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훈 기자가 쓴 <"한 번도 장학금 못 받은 학생 찾습니다" 학교를 공동체로 되돌린 50만원>
오마이뉴스
- 지난 11월 26일자 기사 ("한 번도 장학금 못 받은 학생 찾습니다" 학교를 공동체로 되돌린 50만원https://omn.kr/2g3cy)
를 보면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로 '학교장 장학금'을 준 사연을 쓰셨던데, 장학금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장학금을 줄 수 있을 만큼 원고료가 쌓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글을 써 내려가며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타인의 삶을 빌려오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의 주인공은 제가 아닙니다. 현장실습의 고단한 노동을 견디는 아이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빛, 그럼에도 그 안에서 싹트는 소박한 희망들이 제 글의 진짜 주인입니다. 타인의 고통과 분투를 소재로 삼아 얻은 수익(오마이뉴스 원고료)을 저 혼자 오롯이 갖는 것은 제 양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부채 의식 같은 것이었죠. 교사인 아내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그건 당신 돈이 아니야'라는 말을 했던 게 제 마음에 서늘한 경고가 됐죠.
그래서 그 원고료가 원래 주인인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장 장학금'이라는 이름을 빌렸지만, 제 기사의 원고료가 실상은 우리 사회가 직업계고 아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작은 '증표'이자, 저와 학생들이 맺고 있는 '글쓰기를 통한 연대'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그 장학금에 한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조금 느리더라도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며 버틴 아이, 묵묵히 남을 도우며 학교라는 공동체를 지탱해 준 아이를 찾았습니다. 학교는 1등만 기억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함께 견디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광장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장학금이 아이들에게 '세상은 너희의 수고를 기억하고 있다'는 따뜻한 응원으로 전달되기를 원했습니다."
- 올해 8월부터 기사를 쓰고 계십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오마이뉴스는 제게 '허락 없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교장이라는 직위가 주는 책임 때문에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교육자로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전문가의 권위가 아니라 '생활의 증인'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실과 실습실, 현장실습의 최전선에서 목격한 장면을 가감 없이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정책과 제도의 숫자만이 아니라, 오마이뉴스가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로 교육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계고 아이들은 '대학만이 정답'이라는 단단한 아스팔트 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숨 쉬기 위해 애쓸수록 더 위태로워지는 상황이지요. 저는 그 아스팔트의 온도를 단 1도라도 낮추고 싶었습니다. 기술을 선택한 아이들의 삶이 대학 진학만큼이나 당당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 그것이 제가 교장실에 머무는 행정가가 아니라,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졸업생의 "제 이야기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메시지 기억에 남아
- 기사 때문에 생긴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글을 쓴다는 건 어둠 속에 촛불 하나를 켜는 일과 같습니다. 그 불빛이 어디까지 닿을지 처음엔 알 수 없지요. 처음 쓴 기사가 '잉걸'로 채택되었을 때, 누군가 보낸 '5만 원'의 좋은기사원고료를 보고 참 궁금했습니다. 한 달 뒤에야 알았죠. 아빠를 응원하고 싶었던 큰딸의 서툰,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익명'이었다는 걸. 이후 원고료를 장학금으로 내놓았을 때, '다음 장학금 시기를 앞당겨달라'며 좋은기사원고료를 보태주신 독자의 후원을 보며 전율을 느꼈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의 선한 의지를 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잊기 어려운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펜의 무게가 매섭게 다가온 적도 있습니다. 예산 축소 문제를 지적했다가 동료들이 국회로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현장의 진실을 기록하는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제 글이 결코 혼자서 추는 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실감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졸업생의 메시지였습니다. '선생님, 제 이야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교 다닐 때 눈에 잘 띄지 않던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혹여나 상처가 될까 조심스러웠는데, 아이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 '존중받았다'고 느꼈다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글은 무언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를 온전하게 '인정'해 주는 행위라는 것을요.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 삶을 긍정해 주는 것, 그것이 제가 계속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입니다."
- 시민기자 활동하시면서 10만인클럽에 가입하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가요?
"오마이뉴스와 저의 인연은 꽤 오래전, 절박했던 폐교 현장의 기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동호공고(현 서울방송고)의 위기를 다룬 제 글이 당시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현 진실탐사그룹 왓슨 대표)의 기사로 이어지며 결국 폐교 결정을 뒤집을 수 있었죠. 그때 저는 글의 힘과 그 글을 실어 나르는 매체의 소중함을 절감했습니다. 그 뒤로 줄곧 애독자로 지냈지만, 삶에 치여 후원까지는 마음을 내지 못했습니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며 원고료가 쌓이는 것을 보며 10만인클럽을 떠올렸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준 매체에 그 수익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선택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원고료를 다시 돌려주는 것은 후원이 아니라 순환입니다. 오래 묵혀둔 마음의 빚을 갚는 일이자, 책임에 가까운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원고료가 다시 사회적 가치로 순환되는 이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또 다른 공부이자 기쁨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기자로서,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을 비추는 등불 하나를 오마이뉴스와 함께 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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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당신 돈이 아니야' 아내의 '서늘한 경고' 후 시작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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