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책 뒷면 차상순
그가 햇볕을 쬐면서도 바쁘다고 하는 말은 책을 완독하고 나니 백번 이해됐다. 허송세월 중에 그는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유를 깊게 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우리가 불면의 밤에 뒤척이며 집을 몇 채나 지었다 허물었다 하는 짓과 많이 닮았다.
그는 연못 속의 거북들이 바위에 올라와서 볕을 쬐는 것을 지켜본다. 그런데 그 허송세월 중인 거북이를 바라보면서도 진화의 수 억만 년 시간과 공간을 생각한다. 다행히 그런 깊은 생각들을 거북도, 작가도 증발시키고 서로 직접 마주치는 접점에 이른다.
또 작가는 말한다.
햇빛 속에서, 내 생각은 과학적일 수가 없지만 논리와 개념이 제거된 시공을 거슬러 올라가 시원으로 향한다. 이 시원은 여기서 멀지 않다. 날이 저물면 거북들은 물속으로 들어간다. (47P)
그러다가 작가는 햇빛이 없어도 바쁘다는 걸 보여준다. 그럴 때는 햇빛이 없으면 석양을 바라보며 또 사유 속을 유영하느라 바빠진다.
일산 호수공원의 저녁 하늘은 강화, 김포 쪽 하늘부터 붉어진다. 갈 곳도 없고, 올 사람도 없는 저녁에 나는 망원경으로 노을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노을은 내 몸과 마음속에 가득 찬다. 노을 속에서 수많은 색이 태어나고 스미고 번진다. 구름의 가장자리에서 태어난 신생의 색들이 위쪽으로 퍼져 가면, 태어난 지 오랜 색들은 어둠을 맞아들이면서 위쪽으로 물러선다. (48P)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새 1' 과 '새 2'에서(63P~74P) 잘 드러나 있는 듯했다. 그것은 '호수 공원의 봄 1' 과 '호수 공원의 봄 2' (307P~318P)로 연결됐다. 방 창문 앞 모과나무 가지에 새가 둥지를 짓고 있는 것을 보기 시작한 5월 초, 그 새 관찰은 7월 중순까지 연결된다.
3개월 간 새를 관찰하고 들여다본 것을 글로 적었다. 뚝딱 하면 뭐든지 알아내고 한 편의 글을 쉽게 적어내곤 하는 시대에 살면서 그런 작가의 인내와 고찰의 자세가 존경스러웠다. 작가는 호수공원에서 두루미 부화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두루미 부화 실패는 3년째 거듭되었다고 술회한다.
어미 새가 알을 품은 지 닷새 만에 알은 썩어서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조류 학자에게 그 원인을 물어보기까지 한다. 조류 학자는 그 알이 무정란이었다, 라고 했다. 그 두루미 부화 실패를 원인을 미세 먼지라는 생각하다가 냄새로 이어진다. 그 냄새는 부산 피난민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서 '양갈보' 이야기까지 도달한다.
꽃 핀 나무 아래서 온갖 냄새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노년은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이 미세 먼지 속에서 아기들이 태어나서 젖 토한 냄새를 풍겨 주기를 나는 기다린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 (318P)
<허송세월>에서 작가는 그의 언어가 개념에서 인공 부화한 또 다른 말을 따라가기에 힘썼다. 그의 언어가 개념에서 인공 부화한 다른 개념들의 이어 달리기에서 벗어나서 통속을 수행하기를 바랐다. 작가는, 그를 끌고 다니던 말을 버리고 다가오는 말을 맞으려고 애썼다고 했다.
허송세월로 바쁜 그의 모습에서 젊은 사람들이 감히 건져 올릴 수 없는 사유를 발견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생각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가치를 찾는 독서를 원한다면 김훈의 수상록을 읽으면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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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영어 교사로 정년 퇴임 함. 사고로 중증 환자가 된 90년생 아들을 돌보는 간병 일지와 소소한 일상, 디카시, 트롯 Vlog, 엔젤넘버시, AI 노래 창작 등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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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허송세월'도 바쁘긴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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