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 놀이 공간인 '모두놀터'에 설치된 거대 산타. 고장난 농구대에도 산타가 등장했다.
이준수
트리에 앞서 깜짝 행사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학교 곳곳에 산타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 학교 2층에는 실내 놀이터 겸 운동시설인 '모두놀터'가 있다. 모두놀터 로프 사다리에 산타 풍선 인형을 설치했다. 거인처럼 커다란 산타였다. 덕분에 담임 선생님들은 학급에서 이중으로 학급운영비를 지출해 산타클로스 인형이나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지 않게 되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지지 않는 멋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보겠어!"
회장단은 열의에 불타올랐다. 시작은 포스터 제작이었다. 제작 기간은 사흘. 금쪽같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모두 바쳤다. 제작방식은 100% 수공예였다. 아이들은 평상에 둘러앉아 일일이 손으로 포스터를 완성해 갔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했다면 1분도 안 되어 도안이 뚝딱 나왔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개인별 스마트패드가 있고 학생은 2학기 내내 AI 융합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편리한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예전 방식으로 작업하기로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는 사람과의 의견 조율 방법을 익히는 데 적합하지 않다. 프롬프트를 고쳐가며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혼자서 작업할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쳐야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단어 선택도 신중해야 한다.
색연필과 마카, 반짝이 풀을 돌려쓰는 협동 작업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맡은 부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되, 다른 사람의 작업물과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신경 써야 한다. 몇 번의 보완을 거친 포스터는 1층과 2층에 각각 붙었다. 손때 묻은 포스터는 컴퓨터로 제작한 인쇄물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쇼핑몰에서 산 트리가 아니라 '우리 트리'

▲ 나흘간의 쉬는 시간을 온전히 바쳐 그린 크리스마스 행사 포스터. 1층에 한 장, 2층에 한 장이 걸렸다.
이준수
행사 당일,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 부스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평범한 학교 행사와 차이가 있다면 부스 선생님도 만드는 손님도 아이라는 점이었다. 회장단은 후배를 성심껏 맞이했다. 선생님들은 옆에서 흐뭇한 표정을 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은 단순히 공부하는 것보다 '타인을 가르칠 때' 배움의 효율이 극대화 된다.
부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 장식 만들기에 숙달되어 있어야 한다. 회장단을 비롯한 5학년 도우미들은 여러 번 연습을 하며 작업에 익숙해져 있었다. 탈지면을 몽글몽글하게 뭉쳐 구름 느낌을 내는가 하면, 미니 종을 달아 재미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창의성은 자신이 활동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들 때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교사가 주도하는 행사에서 학생이 '손님'으로만 참가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마도 즐겁게 참여야 하겠지만 주어진 재료나 예시 모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행사용 '키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처럼. 크리스마스 행사는 나흘간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요즘 교육 현장은 '얼마나 빠르게 할 수 있는가'를 중시한다. 정해진 시간에 많은 내용을 소화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과에 도달했는지가 관건이다.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학생이 주도하는 활동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교과 성적과도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찾기 어렵다.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가 필수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만 담임으로서 나는 분명 유의미한 교육적 행위라고 실감했다. 그 과정이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견을 조율하는 데 서툴다. 손도 야무지지 않다. 그렇기에 '사회적 학습'은 더디게 진행된다. 어른이 보기에 답답해 보여도 실제로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1층으로 밥 먹으러 갈 때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지나간다. 배고프다고 쌩 지나치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바라보듯 저마다 트리를 다정하게 쳐다본다. 그 트리는 쇼핑몰에서 산 트리가 아니라 '우리 트리' 였다. 내가 만들지 않았어도, 방울 장식이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다시 걸어주었다. 포근한 연말을 닮은 풍경이었다.

▲ 1층 복도의 우리 트리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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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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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빠지자 아이들이 달라졌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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