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현(1872년_지방지도) 반달 모양의 사천읍성이 특이하게 묘사되어 있다. 일직선의 남벽에 옹성을 가진 남문과 작은 문이, 그리고 동문과 서문이 보인다. 선진리로 추정되는 바닷가에 둥근 모양의 진(鎭)과 전선(戰船)이, 삼천포는 서금시(西錦市)로 표현되어 있다.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이 읍성을 거닐며 별주부전의 자라와 토끼, 용왕을 생각한다. 이야기에 담긴 해학에서 삶의 호흡이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행에서, 환청 같은 울림이 들린다. 느림 속에 깃든 지혜를 기억하라. 웃음으로 되찾은 삶의 여백을 간직하라.
삼천포로 빠져야
흔히 대화가 본론에서 벗어나면 '삼천포로 빠진다'며 핀잔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역사와 지리를 살펴보면 '삼천포'는 결코 희화화할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주∼사천∼삼천포'를 잇는 철도 '진삼선'이 일제강점기에 계획되어 1965년 완공된다. 중간 비행장도 주요 경유지였다. 남해안 중간에 자리한 항구 삼천포가, 내륙의 진주와 연결됨으로써 농·수산물을 효율적으로 운송·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객 이동과 행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니 사실상 진삼선은 필연의 산물이었다. 즉, 삼천포로 빠지는 길은 '무계획적 탈선'이 아니라 교환과 필요, 생존이 만들어낸 합리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재미있는 건 이 이야기가 현대 행정에서도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1995년, 삼천포와 사천이 통합될 때다. 두 도시의 주민과 공직자 사이에 갈등과 함께 '삼천포로 빠진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하였다. 통합 논의의 희화화이자 불만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저 말은 두 도시가 통합 후 서로 보완 관계로 재탄생하는 촉매로 작용하였다. 사천은 항공산업과 내륙 상권을, 삼천포는 항구와 해양 자원을 갖춘 전략적 결합의 도시로 변모하였다. 결국, 행정과 경제가 하나가 되는 '필연적 연결이자 통합'이었고, 이는 진삼선의 탄생처럼 당위였다.
현대인의 삶 속에도, 삼천포로 빠지는 순간이야말로 어쩌면 필연이자 생존의 변곡점인지도 모른다. 지독한 역설이다. 탈선처럼 보이는 과정조차 필요와 가치가 만들어낸 '의미 있는 여정'일 수 있다. 통합 때의 에피소드처럼, 삼천포로 빠지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전략이자 선택이며 미래를 개척한 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삼천포로 빠지려 할 때 웃음으로 넘기려 하지 말고, 왜 그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얼마나 합리적인 선택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삼천포로 빠졌다'는 게 우스운 농담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당위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도심 속 시간의 숨결, 사천읍성

▲사천만과 사천대교 사천 서포면에서 바라 본 사천만과 사천대교. 이 만에서 기나긴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전투가 촉발되었다.
이영천
사천읍성은 조선 초기인 1450년대, 둘레 1.2km 높이 4∼5m로 쌓은 석성이다. 단단한 이 성곽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3분의 2가 허물어져 사라져 버린다. 남은 성곽은 400여 미터 남짓이다. 도시와 도로 밑으로 사라진 성곽의 형체는 도시 공간을 더듬어 겨우 짐작할 뿐이다. 한때 백성의 삶을 품었던 성곽의 안팎을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뿐이니, 안타까움이 발끝에 허무로 맴돈다.
사천만 바닷가 선진리 왜성이 효율을 추구한 직선의 군사 요새라면, 사천읍성은 방어와 행정, 백성의 삶이 뒤엉킨 복합 공간이다. 왜성과의 거리, 입지를 비교해 본다. 그 쓰임은 물론 서로 그렇게 쌓을 수밖에 없는 차이를 생각해 본다.
우리 읍성과 왜성을 구조적·학술적으로 대비·규명할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생김과 기능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알아차릴 뿐이다. 남아 있는 사천읍성을 거닐며 머릿속에 마치 설계도처럼 옛 성곽을 그려본다. 지킴과 생활, 전쟁과 삶이 한 장면 속에서 서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대립한다.

▲사천읍성 400여 미터 남짓 남아 있는 사천읍성의 북벽 중 일부.
이영천
성벽 위를 걷자니, 돌 틈 사이 마른 풀이 바람 따라 흔들리고, 햇살 그득한 성벽이 나무 그림자 사이로 미묘하게 반짝인다. 손끝에 거친 질감의 성벽이 그대로 와닿는다. 발밑 자갈과 흙이 부스럭거리며 걸음에 박자를 맞춰준다. 침오정 창틈으로 스며든 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니,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 무겁게 다가든다.
사라진 성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묻혀버린 800여 미터의 고된 노동이 아프게 다가든다. 비록 사라졌다고 하나, 도시 속으로 스며들어 시민 삶으로 남았으니 작은 위로일까? 도시가 끊어낸 성벽 밑으로 오래된 기억마저 묻힌 듯하지만, 남은 성벽이 역사의 발자취를 잇고 있어 위안을 얻는다. 결코 잊힌 게 아니다.

▲읍성 관덕정(觀德亭) 활쏘기 등 무술을 연마했다는 관덕정과, 남아 있는 사천읍성의 동벽 끝자락 모습이다.
이영천
성벽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작금의 분주함과 소음에도 오래된 성벽이 묵묵히 시간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겠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햇살 품은 성벽, 이들이 전하는 질감 속에 지난 역사가 스며있다. 성곽 아래 침오정을 지난다. 남아 있는 성곽과 사라진 성곽, 그리고 왜성과 읍성의 공존이라는 불편한 역사적 현시가 마음에 깊고도 잔잔하게 다가든다.
사천읍성을 거닐다 보면, 바람과 햇살이 전하는 감각을 통해 역사의 무게와 허전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돌과 흙, 바람과 햇살, 마른 풀의 흔들림이 겹치는 순간, 도심 한가운데서 과거와 현재도 무시로 겹쳐진다. 성곽은 고요히 시간을 품고, 오랜 숨결은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 삶을 말없이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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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버린 고된 노동, 사라진 성벽에서 얻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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