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 '보장'이 '의무'로 바뀐 순간

[주장] 교원의 정치기본권은 헌법을 거스르는 요구가 아니라, 헌법으로 돌아가자는 요청이다

등록 2025.12.21 11:57수정 2025.12.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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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과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곳에 다녀왔다. 이 요구를 두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다", "공직자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쟁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제시되어 온 헌법 조문 자체가, 사실은 국가의 보장의무를 규정한 조항이라는 점이다. 헌법 조문을 살펴보자.

헌법 제7조 제2항
"모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그 신분과 정치적 중립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된다."
→ 여기서 보장은 국가가 보호·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헌법 제31조 제4항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또한 보장되어야 할 가치로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보장'이라는 단어다. 이 문장은 교사와 공무원이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아니라, 국가가 교사와 공무원을 정치 권력과 외부 압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진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이 조항을 정반대로 해석해 왔다. 국가가 져야 할 보장 의무는 개인의 의무로 전도되었고, 보호의 원칙은 통제의 근거로 바뀌었다. 그 결과 교사와 공무원은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표현과 참여를 광범위하게 제한받아 왔다. 헌법이 개인을 지키기 위해 만든 문장이, 개인을 침묵시키는 도구가 된 셈이다.

이러한 전도는 교원의 정치기본권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반복해서 '권리의 보장'을 '개인의 의무'로 바꿔왔다.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할 의무로,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아야'할 권리는 '통신의 비밀을 지켜야할 의무'로, 표현의 자유는 "말 조심해야 할 책임"으로, 노동권은 "공공성을 해치지 말아야 할 의무"로 해석되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권리는 축소되고, 통제는 강화되었다.


전교조 위원장과 공무원노조 위원장 단식농성장 방문 전교조 위원장과 공무원노조 위원장이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단식농성을 3일째 이어가고 있다.
▲전교조 위원장과 공무원노조 위원장 단식농성장 방문 전교조 위원장과 공무원노조 위원장이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단식농성을 3일째 이어가고 있다. 박효진

교원의 정치기본권 역시 같은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교사가 정치적 발언을 하면 '중립 위반'이 되고, 사회 문제에 의견을 표하면 '직분 망각'이 된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중립의 본래 취지와 거리가 멀다. 정치적 중립이란 특정 권력에 예속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국가가 지켜주어야 하는 원칙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가치 중립적일 수 없다.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참여라는 헌법적 가치를 가르치는 일이 어떻게 정치와 무관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교사에게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유보시키는 사회는,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요구는 새로운 특권을 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을 다시 읽어달라는 요청이며, '보장'을 '의무'로 뒤집어 온 왜곡된 해석을 바로잡아 달라는 요구다. 헌법의 언어를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시민의 언어로 되돌려 달라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여론의 눈치를 보는 유보적 태도가 아니다. 정치의 역할은 기본권을 여론의 승인 대상으로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왜 이런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며 제도를 고치는 일이다.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민주주의의 위협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교사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이다. 그리고 시민의 권리는,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니라 국가가 반드시 보장해야 할 약속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정치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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