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메모 /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책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책 첫 장에 적힌 메모가 참 따뜻하다.
차상순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미 출간 글들을 모아 묶어서 출간한 책이다. 작가 딸은 이 책을 발간하면서 말했다.
어머니의 책상 서랍에서 어떤 산문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글을 잘 정리하여 모아놓으신 묶음을 발견했습니다. (..) 작가로서 자존심과 엄격성을 잃지 않았고 시대를 살아온 어른으로서 세상에 좋은 기운을 남겨주시려고 애썼던 노력과 사랑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 "어머, 내가 쓴 게 이런 게 있었구나. 나도 잊고 있었는데."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길 바랍니다. (책 뒤표지에서)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다. 자신이 그 나이까지 꾸준히 소설을 써온 건, 이야기가 지닌, 살아내는 힘과 위안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나를 달구었던 것은 창작욕이 아니라 증오였다. 복수심과 증오는 세월의 다독거림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 뿐, 섣불리 표현되어선 안 된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 증오가 연민으로, 복수심이 참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22P)
그도 그럴 것이, 6·25 전쟁을 겪으며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싸움을 목격한 작가는 고향마저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이 가장 끔찍하다고 표현했다. 집집이 한두 식구 죽거나 납치당하지 않은 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민간인 인명 피해가 막심한 전쟁을 겪었다. 오빠와 삼촌, 사촌이 비참하게 죽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을 하게 된다. 그 예감만으로도 그 인간 이하의 수모를 견디는 데 힘과 위안이 되었다고도 했다. 작가는 문학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세상에 예쁜 것' (81~84)에 있다고 본다.
고통스럽던 병자의 얼굴에 잠시 은은한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을 보니 잠든 아기의 발바닥이었다.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바닥의 열 발가락이 "세상에 예쁜 것" 탄성이 나올 만큼, 아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려는 고목이 자기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은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 아기의 생명력은 임종의 자리에도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83P)
이 책은 총 5부로 나뉘어져 수록된 글 38편이 묶여 있다. 박완서 작가 특유의 감성과 혜안으로 풀어낸 삶 속에서 건져낸 에피소드를 통해 박완서라는 대 작가를 되새겨볼 수 있다. 독자와 나눈 대담, 강연, 초등학생의 질문지에 적어 준 답, 편지와 헌사 등 다양한 형식을 띤 글들을 통해 작가의 통찰과 중심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책을 읽을 수 있다. 이참에 박완서의 작품을 더 많이 읽어볼 참이다. 그래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라는 에세이집도 챙겨놨다. 책을 읽으며 삶을 묵상하고 한 해를 박완서적인 감성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 박완서 에세이를 읽기로 했다.
차상순
책은 길이 보이지 않는 숲을 걸을 수 있는 길로 만들어 주는 낫과 같다. 돌부리에 차이고 걸어갈 수 없는 곳을 만나도 책에서 안내받았던 인생 통찰이라는 연장으로 앞길을 쉽게 터 나갈 수 있겠다. 설령 숲처럼 빽빽할 곳을 걸을지라도 책이 내 발길에 등불이 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박완서 작가님의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또다시 박완서 작가의 글을 마주하니 20대 그때처럼 마음이 설렌다.
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은이),
마음산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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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영어 교사로 정년 퇴임 함. 사고로 중증 환자가 된 90년생 아들을 돌보는 간병 일지와 소소한 일상, 디카시, 트롯 Vlog, 엔젤넘버시, AI 노래 창작 등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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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마비로 누워있는 내 아들, 박완서가 주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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