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억한다. 2024년 12월 21일, 그리고 22일. 농민들과, 농민들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살을 에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울고 웃던 동짓날 밤을. 사람들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 나오던 역 출구들을. 차벽을 열고 서울 도심을 힘껏 달린 트랙터가 들녘으로 돌아갈 때까지 떼지 못한 그 눈길을.
남태령.
그곳은 평등이 우리의 몸을 통과한 자리였고, 돌봄과 환대가 그 중요성에 걸맞은 위상을 되찾았고, 민주주의가 제도 밖에서 다시 태어난 현장이었으며, 새로운 역사가 현재형으로 발생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순간을 우연한 사건으로 남기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날을 기념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날을 계속 살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평등을 구호로 소비하지 않는다. 평등은 서로를 동지로 부를 때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누군가의 고통을 구경만 하지 않고, 누군가의 투쟁을 상징으로 축소하지 않으며, 위기의 순간에 한편이 되어 함께 버티고 저항하는. 앞과 뒤, 위와 아래, 시작과 끝이 없는. 차오르고 기울길 반복하는 달과 파도의 변화무쌍함.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평등이고,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술로 축소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논밭에서, 강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온 생태계에서, 부엌에서, 책 속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의 마주치는 눈빛 사이에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여성과 약자, 소수자의 몸, 농민, 저항과 돌봄의 시간. 보이지 않던 노동과 말해지지 않았던 감정은 이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오래된 정치다. 우리는 가장 오래된, 중요한 것들을 차별과 혐오로부터 지켜낼 것이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힘을 주변부로 밀어내는 사회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의 중심으로 다시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돌봄을 개인의 미덕이나 희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돌봄은 연대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조건, 투쟁이 지속되기 위한 인프라다. 우리는 지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돌보고, 재우고 깨운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 함께 약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우리는 다양성을 관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성과 함께 산다. 다른 삶의 조건, 다른 언어, 다른 속도는 연대를 위협하는 위험이 아니라 사회를 확장시키고 결속시키는 가능성이며, 숨 쉴 틈새다. 여러 목소리가 함께 울리는 합창 속에서 우리는 화음으로 흐른다.
우리는 역사를 보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사용한다. 역사와, 아스팔트 위에 남은 발자국을 다음 목적지의 지도로 삼으며 나아간다. 우리의 경로는 다음 걸어갈 사람들을 위해 기록한다. 남태령은 다음 연대를 준비하는 기억이다.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동심원. 둥글게 둘러앉은 평등, 결의가 담긴 사발통문. 무수한 '남태령들'의 중첩된 해방공간. 파도처럼 나아가는 군중의 힘찬 목소리. 우리는 우리의 저력으로 결심했고 버텼고 일어섰고 나아간다. 천천히. 당당히. 드넓게. 유연하게.
2025.12.21. 통인동, 풍요와 상생의 공간 '합'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