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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2.24 17:26수정 2025.12.2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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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네 어르신들께 문풍지를 부착해 드리는 봉사 활동을 한 뒤로, 일상은 다시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관련 기사 : 함께 막은 겨울 바람, 뜨끈한 누룽지를 받았다).
해야 할 일들이 밀려 있었고, 마음은 있었지만 다시 봉사활동을 이어갈 여유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봉사활동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조차도 어울리지 않는 듯한 죄스러움이 밀려올 정도였다. 그러던 중 지난 23일 저녁, 봉사활동을 함께했던 한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연은 이랬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 할머니의 집이 있는데, 며칠째 두문불출하는 것 같아 들러보았다는 것이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몸살이 심하게 와 며칠째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집안에는 냉기가 가득했고, 이불을 둘러쓴 채로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문풍지라도 붙여주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문풍지와 함께 챙긴 것

▲ 더는 가지고 놀지 않는 인형. 아이는 한참이나 인형을 매만졌다.
유수영
나는 부업으로 만들던 문풍지를 챙겼다. 납품은 못하지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의 물건들은 내 선에서 폐기를 하거나 사용을 해도 되었기에 부지런히 종이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말에, 이제는 작아져 입지 못하는 내 아이들의 옷 가운데 깨끗하게 세탁해 두었던 것들과,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인형 몇 개를 함께 챙겼다.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괜히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집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시간도 늦었고, 할머니의 컨디션 또한 좋지 못하셨기에 최대한 말을 아끼며 서둘렀다. 문풍지를 붙이는 동안에도 괜히 부담을 주지는 않을지 계속해서 마음이 쓰였다. 혹여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 아이에게 옷을 조금 줘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대화를 듣던 여섯 살쯤 되어 보이던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아줌마가 산타할아버지 같아요."
그 한마디에 나의 말문이 막혔다. 아이는 인형을 품에 안고 한참을 만지작거리며 좋아했고, 나는 그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괜히 미안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좋아해 줄줄 알았다면 조금 더 챙겨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아서기 전, 아이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 이제는 작아져서 입지 못하는 옷을 몇 벌 챙겼다.
유수영
문풍지 한 장으로 겨울을 바꿀 수는 없다. 옷 몇 벌과 인형 몇 개로 그들이 풍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일로, 집 안에 파고들었던 한기를 조금 줄여주고 아이의 하루에 짧은 웃음 하나를 더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삶 속에서 자주 놓치는 것은 커다란 선의나 어떠한 명분이 아니라, 그들의 문을 직접 두드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문풍지는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조금 메운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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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나가는 인물과 장소, 고단한 날들에서 흘러나온 진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길 바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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