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고통은 끝내 '사건'이 되지 못하는가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4] 수지 가이거의 <불발> 프로젝트

등록 2025.12.22 11:56수정 2025.12.2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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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W2026 특집]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섭식장애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미적 기준의 영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감정, 신체, 관계, 사회 구조, 의료 체계, 기술 환경이 서로 깊게 얽힌 정치적·물질적·제도적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논의는 오랫동안 개인 책임, 가족 문제, 혹은 의학적 진단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는 이러한 협소한 틀을 넘어, 세계 각지의 연구자·활동가·정책 전문가·당사자 연구자들이 경험과 지식으로 구축해온 더 넓은 정치적 지평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현장에서 일하지만 섭식장애를 이해하고 돌봄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법, 젠더, 노동, 디지털 기술, 불평등, 거버넌스, 당사자 경험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 시리즈는 그들의 목소리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해 전하며, 한국의 독자 - 특히 당사자, 활동가, 정책 입안자, 연구자 - 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기획·글: 박지니 (작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활동가)

우연한 '실패(failure)'? 구조적 '불발(misfires)'

지난 11월 27일, 아일랜드 더블린대학에서 열린 학술 시상식에서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된 수지 가이거(Susi Geiger)는 "학술 연구에서 돌봄의 윤리를 수행하기(Enacting an Ethics of Care in Academic Research)"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이 강연이 특별했던 이유는, 시상식은 아일랜드 경영학회(Irish Academy of Management)에서 주최한 행사였고 가이거 자신 역시 오랫동안 '시장'을 연구해 온 경영학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의 학문 환경에서는 시장 분석과 돌봄의 윤리가 같은 문장 안에 놓이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강연에서 가이거가 분명히 한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시장을 연구하는 학술 작업에서 논문 출판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며,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무엇을 돌려주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 전 과정에 깊이 개입하는 '돌봄' 또한 감정이나 개인적 미덕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 설계와 방법론을 관통하는 원리여야 한다. 이 선언은 수상 소감의 형식을 취했지만, 헬스케어 시장 연구 전반을 향한 방법론적 선언에 가까웠다.

의료시스템의 실패, 제약산업, 디지털 헬스케어, 환자·당사자 액티비즘을 포괄하는 '헬스케어 시장'은 수지 가이거가 십여 년째 비판적으로 분석해 온 핵심 연구 대사이다.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를 오가며 연구해 온 그는, 프랑스 사회과학과 과학기술연구(STS)의 구성주의적 전통, 독일 경제사회학과 조직이론, 그리고 영국·아일랜드의 비판적 정치경제학과 보건의료정책 연구를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학문적 기반 위에서 EU 차원의 대규모 연구비 지원을 받으며 수년에 걸쳐 시장과 돌봄의 긴장을 분석하는 장기적 연구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왔다.

수지 가이거가 말하는 시장 연구에서의 돌봄의 윤리 지난 11월 더블린에서 열린 아일랜드경영학회 시상 행사에서 수지 가이거(왼쪽)가 동료 연구자 니콜 그로스(Nicole Gross)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로스는 가이거와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업해 온 동료 연구자다. 두 사람은 내년 2월 출간 예정인 에 ‘디지털 치료제(DTx)를 ‘기술적 환경(technical milieu)’으로 바라보기(Digital therapeutics (DTx) as a “technical milieu”: Overcoming psychic and economic alienation rather than playing catch-up)’을 공동 집필했다. <불발> 프로젝트가 “왜 어떤 고통은 시장과 돌봄 체계 안에서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다뤘다면, 가이거?그로스의 DTx 연구는 고통이 이미 개입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 이후, 기술적 인프라가 돌봄과 책임, 주체성, 그리고 소외를 어떻게 재조직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수지 가이거가 말하는 시장 연구에서의 돌봄의 윤리 지난 11월 더블린에서 열린 아일랜드경영학회 시상 행사에서 수지 가이거(왼쪽)가 동료 연구자 니콜 그로스(Nicole Gross)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로스는 가이거와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업해 온 동료 연구자다. 두 사람은 내년 2월 출간 예정인 에 ‘디지털 치료제(DTx)를 ‘기술적 환경(technical milieu)’으로 바라보기(Digital therapeutics (DTx) as a “technical milieu”: Overcoming psychic and economic alienation rather than playing catch-up)’을 공동 집필했다. <불발> 프로젝트가 “왜 어떤 고통은 시장과 돌봄 체계 안에서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다뤘다면, 가이거?그로스의 DTx 연구는 고통이 이미 개입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 이후, 기술적 인프라가 돌봄과 책임, 주체성, 그리고 소외를 어떻게 재조직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Brian Harney

지난 2018년 가이거는 유럽연구위원회(ERC)로부터 6년에 걸친 대형 연구 지원을 받았고, 지난해 5월 해당 프로젝트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제약 자본주의와 공공선의 긴장을 이론적으로 재구성한 공저 <피크 파마(Peak Pharma: Pharmaceutical Capitalism and the Common Good)>(2025), 헬스케어의 시장화와 디지털화 속에서 환자·당사자·시민사회의 개입과 저항을 분석한 편저 <헬스케어 액티비즘(Healthcare Activism: Markets, Morals, and the Collective Good)>(2021), 그리고 시장을 고정된 구조가 아닌 사회기술적 실천의 장으로 재사유하며 더 공정한 시장 개입의 가능성을 탐색한 <마켓 스터디즈(Market Studies: Mapping, Theorizing and Impacting Market Action)>(2024) 등 총 3권의 책과 37편의 논문을 포함한 방대한 연구 성과로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 보고서 제목은 다름 아닌 <불발(Misfires)>이다.

이 제목은, 헬스케어 시장이 특정한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고 어쩌면 도리어 방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시장이 일시적으로 자기 역할에 '실패(failure)'한 결과로 해석하는 대신, 시장이라는 체계의 작동 원리와 메커니즘 자체가 어떤 종류의 고통을 자기 내부에 기입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국가는 이런 '실패'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제도 보완이나 정책 패치를 덧대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그 실패가 반복되고 누적되며 결국 영구화될 수밖에 없는 '미작동(misfire)'이라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 이때 필요한 질문은 "어디에서 고장이 났는가"가 아니라, "어떤 지점이 애초에 작동하지 않도록 배치되어 있는가"여야 한다.

'불발(Misfires)'은 보고서의 제목인 동시에, 가이거가 ERC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이 연구 프로젝트 전체의 이름이다. '실패'는 고쳐야 할 오류이지만, '불발'은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그것이 문제로 인식되지 않거나, 인식되더라도 제도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는 고장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반복되는 태생적 작동 방식이다. 연구의 출발점은 헬스케어 시장이 실패한다는 진단이 아니다. 헬스케어는 늘 실패해 왔다. <불발> 프로젝트가 묻는 것은 다른 질문이다.

왜 이 실패들은 반복되는데도 수정되지 않는가.
왜 어떤 고통은 계속 발생함에도 끝내 '문제'로 동록되지 않는가.

이 프로젝트는 의도적으로 제약기업이나 정책 결정자의 시점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환자 단체, 접근권 운동가, 그리고 시장의 주변부 — 이른바 '언더독'의 위치에 서 있는 행위자들을 연구의 중심에 둔다. 시장이 무엇에는 즉각 반응하고 무엇은 끝내 무시하는지는 그 주변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부 연구 지원 체계에서, 시장의 구조적 무능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연구가 성과 지표나 정책 순응을 조건으로 삼지 않은 채 6년 동안 지원받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는 곧 섭식장애로 이동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 질문이 어떤 사건들을 관통하며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의 생성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수지 가이거가 주도한 연구 프로젝트 <불발>의 직접적인 성과들 <헬스케어 액티비즘>, <마켓 스터디스>, <피크 파마>는 모두 고통과 돌봄이 시장 안에서 어떻게 가치화되고, 조직되며, 배제되는가라는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결과물이다. 이 세 권의 책은 헬스케어, 시장, 제약 산업을 가로지르며, 어떤 고통이 문제로 등록되고 어떤 고통이 끝내 문제화되지 않는지를 체계적으로 추적한다.
▲수지 가이거가 주도한 연구 프로젝트 <불발>의 직접적인 성과들 <헬스케어 액티비즘>, <마켓 스터디스>, <피크 파마>는 모두 고통과 돌봄이 시장 안에서 어떻게 가치화되고, 조직되며, 배제되는가라는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결과물이다. 이 세 권의 책은 헬스케어, 시장, 제약 산업을 가로지르며, 어떤 고통이 문제로 등록되고 어떤 고통이 끝내 문제화되지 않는지를 체계적으로 추적한다. Susi Geiger

고통은 관측되지만, 문제는 등록되지 않는다, <불발>이 목격한 여섯 개 장면


<불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이거와 동료들은, 헬스케어 시장이 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어떻게 고통을 처리하고 동시에 배제하는지를 오랜 기간 직접 관측하거나 기록을 파헤쳤다. 언뜻 서로 무관하고 이질적으로만 보이는 여섯 개의 사건들은 시장에 구조적으로 박혀 있는 인식적 한계를 동일하게, 증후적으로 드러냈다.

​1. 면역결핍 바이러스(HIV)에 대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ART): '접근성'을 불가능한 가치로 만드는 작동 방식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 연구에서 가이거가 주목한 것은, '접근성(access)'이 정책 문서와 국제 보건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목표로 명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의 조건에서는 지속적으로 좌초된다는 사실이다. 케냐와 아일랜드라는 서로 다른 보건 체계를 가진 두 지역에서 수행된 현지조사는, 치료 접근의 좌절이 자원의 절대적 부족이나 제도의 부재 때문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치료제는 존재하고 공급 경로도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환자에게 치료가 도달하지 않는 이유는 치료제가 환자에게 이르기까지의 '마지막 구간(last mile)'에서 작동하는 요인들 때문이다. 여기에는 낙인이 개입하고, 행정 절차가 지연을 낳으며, 정보의 비대칭이 접근을 가로막는다. 의료 제공자와 당사자 사이의 관계 단절 역시 이 구간에서 반복적으로 관측된다. 이 요인들은 각각은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결합되는 순간 치료 접근을 체계적으로 차단하는 장벽으로 작동한다.

가이거는 이 상황을 유통이나 공급의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도리어 접근성이 기술적·물류적 문제로 환원되는 방식이다. 접근성은 약을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얼마나 널리 유통시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실제로 돌봄의 관계로 번역되도록 누가 책임지는가의 문제다. 이 책임이 제도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급이 아무리 충분해도 접근은 보장되지 않는다.

즉, 치료적 자원은 존재하지만 그 자원이 돌봄으로 작동하도록 책임지는 주체가 부재할 때, 구조적 미작동이 발생한다. 이 경우 시장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접근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책임을 애초에 자신의 작동 범위 안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불발(misfires)'이 발생한다.

2. 고가 의약품: '가격'과 '책무성'

소발디(Sovaldi)는 2013년 말 미국에서 출시된 길리어드의 C형 간염 치료제로 C형 간염을 완치 가능 영역으로 이끈 혁신적 약물로 평가받으며 시장을 선도했지만, 동시에 치료 접근을 가로막는 가격 구조를 고착시켰다. 이후 더 발전된 약물이 등장하며 현재는 시장에서 퇴장 수순을 밟고 있지만, 가격을 둘러싼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가이거는 소발디를 비롯한 "혁신" 의약품들의 가격이 단순히 기업의 탐욕이나 예외적 폭리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특허의 금융화, 국가 간 가격 협상 구조, 공공보험 재정 논리가 맞물리면서, 가격은 기술적·행정적 협상의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왜 이 가격이 정당한가", "누가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도덕적·정치적 질문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변수로 축소된다.

제약 투명성 운동은 바로 이 질문을 다시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시도였지만, 가이거의 분석에 따르면 이 운동이 직면한 한계는 명확하다. 가격은 조정될 수 있지만, 책임을 묻는 언어는 시장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는 점이다. 즉, 시장은 가격을 산출하고 협상하는 장치는 갖추고 있지만, 그 가격이 야기하는 배제와 고통을 책임의 문제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 이 경우 시장은 윤리적으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즉, 문제는 가격이 높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가격이 누구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묻는 질문이 끝내 문제로 등록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것이 가이거가 말하는 '불발'이다.

3. 유전 연구: '집합적 선(collective good)'이라는 언어의 정치

유전 연구 사례에서 가이거가 주목하는 것은, '집합적 선'이라는 언뜻 진취적이고 이상적으로 들리는 언어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아프리카인의 DNA를 상업화하려 했던 영국 생거연구소, 그리고 뇌종양 환자들의 DNA 샘플을 활용하면서도 연구 방향과 활용에 대한 실질적 동의를 제공하지 않았던 아일랜드 지뉴이티 사이언스의 사례는, 서로 다른 맥락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구조를 드러낸다.

이 연구들은 모두 공익을 명분으로 수행되었다. 그러나 참여자들은 연구의 목적, 데이터 활용 방식, 상업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착취를 경험해 온 집단에게 '집합적 선'이라는 언어는 보호의 약속이 아니라, 기존의 권력 관계를 가리는 장치로 작동한다. 윤리는 참여를 요청하면서도 권력 재배치를 차단하고, 정당성은 확보하되 책임은 이동시키지 않는다. 이 경우 발생하는 불발은 연구 윤리의 실패가 아니라, 윤리가 제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한 결과다.

4. 제1형 당뇨병 당사자 커뮤니티: 기다림이 강제되는 시장

#WeAreNotWaiting 사례에서 가이거는 질병 경험 당사자들의 풀뿌리 혁신 — 잠수함토끼콜렉티브의 세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5)에 연자로 참여했던 수재너 폭스(Susannah Fox)의 용어를 빌자면 'Rebel Health' — 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이 운동은 흔히 '환자 혁신'이나 '시민 기술'의 성공 사례로 호명되지만, 가이거의 관심은 성취가 아니라 그 출발 조건에 놓여 있다.

당시 상용 의료기기는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폐쇄되어 있었고, 사용자 요구는 반복적으로 무시되었다. 당사자들이 직접 기술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창의성이나 기업가정신 때문이 아니라, '기다림(waiting)'이 구조적으로 강제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요구를 인식하지 않았고, 개선은 약속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는 일시적인 시장 실패가 아니라, 의료기기 시장이 특정 요구를 아예 문제로 기입하지 않는 만성적 '미작동'의 사례였다.

따라서 이 사례는 시장 실패를 보완한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어떤 고통과 요구를 끝내 문제로 삼지 않는지를 드러낸 장면이다. 당사자의 개입은 해결책이라기보다, 그 미작동이 얼마나 깊고 구조적인지를 가시화한 계기였다.

5. 코로나19 팬데믹: '연대'는 선언되지만 실행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연대(solidarity)'가 반복적으로 호명된 사건이었다. 백신과 치료제를 공공재로 만들자는 요구, 지식재산권 일시 유예(TRIPS Waiver)를 둘러싼 글로벌 캠페인은 이러한 연대의 언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정책 결정의 순간마다 우선된 것은 지식재산권과 국가 이익이었다.

가이거와 동료들은 이 사례에서 팬데믹을 '실패한 대응'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그들이 포착하는 것은, 연대가 실행되지 않도록 만드는 제도적 배열이다. 연대는 윤리적 언어로는 존재했지만, 법과 시장의 층위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 불발은 예외적 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팬데믹은 오히려, 어떤 고통이 항상 국경 밖으로 밀려나는 정상 상태를 드러내는 계기였다.

6. 만성질환: '논쟁적 질환(contested illness)'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는 고통

근육통성 뇌척수염/만성피로증후군(ME/CFS)과 롱코비(Long COVID)를 다룬 마지막 사례에서 가이거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들에 대한 치료의 부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질환들이 지속적으로 '논쟁적' 상태에 머무는 방식이다. 이들 질환은 분명 고통의 실재가 부정되지는 않지만, 병인, 예후, 치료에 대한 의학적 합의가 부재하다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의심되고, 축소되며, 제도적 책임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가이거는 이러한 '논쟁 상태'를 단순한 지식 부족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판단이 장기화되면서, 국가는 개입을 유보하고 시장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 사이 의료비, 실직, 일상 유지 비용, 심리적 소진과 같은 부담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한국의 경우 섭식장애 역시 고통의 실재가 부정되지는 않지만, 국가는 '적절한 치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선언적 언어만을 반복한 채, 그 이후의 책임을 의료·정신의학 체계에 전적으로 위임해 왔고, 그 결과 이 질환은 장기간 '논쟁적 상태'로 방치돼 왔 왔다. 공적으로는 정신과 의사 집단의 지적 권위가 신뢰의 근거로 작동하지만, 실제로는 섭식장애를 충분히 이해하고 장기적 치료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인프라·체계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치료의 난이도와 장기성, 다층적 지원의 필요성은 제도적으로 다뤄지지 않았고, 실질적인 공공 치료·지원 시스템 또한 수십 년째 형성되지 못했다.

이처럼 국가의 책임이 유예된 상태에서 '논쟁적 질환'이라는 지위가 유지되자, 섭식장애는 의료적 문제이자 사회적 과제로 다뤄지기보다, 점차 게으름·무책임·자기관리 실패와 같은 도덕적 판단의 언어로 미끄러져 왔다. 특히 여성 청소년의 문제로 축소된 이 질환은, 충분한 공적 개입을 요구할 권리로 인식되기보다 '돌볼 가치가 있는 고통'의 경계 밖으로 배제되었다.

세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5) ‘혁명 세션’ 라이브 스트리밍 화면 '혁명 세션'의 연자로 참여한 수재너 폭스(Susannah Fox)는 그의 저서 에 기반해, 미국에서 전개된 ‘환자 주도 혁명(Patient Revolution)’의 역사와 그 작동 방식을 짚었다. 그가 만든 이 도식은 환자 주도 개입이 주로 가시적이고 요구가 충족 가능한 고통에 집중되어 왔음을 보여주며, 섭식장애처럼 도덕화되고 비가시화된 고통이 왜 반복적으로 배제되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대비는 수지 가이거의 <불발>이 분석한 여섯 개 사례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 ? 어떤 고통은 문제로 등록되고, 어떤 고통은 끝내 문제화되지 않는 조건 ? 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조점으로 기능한다.
▲세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5) ‘혁명 세션’ 라이브 스트리밍 화면 '혁명 세션'의 연자로 참여한 수재너 폭스(Susannah Fox)는 그의 저서 에 기반해, 미국에서 전개된 ‘환자 주도 혁명(Patient Revolution)’의 역사와 그 작동 방식을 짚었다. 그가 만든 이 도식은 환자 주도 개입이 주로 가시적이고 요구가 충족 가능한 고통에 집중되어 왔음을 보여주며, 섭식장애처럼 도덕화되고 비가시화된 고통이 왜 반복적으로 배제되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대비는 수지 가이거의 <불발>이 분석한 여섯 개 사례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 ? 어떤 고통은 문제로 등록되고, 어떤 고통은 끝내 문제화되지 않는 조건 ? 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조점으로 기능한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실패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실패로 인식되지 않는지를 묻기

<불발(Misfires)>이 제안하는 전환은 정책 개선의 기술이 아니다. 이 연구가 요구하는 것은, 문제를 더 잘 고치는 방법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로 인식되지 않도록 배치되어 왔는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이다. 물론 "왜 이 정책은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이거가 여섯 개의 사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는 질문은 그 지점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묻는다. 왜 어떤 고통은 실패로조차 인식되지 않는가. 왜 어떤 고통은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주변 조건으로 처리되는가.

여섯 개의 사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고통은 감춰져 있지도 않고 발굴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관측된다. 데이터는 수집되고, 경험은 보고되며, 비용은 발생한다. 그럼에도 그 고통이 건강권과 차별금지 원칙의 침해인지, 국가가 제도적으로 책임져야 할 실패인지를 묻는 언어는 끝내 호출되지 않는다. 이때 시장은 고통 그 자체에 반응하지 않는다. 시장이 반응하는 것은 오직 실패로 번역된 고통, 다시 말해 비용·위험·평판 손실로 환원된 고통뿐이다.

이는 최근(에서야) 내가 내린 결론과도 공명한다. 그동안 나는 특히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문제에 대한 근본적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연락하고, 반복해 읍소하고, 국가 청원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밝혀진 바, 국회나 정책 결정자에게 반복적으로 호소하는 전략은 실상 유효하지도, 의미 있는 경로도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문제는 설득의 강도가 아니라, 설득이 도달할 수 없는 구조였다. <불발>의 언어로 말하자면, 우리는 잘못된 문을 두드려 온 것이 아니라, 문이라고 믿었던 것이 애초에 문이 아니었던 구조에 맞서고 있었던 셈이다. 고통이 정책 실패로 인식되지 않는 한, 설득은 작동하지 않는다. 실패로 등록되지 않은 고통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교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여, 방향을 바꾼다. 누군가가 문제를 알아보고 개입해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무엇이 문제로 등록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왔는지를 하나씩 드러내고, 그 공백 위에 필요한 것을 직접 놓기 시작하는 쪽으로. 이것은 제도 바깥으로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개인의 결단으로는 불가능하다. 권력이 부여해주지 않는 책임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 필요하다면 집합적으로 —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해야 할 지점은, 액티비즘과 시민 참여 역시 자동적으로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이거가 반복해서 보여주듯, 당사자의 발화와 참여는 때로 시장과 국가의 미작동을 가시화하지만, 동시에 그 책임을 다시 개인에게 환원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참여는 요청되지만 결정권은 공유되지 않고, 목소리는 수렴되지만 권력은 이동하지 않는다. <불발>은 행동주의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체제의 균열이 아니라 체제의 윤활유가 되는지를 묻는다.
참여가 체제를 흔드는 대신, 체제가 계속 작동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흡수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만약 고통이 반복되는데도 실패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우연히 방치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방치되도록 처리되고, 방치되어도 괜찮은 것으로 분류된 결과다. <불발>이 요구하는 것은 더 나은 정책 설계가 아니라, 무엇이 정책의 문제가 되지 못하도록 배치되어 왔는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2023년부터 매년 초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개최해왔다. 왼쪽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가 개최한 첫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3)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가장 오른쪽이 필자(박지니)다. 오른쪽은 올해 초 열렸던 세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5)의 공식 포스터. “우리는 최대한 흩어져야 한다”라는 언뜻 반직관적인 주제를 내세웠다. 아직 제도와 정책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작은 시도들이지만, 이러한 반복적이고 분산된 실천들은 어떤 고통이 끝내 문제로 등록되지 않도록 만드는 ‘불발’의 구조 안에서도 균열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년 2월 말 어김없이 열릴 네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6)의 주제는 ‘세력(The Force)’이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2023년부터 매년 초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개최해왔다. 왼쪽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가 개최한 첫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3)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가장 오른쪽이 필자(박지니)다. 오른쪽은 올해 초 열렸던 세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5)의 공식 포스터. “우리는 최대한 흩어져야 한다”라는 언뜻 반직관적인 주제를 내세웠다. 아직 제도와 정책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작은 시도들이지만, 이러한 반복적이고 분산된 실천들은 어떤 고통이 끝내 문제로 등록되지 않도록 만드는 ‘불발’의 구조 안에서도 균열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년 2월 말 어김없이 열릴 네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6)의 주제는 ‘세력(The Force)’이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

※ 이 글은 분량 관계로 일부 섹션을 생략해 게재합니다. 생략된 부분을 포함한 전체 글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전체 글 보기: https://rabbitsubmarinecol.weebly.com/home/-susi-geiger-ltmisfiresgt)

디지털 헬스와 DTx: 책임을 대신하지 않는 기술, 그리고 '불발'의 세련된 재배치

섭식장애가 '논쟁적 질환'의 자리에 고정된 상태에서, 디지털 헬스와 디지털 치료제(DTx)는 종종 새로운 해법으로 호출된다. 접근성이 낮고 치료 체계가 파편화된 영역에서, 앱과 플랫폼, 알고리즘 기반 개입은 즉각적이고 확장 가능한 대안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가이거와 니콜 그로스(Nicole Gross)가 디지털 헬스를 분석하며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다르다. 문제는 기술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대신하게 만드는가다.

그들에 따르면 DTx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책임을 배분하며,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을 조직하는 "기술적 환경(technical milieu)"이다. 이 환경 속에서 치료는 관계와 제도의 문제에서 개인의 관리 역량과 순응도의 문제로 재배치된다. 치료의 부재는 '시스템이 아직 책임지지 못한 영역'이 아닌, 디지털로 보완 가능한 개인의 결핍으로 재구성된다.

섭식장애 영역에서 DTx는 대체로 자기 모니터링, 행동 수정, 인지 훈련, 식사 기록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런 도구들이 일부에게는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문제는 효과의 유무가 아니라, 효과가 호출되는 조건이다. 공적 치료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DTx가 먼저 확장될 때, 치료의 부재는 제도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관리 실패로 재해석될 가능성이 커진다. 디지털 개입은 간단하고 중립적인 추가 선택지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기술적 환경(Technical Milieu)' 속에서 책무성의 벡터를 조용히 바꿔놓는다.

이때 나타나는 것은, 겉으로는 한층 세련되고 진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불발'이다. 자유주의 정부와 기술 기업이 함께 만들어 온, 이른바 '자유주의적 디지털 헬스 혁신 복합체'가 사용하는 그럴듯한 언어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고통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지만, 이제는 기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얻게 된다. 실패는 더 이상 시스템의 책임이 아니라, 앱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거나 프로그램을 끝까지 수행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가이거와 그로스는 이러한 맥락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기존의 치료 공백을 메우기보다는, 그 공백을 더 효율적으로 개인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로스는 이 과정에서 디지털 헬스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따라잡기(playing catch-up)'라고 요약한다. 기존의 의료 시스템이 공백과 지연을 만들어 왔으니, 기술을 투입해 그 뒤처짐을 보완하고 격차를 메운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유주의적 디지털 헬스 혁신 담론이 반복해 온 특유의 역설이 숨어 있다. 기술이 과연 무엇을, 어떤 기준을 따라잡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끝내 제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가이거와 그로스의 분석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따라잡는' 대상은 치료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나 돌봄의 규범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형성되어 있고 유지되고 있는 책임의 배치, 관리의 논리, 그리고 치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를 전제로 작동해 온 구조다. 다시 말해, '따라잡기'는 더 나은 치료를 향한 이동이라기보다, 기존 구조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개인의 행위와 부담을 시간적으로 정렬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에 가깝다.

섭식장애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디지털 헬스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재난적인 치료 접근성, 전문 인력의 부족, 제한적인 보험 적용 속에서 디지털 개입은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로 빠르게 정당화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디지털 헬스 혁신 담론은 이번에도 왜 이제까지 치료가 공백으로 머물렀는지, 그 상태가 왜 계속 방치되어 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디지털 치료제는 해결책처럼 제시되지만, 동시에 왜 해결이 오직 디지털의 형태로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비켜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DTx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불발>의 관점에 따르면 핵심은, 과연 DTx가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배치될 것인가다. 디지털 헬스가 공적 치료 체계를 대신하는 순간, 그것은 불발을 강화한다. 반대로 제도적 책임을 전제로 치료 접근권을 보완하는 장치로 놓일 때에만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한국의 섭식장애 논의 환경은 안타깝게도 아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디지털 헬스는 전면에 등장했지만, 국가는 여전히 책무성 논의를 회피하고 있고 그러는 사이 시장은 개인의 관리 능력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조직한다. 그 결과 섭식장애는 다시 한 번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적 실패로는 인식되지 않는'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기술이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불발'을 가리는 프론트엔드로만 작동할 수밖에 없다면, 그 기술은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와 정책 담론은 디지털 헬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상정하지만, 공적 책임을 회피한 채 개인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에서는 기술이 사회적 신뢰도, 임상적 정당성, 장기적 수익성 가운데 어느 하나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런 정렬 위에서 기대되는 경제 성장은 환상에 가깝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디지털 헬스는 반복적으로 실패할 것이며, 시장은 결국 그 결과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헬스와 사회> 표지. 벤야민 마렌트(Benjamin Marent) 편집으로 2026년 2월 출간될 이 책은 디지털화가 건강과 의료의 실천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수지 가이거와 니콜 그로스의 DTx 연구 역시 이 책에 수록되어, 디지털 치료제가 어떻게 기존의 치료 공백을 메우기보다 그 공백을 관리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하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디지털 헬스와 사회> 표지. 벤야민 마렌트(Benjamin Marent) 편집으로 2026년 2월 출간될 이 책은 디지털화가 건강과 의료의 실천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수지 가이거와 니콜 그로스의 DTx 연구 역시 이 책에 수록되어, 디지털 치료제가 어떻게 기존의 치료 공백을 메우기보다 그 공백을 관리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하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De Gruyter

섭식장애라는 리트머스 시험지

섭식장애는 예외적인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헬스케어 시스템이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고, 무엇을 방치하며, 어떤 고통 앞에서 침묵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색상이 변한 리트머트 시험지가 가리키는 것은 자원의 부족이나 정책의 미비처럼 시스템이 '멈춰버린' 지점이 아니다. 시스템은 잘 작동해왔으며, 의도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섭식장애로 인한 고통은 결코 비가시적이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 고통은 수십 년 동안 인권이나 건강권 침해로 호명되지도, 공적 보건의료체계나 의료시장의 실패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문제는 고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기존 구조의 언어와 책임 배치 속에서 실패로 번역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어떤 고통은 반복되는데도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가'라는 수지 가이거의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섭식장애는 치료가 없어서 방치된 것이 아니라, 치료의 부재가 문제로 간주되지 않는 방식으로 관리되어 온 고통이다. 국가는 무능해서 물러난 것이 아니라, 물러나도 되는 구조 속에 있었기 때문에 물러날 수 있었다.

디지털 헬스와 디지털 치료제(DTx)의 확산은 이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오히려 치료의 공백을 기술로 메우려는 시도는, 그 공백이 애초 왜 발생했는지를 묻지 않게 만든다. 접근성은 일부 확대될 수 있지만, 책무성을 어떻게 재배치해야 하는가라는 진짜 과제는 또 다시 묵과된다. 기술은 해답이 아니라 '기술적 환경'으로 작동하며, 기존의 '불발'을 위한 세련된 프론트엔트로 기능한다. 실패는 더 이상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읽힌다.

정부와 정치권을 더 열심히 설득하고, 더 절박하게 호소하고, 캠페인을 소셜임팩트의 언어로 정교하게 포장하는 것만으로는 구조를 흔들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설득하려 애썼던 대상은 애초 이 고통을 실패로 분류하지 않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쟁점은 인식의 확산이 아니라 책임의 배치로 이동해야 한다. 치료 경로는 누가 설계하는가,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데이터는 누가 소유하고 해석하는가, 그리고 실패의 결과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지만, 섭식장애를 개인적 문제로 고정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지점이다.

우리가 흔히 해결책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기실 중립적인 수단이 아니다. 그것들은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그 고통을 제도와 구조의 실패로 다루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언어이기도 하다. 시스템은 이 언어를 어렵지 않게 흡수한다. 그 결과 고통은 표현되지만, 문제로 등록되지는 않는다.

가이거가 사용하는 '불발(misfires)'이라는 개념은, 시정해야 할 사소한 오류가 아닌, 어떤 결과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도록 짜인 기계적·건축적 '설계'를 가리킨다는 점에 나는 흥미를 느낀다. 이 무엇인가가 우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결과가 나오도록 구조가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개별 정책의 미비나 특정 제도의 실패에만 있지 않다. 고통이 문제로 등록되지 않고, 실패가 책임으로 환원되지 않는 상태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이거의 진단이 향하는 곳은 치료나 정책 이전의 층위, 다시 말해 고통을 가치로 환산하고 위험을 관리하며 책임을 분산시키는 자본주의적 헬스케어 체계의 설계 자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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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임의단체로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이름은 '(섭식장애) 환자는 결핍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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