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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털고 삶고 말리고... 수세미 하나에 들어간 정성

지인이 건넨 천연 수세미로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

등록 2025.12.19 16:01수정 2025.12.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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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 단면 마른 천연수세미의 단면. 껍질을 벗기자 촘촘한 섬유질과 씨앗이 드러난다.
▲수세미 단면 마른 천연수세미의 단면. 껍질을 벗기자 촘촘한 섬유질과 씨앗이 드러난다. 유수영

지난 18일, 지인에게서 천연수세미 하나를 나눔 받았다.

마트 진열대에서 늘 보던 깔끔하고 예쁘게 가공된 합성 섬유 수세미가 아니라, 말라 비틀어진 열매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농촌 출신인 나조차도 처음 보는 수세미의 단단한 껍질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짐작도 어려운 상태였다. '이걸 정말 수세미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천연수세미는 박과 식물의 열매를 말린 것이다. 겉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제거하면 내부에 남은 섬유질이 우리가 사용하는 수세미가 된다. 말로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손질을 해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천연수세미를 만나다

수세미 손질을 마친 천연수세미. 삶기 전 단계의 모습
▲수세미 손질을 마친 천연수세미. 삶기 전 단계의 모습 유수영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가위를 꺼냈다. 껍질을 가르자 안쪽에서 촘촘한 섬유질이 드러났다. 그 사이사이에 검은 씨앗들이 박혀 있었다. 손으로 털어내고, 흔들고, 다시 긁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한 번에 끝나지 않는 작업이었다. 씨앗을 손바닥에 모아보니 제법 많았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수세미 하나에 이렇게 많은 씨앗과 시간이 들어 있었나 싶었다. 비닐 포장에 담겨 있던 인공 수세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섬유질 사이에 남은 껍질 조각을 제거한 뒤, 이제 마지막 손질 단계가 남아 있다. 이렇게 잘라낸 천연수세미는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를 넣은 물에 한 번 삶아준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남아 있던 불순물이 빠지고, 색도 한층 뽀얗게 변한다. 삶은 뒤 깨끗이 헹궈 말리면 비로소 사용 가능한 천연수세미가 된다.

손질을 마친 수세미는 생각보다 단단하면서도 질겼고, 동시에 부드러웠다. '천연'이라는 말이 가벼운 수식어가 아니라는 걸 내 손으로 비로소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천연수세미 하나를 만드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털어내고, 삶고 말리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생활의 속도가 잠시 느려진다. 빠르게 소비하던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준비한 물건을 쓰게 된다는 경험들이 남는다.


수세미씨앗 수세미 속에서 나온 씨앗들. 손질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것도 있고, 하나하나 털거나 꺼내야 하는 것도 있다.
▲수세미씨앗 수세미 속에서 나온 씨앗들. 손질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것도 있고, 하나하나 털거나 꺼내야 하는 것도 있다. 유수영

천연수세미를 손질하며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떤 원대한 계획을 가진 것이 아니어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실천은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할 때마다 버려지는 합성 수세미 대신, 오래 쓰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자그마한 변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하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씨앗들은 그냥 버리지 않기로 했다. 내년에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주말 농장을 분양받아 이 씨앗들을 심어볼 계획이다. 수세미 하나에서 나온 씨앗이 다시 자라고, 또 다른 수세미가 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쓰는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만드는 과정까지 이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지인이 건넨 천연수세미는 평범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생활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한 계기였다. 일회용을 조금 덜 쓰는 선택, 버려질 뻔한 씨앗을 다시 심어보겠다는 계획, 손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여유까지. 수세미 하나가 건네준 변화치고는 꽤 많은 것이었다.

수세미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한 마른 수세미의 모습
▲수세미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한 마른 수세미의 모습 유수영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천연수세미 #수세미만들기 #제로웨이스트 #일회용품줄이기 #수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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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나가는 인물과 장소, 고단한 날들에서 흘러나온 진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길 바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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