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공정위 위원장과의 간담회 2016년 9월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정재찬 위원장과 가맹점주 간 간담회가 열렸다.
권성훈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필자는 다른 제안을 꺼냈다.
"공정위가 모든 분쟁을 직접 해결하기 어렵다면, 가맹점주들의 협상권을 제도적으로 강화해 달라."
그러나 당시의 답변은 단호했다. 사적 자치가 지배하는 거래 관계에 노동자의 단결권과 유사한 협상권을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다. 이제 가맹점주의 협상권은 법률로 강화되었다. 이는 분명 우리 공정 경제 제도가 한 걸음 진전했음을 보여주는 성과다. 그러나 이 제도는 아직 '액자 속 헌장'에 가깝다. 법은 만들어졌으되, 집행 의지와 역량이 충분히 따라오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역량이란 무엇인가. 충분한 인력과 전문성이다. 의지란 무엇인가. 법의 취지를 현장에서 구현하겠다는 확고한 태도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제도는 쉽게 사문화된다.
공정한 분배를 향한 미국의 실험
필자는 가맹점주 출신으로서, 부당한 거래 관행의 피해자로서, 미국과 유럽의 제도를 꾸준히 살펴왔다. 서구 유럽 국가들은 경쟁을 중시하면서도, 중간 자본가와 종속적 사업자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분명한 정책 방향성을 유지해 왔다.
특히 자유 경쟁과 사적 자치를 중시해 온 미국 주정부들의 최근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보증수리 제도 개선이다.
2021년 7월, 일리노이주는 자동차 제조사가 보증 수리 공임을 일반 수리 공임 수준으로 지급하도록 의무화하는
법(HB 3940)을 제정했다. 당시 보증 수리 공임은 일반 수리에 미치지 못했다. 주정부는 이 법이 중산층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 개선과 숙련 인력 이탈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임금 상승이 지역 소비와 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이는 특정 업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거대 제조사가 비용 절감을 지역 사업자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바로잡겠다는 정책적 판단이었다.
2024년 9월 통과된 뉴욕주의 자동차 보증수리 법안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확히 하고, 제조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현장에 떠넘기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이번 제도 개선이 정비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인상하는 동시에 연간 약 9억 달러 규모의 과세 임금 증가를 통해 지역 사회의 세입을 확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보증 수리 카센터를 포함해 거대 기업에 종속된 사업자들이 정당한 몫을 보장받지 못하는 거래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쌓인 이익이 중간 사업자를 거쳐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에게까지 흐르게 하려는 사회적 선택이다.
공정한 분배 그리고 우리의 과제
요즘 자영업계에서는 코로나 재난 때보다 더 힘들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종속이 심화되는 가운데, 자영업자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예사롭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자동차 보증수리 사례에서 보듯, 미국 사회는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집단 소송 등 공동체 차원의 대응에 나섰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대표적 플랫폼 기업인
그럽허브와
도어대쉬가 거액의 피해 보상금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 사회의 이러한 대응은 분배 구조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곡간이 비어 있는데 인심이 날 수는 없다. 합리적인 분배 구조가 먼저 마련돼야만, 중소상공인에게 노동 비용과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일도 현실성을 띨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역시 거대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중간 자본가와 종속적 사업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그 수혜가 지역 노동자와 지역 경제라는 모세혈관까지 확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앞서 미국의 보증수리 카센터 사례를 든 이유는, 그것이 가맹점주·대리점·하도급 업체 등 수많은 종속적 사업자의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계를 설명할 것인가, 제도의 취지를 현실로 만들 것인가. 국회는 제도의 공백을 방치할 것인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새로운 법을 마련할 것인가. 경쟁을 이유로 약자를 방치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선진국이 선택한 길이다.
올해의 끝자락에서 다시 묻는다. 우리는 이제 그 길로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과거 수많은 범죄 이유가 온당하든 하지 않든 이윤 추구에 전가되었다. 깨어난 대중의 의식에 직면해 기업들은 기업의 일은 기업이 알아서 한다는 주장을 철회해야 했다. 오늘날 기업이 대중을 억누르고자 한다면 과거와 같은 반작용이 발생할 터이고 대중은 또다시 들고일어나 다양한 규제 법규로 대기업의 숨통을 조이려 할 것이다. 기업은 대중의 의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식이 건강한 기업 문화를 끌어냈다."
- 에드워드 버네이즈 저서 '프로파간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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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이유로 약자 방치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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