이 훨씬 정확하다.
언론은 월가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목소리가 어디서 나왔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익숙한 표현을 반복하는 대신, 불편하더라도 한 문장을 더 설명하는 쪽이 경제 보도에는 필요해 보인다. 이제는 "월가가 선호하는"이라는 표현을 관성처럼 쓰는 언어 습관을 돌아볼 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인터넷 신문 중에서 오마이뉴스가 담당하고 있는 진보성에 많은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공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있는 분야는 인문 분야입니다.
공유하기
"월가가 선호하는" 목소리는 누구의 메아리일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