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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3학년 2학기'로 시끄러운 학교, 반갑다

영화 한 편이 던진 질문, 학교는 왜 불편해야 하는가

등록 2025.12.23 09:12수정 2025.12.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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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학교는 영화 한 편으로 시끄럽다. <3학년 2학기> 단체 영화 관람 후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해당 영화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 선정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취업 관련 부서와의 논의 과정에서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끝내 모두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더 신중하려 했다. 영화 상영 전 사전 설명을 통해 영화 속 장면을 학생 개인의 미래와 동일시하지 않기를 당부했고, 감상평 대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드러나도록 했다. 보다 구체적인 과정은 이전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 "왜 우린 뉴스에 안 나오죠?" 9월만 되면 맴도는 고3 아이의 질문(https://omn.kr/2ffp8)
- 취업담당부서는 꺼린 영화, 그걸 본 고교생들의 공통된 반응(https://omn.kr/2g724)

감상문안내 왜 이런 영화를 봐야 해?"라는 의문도, "내 미래 같아서 겁나"라는 두려움도 모두 정답입니다. 우리 학교가 시끄러운 이유는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로봇 전문가를 넘어, 세상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진짜 시민'이 될 여러분의 문장을 보내주세요.
▲감상문안내 왜 이런 영화를 봐야 해?"라는 의문도, "내 미래 같아서 겁나"라는 두려움도 모두 정답입니다. 우리 학교가 시끄러운 이유는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로봇 전문가를 넘어, 세상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진짜 시민'이 될 여러분의 문장을 보내주세요. 오성훈

하지만 나는 이 시끌벅적한 논란이 오히려 반갑다. 아무런 파동도 없는 고요한 학교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부딪히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학교가 훨씬 건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갈등은 살아있음의 증거다. 민주주의가 학교라는 현장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어떤 교사는 "내 삶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 울컥했다"며 공감을 전했다. 그는 직업계고 출신 교사다. 다른 교사는 "왜 이런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영화를 학교에서 단체로 봐야 하느냐"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는 "기업의 어려움이나 산업 발전의 맥락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 제기 역시 논의의 일부다. 이 영화를 출발점 삼아 더 넓은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감상평 쓰기 대회에 제출된 글들 속에는 찬사와 거부감이 팽팽하게 맞서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교사와 학생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한 단어가 바로 '불편함'이었다는 사실이다.

먼지 쌓인 장학 자료와 낡은 이분법

우리는 왜 이토록 불편해하는 것일까.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우리 교육의 뼈아픈 민낯과 마주하게 된다. 노동권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교사들이, 머지않아 노동자가 될 학생들에게 노동인권을 가르쳐야 하는 역설적인 현실 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풍요를 누리며 살면서도, 그 '부(富)'를 만드는 근간인 '노동'을 언급하는 순간 불편한 이념의 프레임부터 떠올린다. '노동'은 우리 교실 안에서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었다. 교실은 사회의 거울이다.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한국 사회의 민낯 아닌가. '노동'을 곧 '투쟁'이나 '위험한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이 낡은 이분법은 우리의 무의식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노동을 가르치라는 '제도'는 생겼을지언정 노동을 존엄하게 말하는 '문화'는 학교 안에 끝내 뿌리내리지 못했다.

제도는 그럴듯하다. 교육청은 노동인권 교육을 조례로 정하고 해마다 방대한 분량의 장학 자료를 학교로 보낸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자료들은 교무실 한구석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노동을 불편해하는 공기' 속에서 그 귀한 가치들은 신학기가 되면 조용히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아무도 일부러 버리지 않는다. 꺼내 들지 않을 뿐이다.


수평이었던 적 없는 시소 위에서

직업계고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이었다. 중립은 흔히 시소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비유된다. 왼쪽과 오른쪽의 무게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다면, 가운데 앉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있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선택이다.

하지만 현실의 시소는 단 한 번도 완전히 수평이었던 적이 없다. 사회의 무게추는 늘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미 바닥에 닿아버린 시소 위에서 "나는 중립이다"라고 말하며 가운데 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울어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선택이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균형이 유지되는 듯 침묵해왔던 나 자신의 안일함을 오래 돌아보게 된다.

질문하는 아이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달리는 기차 위에서 중립은 없다"고 말했다. 기차가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면, 그 위에서 어느 쪽에도 서지 않겠다는 선택은 결국 현재의 목적지를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올라탄 기차가 절벽을 향하고 있다면, 그 방향을 묻는 것이 중립보다 앞선 교육자의 의무다.

이번 단체 영화 관람을 최종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편안한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편함'을 이유로 이 영화를 외면하는 것이 더 중립적인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직업계고 졸업생'이라는 이름의 기차에 올라타 있다.

학교 안팎의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12월 22일, 교육부로부터 공문 한 장이 날아들었다. 교육부장관과 함께하는 독립영화 <3학년 2학기> 상영회와 라운드 토크를 개최한다는 계획안이었다. 현장실습생의 고통에 공감하고 제도 개선의 방향을 공유하겠다는 취지였다.

반가운 일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도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조차 이 영화를 통해 현장의 어려움을 공론화하려는 마당에, 정작 그 당사자를 키워내는 학교가 중립의 가면을 쓰고 입을 다물어서야 되겠는가.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우리 학교가 선택한 '시끄러운 토론'이 지극히 시대적인 요청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교육부 공문 12월 22일 교육부에서 시행한 <3학년 2학기> 상영회 개최 공문. 학교 현장의 고민이 국가 정책의 공론화 과정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부 공문 12월 22일 교육부에서 시행한 <3학년 2학기> 상영회 개최 공문. 학교 현장의 고민이 국가 정책의 공론화 과정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오성훈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일부 산업에서 특정 연령층의 재해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물론 이 수치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산업 현장의 위험성으로 볼 수도 있고, 경험 부족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위험이 특정 집단에 반복적으로 집중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이 통계는 교실 밖의 숫자이지만, 교실 안 아이들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직업계고 졸업생들이 주로 진입하게 되는 산업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현실은 직업계고 졸업생들이 마주하게 될 노동 환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노동의 가치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어떤 삶은 늘 더 흔들리는 쪽에 놓이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이미 출발선에 서 있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 "나는 중립이다"라고 말하며 창밖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교육자의 태도일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유일한 정답이거나, 이 관점만이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본 뒤 "편향적이다", "다른 시각도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교육의 목표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정답을 주입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가 불편해하며 미뤄두었던 질문을 함께 꺼내고, 서로 다른 논리를 비교하며 생각하게 돕는 게 어른이다. 노동이 왜 우리 삶에서 멀어졌는지, 왜 어떤 노동은 죽음과 맞바꿔야 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다른 해석은 무엇인지 묻고 토론하자고 제안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학교의 역할이다.

논쟁 속에서 자라는 시민

이 글이 공개되면 또 다른 논쟁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학교장의 판단이 편향적이라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굳이 논란을 만들 필요가 있었느냐고 묻기도 할 것이다. 그런 비판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나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더 나은 방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논쟁을 피하고 싶지 않다. 침묵보다 생각이 오가는 논의가 있는 곳이 공동체를 성장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달리는 기차를 당장 멈출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함께 묻고 생각할 수 있다.

내 손의 기술이 타인의 삶을 지탱하고, 타인의 노동이 나의 일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서울로봇고 학생들이 마주할 진짜 세상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로봇 전문가를 넘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질문하고 타인의 삶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판단이 남의 말이 아니라, 스스로의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기를 바란다. 서울로봇고의 시끌벅적함은 그래서 계속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학교와민주주의 #교육자의중립 #노동인권교육 #3학년2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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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봇고등학교 교장. 『되풀이되는 비극, 따개비 현장실습』, 『디지털 대전환 시대 직업계고 미래는』 등 직업계고 학생들의 삶과 미래를 응원하는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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