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12.24 17:29수정 2025.12.2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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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곤 한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이면 뜨끈한 동태탕이 아닌 갓 잡은 해산물을 듬뿍 넣은 해물칼국수를 먹고 있을 시간이다. 한 달 전부터 계획한 일이지만 비바람 예보로 삽시도행이 취소되었다.
아쉽지만 바다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가 없다. 친정 막냇동생이 환갑을 맞았다. 우연히 삽시도와 연이 닿은 남동생은 그곳으로 우리를 초대했지만, 자연의 섭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홍성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그 장소가 바뀌었다.
5년 만에 삽시도에 다시 가볼 생각에 부풀어 오르던 마음이 동태찌개 앞에서 숙연해진다. 지난 13일,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축축해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끝도 없이 내렸다. 저녁 약속이라 아침을 간단히 먹고 일부러 점심으로 동태찌개를 먹기 위해 달려왔다.
2016년 아버지께서 별이 되기 전에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자주 왔던 곳이다. 아버지는 말년에 파킨슨으로 10여 년 동안 고생하셨다. 날이 갈수록 몸이 굳어가는 병으로 힘들어하셨지만, 좋아하시는 음식은 잘 드시는 편이었다.
간월도에서 먹었던 싱싱한 굴이 소복했던 굴밥과 바지락이 칼국수보다 더 많았던 바지락 칼국수, 집에서 가까운 충남 예산군 오가면에 있는 '왕코양푼이동태찌개'도 그중 하나였다. 동태찌개를 드실 때마다 으레 곤이와 동태알을 추가해 남기지 않고 다 드실 만큼 좋아하셨다.

▲동태 찌개 한 상 주문한 덜 매운 동태 찌개와 함께 나온 밑반찬
박상희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양푼이 동태찌개
체격이 건장하고 평생을 농사꾼으로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아버지. 6남매의 장남으로 가진 것 없이 태어났지만, 동생들을 보살피고, 우리 5남매까지 키워내신 강인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쓰러져 가는 모습은 말로 다할 수 없이 슬펐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루라도 더 움직일 수 있을 때 사드리고 싶어서 아버지를 모시고 자주 찾아왔던 곳이다. 아버지께서 가신 뒤로도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들르곤 한다.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목이 메기도 하지만 그 국물 맛은 여전히 내 발길을 부른다.
비가 오면 더더욱 생각나는 맛집 답게 대기가 있어 10분 이상을 서성이다 자리에 앉았다. 문 앞에는 새로 찧은 듯한 쌀 포대가 예전처럼 수북이 쌓여있다. 갓 찧은 쌀로 지어서 인지 밥맛도 좋다. 그 작은 정성이 이 집을 더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이들을 위한 작은 배려라고나 할까. 조금은 예스러운 음식점에서의 한 끼를 더욱 빛나게 하는 순간이다.
아버지는 떠나시고 없지만, 맛있다며 환하게 웃던 얼굴이 그 자리에 박제 된 듯 자꾸만 둘러보게 한다. 2인분의 덜 매운 동태 찌개를 주문하자 시골스러운 반찬이 상에 놓인다. 특별 나게 만든 것도 아닌데 이 집의 콩나물과 멸치 볶음이 내 입맛에 맞아 올 때마다 리필 하곤 한다. 국물이 바글바글 끓어오르자 불을 줄이고 두부 먼저 국물과 함께 먹어보았다. 아버지께서 좋아하던 그 맛이다. 위가 안 좋은 나로 인해 덜 맵게 했음에도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양푼에 가득했던 동태 찌개를 싹 비웠다.
부드러운 두부와 통통한 동태알, 고소하니 싱싱한 고니의 맛은 이곳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맛이다. 주인공인 동태는 생태도 아니면서 잡냄새 일절 없이 보들보들하니 진한 국물 맛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환상의 맛을 연출해 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말랑한 무의 맛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10여 년이 흘렀어도 잊지 않고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한 곳이다.
한 양푼을 다 비우고 나서야 벽면에 붙어 있는 메뉴판과 동태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우린 2인분도 양이 많은 동태찌개라 동태전과 만두는 시킬 엄두를 내지 못한다. 혹시 예산 맛집인 이곳을 지나는 길이라면 들려보셔도 후회하지 않을 맛이다. 농번기에도 줄을 서는 맛집으로 얼큰한 찌개와 함께 막걸리를 드시는 분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음식점 주인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나의 고향에 있는 이 음식점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성업 중이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왕코양푼이동태찌개집의 전경 비가 내리던 날의 음식점 앞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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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무가 예술, 뜨끈한 냄비 속 아버지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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