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12.22 17:21수정 2025.12.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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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아내와 동네 남문시장에 들렀다. 휴일 먹거리를 준비하러 간 것이다. 연말이지만 시장은 장사가 안 돼 가라앉아 있다. 덩그러니 내걸린 크리스마스 트리와 리본이 한 해를 보내고 내년을 기약하는 분위기다. 정말 웃음꽃 피는 활기찬 시장이 되길 고대한다.
시장에 가면 보통 아내는 물건을 고르고 나는 장바구니를 들거나 카트를 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장을 보지만 그 무게는 아내 혼자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무겁다. 모처럼 내가 힘을 쓸 시간이다. 장을 다 보고 귀가하면서 아내가 갑자기 없어졌다. 가끔 길이 어긋나거나 잃어버리면 그 주변에서 서성이면 서로 만나게 돼 있다. 그 사이 아내는 골목에 있는 옷가게에 잠시 들른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동짓날 선물'이라며 양말 세 켤레를 내밀었다. 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난생처음 동짓날 선물을 받았다. "동짓날 선물은 행운이 따른다"는 말을 주워 들었다고 아내가 귀띔했다. 엊그제 시장에서 아내가 사라진 것은 이 동짓날 양말 때문이었다. 양말은 두껍지 않으면서도 팥죽 못지않게 따뜻하고 포근했다. 아내의 아이디어와 정성이 새삼 고마웠다.

▲ 아내에게 받은 동짓날 양말 선물, 두껍지 않은데도 따뜻하고 포근하다.
이혁진
아내의 '깜짝 선물'의 여운이 오늘 온종일 감싸는 기분이다. 가만 생각하니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에게 받기만 하고 보답할 선물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나는 아내에게 선물하는 것에 인색하다. 다른 사람들의 선물에는 예의를 지키면서 아내에게는 무심하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아내와 말다툼도 이러한 이유로 벌어지곤 하는데 아내는 잔소리로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나는 아내의 정성과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은 아예 생략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 선물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얼마 전 아내가 내놓은 딸기 간식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었다. 요새 겨울 딸기는 엄청 달다. 먹다가 뒤늦게 아내가 생각났다. 두 개 남은 딸기를 먹으라고 했다. 아내는 반가워했다. 마치 불러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아차 싶었다.

▲ 딸기 간식의 몇 알을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가 해주는 정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이혁진
아내는 조그만 물건을 사고 이걸 지인들에게 선물하는데 능하다. 나는 그런 사소한 물건들이 선물이 되는지 의아했다. 선물은 조금 거창해야 되는 것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허례가 낀 것이다. 그나저나 아내에게 베푸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나이 70의 노후를 보내면서 깨닫고 있다.
이제는 아내에게 가벼운 선물부터 하는 요령을 배우려고 한다. 이번 양말 선물을 받고 느낀 것이다. 설령 취향이 다르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핀잔을 들을지라도. 올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챙겨야 할 것 중 하나가 가까운 사람에게 따뜻한 말과 감사하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 아내가 한 것처럼 양말이나 속옷을 추가한다면 어떨까 싶다. 나 또한 아내에게 그렇게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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