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는 버스, 갈 때는 택시... 통계가 보여준 노인의 슬픈 귀갓길

경희의료원 앞 노인 이동권 실태조사... 귀가 시 택시 이용 4배 폭증, 서울형 '바우처 택시' 시급

등록 2025.12.22 09:14수정 2025.12.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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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을 찾아야 할 일은 늘어나지만, 정작 병원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젊은이들의 속도'에 맞춰져 있다. 지하철과 버스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높은 장벽이고, 손쉽게 잡히던 택시는 이제 스마트폰 앱 없이는 호출조차 힘든 '디지털 성벽' 뒤로 숨어버렸다.

이에 경희대학교 '세계와 시민' 수업의 일환으로 글로벌 시민 프로젝트(GCP)를 진행 중인 팀 '한울길'은 우리 지역 내 중추 의료기관인 경희의료원(동대문구)을 방문하는 노인들이 실제로 어떤 이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객관적인 수치(설문조사)와 생생한 목소리(인터뷰)를 통해, 어르신들의 병원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1. 숫자가 증명한 현실: "갈 때 택시 타는 이유? 살려고 탄다"

우리 '한울길' 팀은 먼저 객관적인 실태 파악을 위해 경희의료원을 방문한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병원 방문 및 귀가 시 교통수단'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등원길과 하원길의 교통수단 선택에서 충격적인 차이가 발견됐다.

 경희의료원 내원시 이동수단 설문
경희의료원 내원시 이동수단 설문 한울길
 경희의료원 퇴원시 이동수단 설문
경희의료원 퇴원시 이동수단 설문 한울길
[병원에 오실 때는 무엇을 타고 오셨나요?]
버스 (34.8%)
지하철 (26.1%)
기타 (자가용, 도보 등) (30.4%)
택시 (8.7%)

[댁으로 가실 때는 무엇을 타고 가시나요?]
버스 (25.0% / ▼9.8%p 감소)
지하철 (17.9% / ▼8.2%p 감소)
기타 (21.4% / ▼9.0%p 감소)
택시 (35.7% / ▲27.0%p 폭증)

병원에 올 때 택시를 이용한 어르신은 10명 중 1명(8.7%)도 채 되지 않았다. 대부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을 찾았다. 교통비를 아끼려는 알뜰함과, 진료 전이라 그나마 남아있는 체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택시 이용률은 35.7%로, 올 때보다 무려 4배 이상 폭증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이는 어르신들에게 병원 진료가 얼마나 고된 육체적 노동인지를 방증한다. 채혈, 검사, 긴 대기시간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다시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즉, 귀갓길의 높은 택시 이용률은 편안함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어 지갑을 여는 '생존 비용'인 셈이다.


2. 현장의 목소리: "자식 부르긴 미안하고, 버스는 너무 힘들어"

우리는 통계 뒤에 숨겨진 구체적인 사연을 듣기 위해 설문에 응해준 어르신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통계 수치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자녀에 대한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인터뷰 1] "다리가 너무 아파서..." 버스의 높은 벽

Q. 어르신, 병원 오실 때 어떻게 오셨나요?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A. "신설동에서 1호선 타고 동대문 마을버스(01번) 타고 왔지. 근데 버스가 출발하지도 않고(대기), 항상 청년들이 앉아있어서 서서 오느라 다리가 너무 아퍼. 병원 셔틀이라도 하나 만들어줬음 좋겠어."
Q. 어르신은 댁에 어떻게 가시나요?
A. "갈 때는 힘들어서 택시 타고 가. 어쩔 수 없어. 나 같은 노인네들은 진료받고 나면 다리가 아파가지고 버스는 못 타..."

[인터뷰 2] "자식들 바쁜데..." 눈치 보는 부모 마음

Q. 오늘 병원에는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셨나요?
A. "오늘은 애들이 시간이 돼서 차로 데려다줬어. 근데 부모 입장에서는 애들에게 매번 부탁하는 게 미안해. 애들도 출근 준비해야 하고 바쁜데, 내가 병원 갈 때마다 시간을 내달라고 하면 부담이 되겠지."
Q. 자녀분께 부탁 못 할 땐 택시를 타시나요?
A. "그래야지… 근데 아침 출근 시간 때는 택시가 정말 안 잡혀. 내가 오래 서 있지를 못해서 지팡이를 짚고 있어도 허리나 다리가 금방 아파서. 택시 안 잡히면 큰길까지 걸어가기도 하는데 너무 힘들어."

3. 서울에는 없는 '어르신을 위한 발'

 경희의료원 안팎에서 설문을 진행하였다
경희의료원 안팎에서 설문을 진행하였다 최서영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문제는 명확했다. 어르신들은 경제적 부담(택시비), 기술적 소외(앱 호출 불가), 신체적 한계(보행 불편)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특히 서울시에는 장애인을 위한 바우처 택시는 존재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단독을 위한 지원 제도는 전무하다.

우리 '한울길' 팀은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울산광역시에서 찾았다. 울산시는 올해 상반기부터 전국 최초로 8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바우처(이용권) 택시' 지원 정책을 도입했다. 우리는 이 정책의 실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울산시 교통기획과 담당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버스나 지하철 이용이 사실상 어려운 초고령층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해당 정책을 추진했다"며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도입 전부터 고령자의 병원 접근성 문제가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바우처 택시 도입 후 실제 어르신들의 병원 이동 편의성이 수치적으로나 체감적으로 크게 개선되었다"고 밝혔다. 울산의 사례는 서울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4. 제안: 서울형 바우처 택시와 병원 셔틀버스

노인의 병원 이동권 보장은 단순히 편하게 이동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권'이자,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을 '연결의 권리'다. 이에 경희대 GCP팀 '한울길'은 현장의 목소리와 타 지자체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다음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서울시는 '고령자 바우처 택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바우처 택시 제도를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에게까지 넓혀야 한다. 울산시의 사례처럼,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앱 호출의 장벽 없이, 경제적 부담을 덜고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어르신들의 독립적인 이동을 돕고, 가족들의 돌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안이 될 것이다.

둘째, 경희의료원 및 지자체 협력을 통한 '병원 셔틀버스' 도입이다.

인터뷰에 응한 어르신이 호소했듯, 회기역에서 병원까지 이어지는 마을버스는 혼잡과 좌석 부족으로 노약자가 이용하기에 매우 위험하다. 주요 거점(지하철역 등)과 병원을 잇는 셔틀버스 운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젊은이들에게는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해결될 이동이, 어르신들에게는 땀과 눈물로 점철된 고단한 여정일 수 있다. 이제 서울시와 의료기관이 응답할 차례다. 어르신들이 미안해하지 않고, 아프면 언제든 편안하게 병원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고령층이동문제 #경희의료원 #바우처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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