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레이 파호에로에 용암지대 60년대와 70년대 두번의 분화로 이루어진 파호에로에 용암의 대지가 장관이다
라인권
나는 거기서 그 무지개를 보며 용암처럼 식어버린 나를 괴로워할 것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돌아보면 목양으로 늙어 온 세월은 돌이 되는 세월이었다. 아파도 소리 내지 않고, 정으로 쳐도 소리 내지 않는 바위처럼 함묵해 온 길이었다. 내가 시를 쓰고 글을 쓰는 건 그 함묵의 해소였던 셈이다.
그 찬란한 무지개 아래 용암 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이 들어 쇠진한 목자여! 당신 오늘 보지 않았느냐? 식생은 분출하는 용암이 아니라, 식어 버린 용암에서라는 걸!" 그랬다. 분출해 흐르는 마그마는 모든 걸 태웠지만, 그 뜨거운 마그마가 낮은 자리를 찾아 내려가며 식어 돌이 된 곳에는 식생이 자라고 있었다. 이렇듯 내가 분출하는 마그마 같을 때보다 저 돌 같이 되었을 때 그것을 터전 삼아 영혼들이 살고, 공동체가 살 수 있었다. 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글대던 용암이 차가운 돌이 되는 것이 목양의 길이었던 거다.
40년 넘게 태워 왔으니 이제 재만 남고, 평생을 함묵해야 했으니 돌이 되고, 남은 건 예전 같지 않은 몸뚱이 하나. 그래도 이룬 것은 초라하기 그지 없어 부적감과 죄책에 괴롭고 탈진한 목자에게 무얼 더 태울 것이 있어 연기만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이 불 꺼져 연기만 나고, 식어 버린 저 용암같이 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이런 내 목양의 시름과 고뇌는 연기 오르는 분화구 아래에 불이 있듯 아직도 내 속에 불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불타는 용암이 분화의 기억을 찾아서 흐르던 불의 길 '체인 오브 크레이터스 로드' 끝자락의 무지개는, 돌이 되어 온 것이 바른 목양의 길이라는 인증이며 위로이자 축복이 아니었을까? 흐르던 마그마가 바다에 이르러 식어 용암의 대지를 이룬 끝자락에 무지개 서듯, 태우고 태워서 재가 되고 돌이 된 목양의 길 끄트머리에 땅과 하늘을 잇는 언약의 무지개가 선 것이 아닐까? 이제 곧 벗어야 할 짐이며, 그쳐야 할 남은 걸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일흔둘의 만추에 침잠했던 나는 체인 오브 크레이터스 로드에서 죽지 않고 다시 살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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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 신대원, 연세대 연합 신대원에서 신학을 했다.
은혜로교회를 86년부터 섬겨오는 목자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이다!"는 지론으로 칼럼과 수필, 시도 써오고 있다.
수필과 칼럼 집 "내 영혼의 샘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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