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 같다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Unsplash의Etienne Boulange
이런 장면은 복싱장만의 특별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학교 밖 체육관, 독서실, 아르바이트 현장 등 일상의 공간에서 비슷한 대화가 조용히 오가고 있지 않을까요.
딸은 곧 고3이 되고, 아들은 고등학생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고3 학생들과의 대화가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저 학생들은 집에서도 부모님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까?', '우리 아이들도 낯선 어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일상에서는 쉽게 하지 못할 개인적인 이야기나 속마음을,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에게 오히려 더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는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Stranger on a Train phenomenon)'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순간, 이 용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학생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편하게 이런저런 속마음을 꺼내 놓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복싱장에서 만난 '편안한 아저씨'였기 때문에 가능한 대화였을 것입니다. 성적을 평가하지도, 진로를 재단하지도, 조언을 강요하지도 않는 어른. 그저 같은 공간에서 땀 흘리며 운동하는 동료 같은 존재였기에, 학생들은 부담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겠죠. 부모도, 교사도 아닌 어른과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과 앞으로의 삶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응원을 전하며
학생들과 잠깐 나눈 대화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입시는 끝났지만, 아이들의 진짜 삶은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더불어 펼쳐질 불확실한 인생에 대한 불안 역시 점점 더 심화될 것입니다. 수시가 끝난 이후의 고3 교실은 비어 있고, 심리적으로도 공허한 상태에 접어듭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학교에서 나와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직전, 아이들 마음은 어떨까요. 부모보다 편한 어른에게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먼저 꺼내 놓은 마음,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그저 자기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요.
이제 막 숨통이 트인 지금의 고3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컨설팅도, 대학 공부와 취업과 같이 당장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인생 설계가 아닐 것입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지금까지 고생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 사람, 아무 평가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줄 한 명의 어른일지도 모릅니다.
학교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곧 성인이 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의 울타리나 제도적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지 않습니다. 복싱장에서 만난 고3 학생들, 이미 학교 밖에서 어른이 되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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