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찰부의 반민 피의자 기소현황 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된 피의자 가운데 친일 군인 경찰이 가장 많다(이강수 <반민특위연구> 194쪽을 글쓴이가 촬영함)
하성환
반민법 시행 당시 체포할 1순위이자 가장 많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은 단연코 친일 군인 경찰들입니다. 그들은 항일독립전쟁 시기, 독립운동가를 체포 살해한 반민족 행위의 죄과가 가장 컸습니다.
두 번째로 이승만은 국회에서 간선제로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선제 개헌에 반대했던 국회의원들을 통근버스 통째로 납치해 헌병대에 감금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른바 이승만 1인 독재를 위한 부산정치파동(1952)입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통근버스를 납치해 국회 해산을 압박하며 결국 발췌 개헌(1952)을 성사시켜 대통령 직선제로 2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후 이승만은 영구집권을 욕망하며 세 번째 대선 출마를 위해 대통령 중임제한을 없애는 사사오입 개헌(1954)을 자행합니다. 처음엔 헌법 개정에 필요한 136표에 1표가 모자라 결국 부결됩니다. 그러나 서울대 수학과 최윤식, 이원철 교수가 재적 2/3는 135.333...명인데 사사오입하면 재적 2/3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끌어오자 이승만은 부결된 안건을 이틀 후 전격 통과시킵니다. 한 마디로 이승만은 의회민주주의를 짓밟은 희대의 인물이자 의회정치를 말살한 장본인입니다.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 있는 이승만 기념상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 초대 국회의장 이승만 기념동상이 크게 세워져 있다.
하성환
그런데도 초대 국회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엔 이승만 기념상이 큼직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이승만 기념동상 옆 표지석 글귀 의회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한 전무후무한 인물임에도 표지석 동판에는 <의회정치 발전 초석,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귀감>이라고 새겨져 있다.
하성환
문제는 기념상 옆 표지석에 "의회정치 발전의 초석을 놓으신 우남 이승만 박사의 뜻을 기리고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란 글귀가 동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국회프락치 사건(1949), 부산정치파동(1952), 사사오입개헌(1954), 부산보안법 파동(1958)을 통해 '의회정치를 탄압하고 헌정질서와 의회민주주의를 말살했던 이승만'임에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 현실입니다.

▲군인들이 깨트린 국회 본관 유리창 12.3 내란 당시 특전사 군인들이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부수고 난입한 공간을 전시 교육공간으로 조성해 놓았다.
하성환
우리는 12·3 내란 당시 군대를 동원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의원들을 체포하려 한 윤석열을 기억합니다. 군인들은 유리창을 깨부수고 의사당 난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의정활동을 짓밟았던 내란 수괴 윤석열을 끝내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계엄을 선포해 국회의원을 체포 고문하고 의회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철저히 파괴한 이승만의 죄과는 결코 윤석열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제 해방된 지 80년이 지났습니다. 역사바로세우기는 대한민국을 올바른 반석 위에 세우는 첫걸음입니다. 아직도 황당한 표지석 글귀가 국민대표기관, 그것도 국회의사당 안에 있다는 건 참으로 씁쓸한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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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처음엔 교육문제로, 그 다음엔 근현대사 속 거짓 신화를 벗겨내고 왜곡된 인물 연구로, 그러다가 퇴직 후엔 다시 시민교육의 절실함 속에 시민교육을 국가수준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하여 성숙한 시민을 길러낼 정치교육, 노동인권교육, 환경생태교육, 정보문해력 교육을 포함한 민주시민교육을 북서유럽처럼 공식화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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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이승만 기념상 표지석을 즉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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