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점상 이상옥씨가 19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국화빵을 만들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당일 국회에 가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탄핵 집회 현장에서 어묵포차를 운영하기도 했다.
남소연
"노점하고 있으면 사연이 있다고 보시면 돼요. 여유 있는 사람이 노점하고 있겠어요?"
김이 폴폴 나는 계란빵을 집으며 이씨가 말했다. '왜 노점상을 택했나' 묻기도 전에 "저도 사연이 많죠"라며 20여 년 전을 회고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카드 규제를 대폭 완화하던 때였다. 성인이 된 이씨도 카드를 10여 장 발급받았지만 대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가 "철없이 흥청망청 돈을 썼다"라고 후회한 당시는 신용불량자 400만 명을 양산한 '카드 사태(2002년)' 여파가 한창이었다.
공장과 다단계, 성인오락실 등을 떠돌며 1억 원 빚을 갚던 이씨는 2003년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먼저 서울로 올라간 친구에게 노점 일을 소개받았다. 그때부터 강남과 경기도 성남을 거쳐 계란빵과 호두과자를 팔았다. 신용불량 딱지로 "일반 직장"엔 들어갈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장사가 22년째 이어졌다. 10여 년 전 빚을 청산하고 최근엔 신촌역에서 잠시 자리를 옮겨 홍대입구역에서 계란빵과 국화빵을 팔고 있다.
"너무 추워도 손님이 안 와요. 대신 오늘처럼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맞으니까, 손이 자유로우니까 많이들 포장해 가죠. 어서 오세요~"
통계에 잡힌 노점상들의 삶에도 이씨가 겹쳐 있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과 진보당이 실시한 '2025년 노점 운영 가구 설문조사'는 전국 노점상 914명이 놓인 현실을 비췄다. 노점을 시작한 이유는 '장애·채무 등 개인 사정으로 일반 취업 어려움(35%)'과 '사업 실패·실업(33%)'이 많았다(복수 응답). 노점 운영 기간은 '20년 이상(39%)'이 가장 많았다. 월평균 소득은 대부분 200만 원 이하(75%)였고, 주된 어려움은 '매출 감소(44%)'와 '단속(38%)'이었다. 이러한 생계형 노점상은 25~30만 명으로 추산됐다.
통계에 비하면 이씨의 수입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편차가 급격했다. 월 300만 원에서 유지되던 수입은 '코로나19'와 '12·3 비상계엄'을 지나며 30~40% 가까이 급락했다. 더구나 계엄이 터진 이후론 장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노점을 접고 국회로 나간 이씨는 대통령 파면 때까지 '노점상으로서 할 일'을 찾았다. 다른 노점상 동료들도 힘을 보탰다.
입소문 난 '국회 포차'

▲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이상옥씨는 노점상 동료들과 국회 앞에서 '오뎅 포차'를 운영했다. 계엄날 국회로 달려가 군인을 막아선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오뎅 나눔을 해볼까요?"
이씨와 동료들이 윤석열 1차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민주노련에 제안했다. "집회에 춥게 오신 분들께 따뜻하고 맛있는 국물을 드리자." 계엄날 국회로 달려가 군인을 막아선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고 이씨는 떠올렸다. 계엄 후 첫 토요일(12월 7일) 이씨와 동료들은 국회 앞으로 푸드트럭을 끌고 나가 '오뎅 포차'를 운영했다. 그날 1차 탄핵안이 무산되자 이씨도 함께 분노했다.
'탄핵 오뎅'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10m 넘게 줄 설 정도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씨는 파·다시마·멸치·디포리·고추·버섯 등을 다듬어 육수를 뽑았고, 납작·꼬지오뎅을 듬뿍 넣어 수천 인분을 만들었다. 윤석열 2차 탄핵안이 가결된 날(12월 14일)과 1차 체포영장 집행이 저지된 날(1월 3일)에도 이씨는 진보당의 제안으로 여의도·한남동에서 오뎅을 나눴다. "국물이 끝내준다", "격이 다르다"는 SNS 반응이 잇따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광장에 나가는 걸 멈추진 않았다. 이씨는 12·3 계엄 1년을 맞아 국회 앞에서 열린 시민대행진에 참석했다. 내란이 진압되고 정권이 바뀐 만큼 새해엔 국회가 힘을 모았으면 하는 '법안'이 있었다. 그 법안이 없어 "비일비재했던 단속"을 피해 도망치고 쫓겨났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씨가 치를 떨었다.
"잔인한 일상이었어요. 꿈에 나올 정도로요."
국회의 '소식' 기다리며

▲ 이상옥씨가 지난 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에 참석해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깃발을 흔들고 있다.
복건우
한때는 노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망을 보곤 했다. "빨간 경광등을 켠 1톤 화물차"가 나타나면 마차를 끌고 골목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용역 직원에게 잡히면 마차를 빼앗겼다. 화물차 아래로 기어들어가 저항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구청에 가서 '다시는 장사하지 않겠다'는 사유서를 쓰고 나서야 마차를 되찾았다. 이씨에 따르면 이러한 단속은 "한 달에 한두 번" 간격으로 되풀이됐다. "파라솔과 가스통을 뺏긴 적만 어림해도 수십 번"이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악몽을 꿨어요. 단속반에 쫓기는 꿈도 꿨고, 실제 단속당하는 꿈도 꿨고. 지금 노점이 있는 서대문구·마포구는 그나마 저희랑 협의가 돼 단속을 안 하지만 언젠간 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첫 번째 걱정이죠. 어쨌든 노점은 '과태료 대상'으로 여겨지니까요."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노점 단속 근거 규정은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마다 제각각이었다. 대부분은 도로법 61조(도로점용 허가)·74조(행정대집행 적용특례)와 '서울시 거리가게 가이드라인' 등을 준용했다(진보당 윤종오 의원실 자료). 서울시 가이드라인은 도로점용 허가가 제한·취소된 경우 거리가게 판매대를 스스로 철거하지 않으면 도로법에 따라 철거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 노점상 이상옥씨가 19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국화빵을 만들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당일 국회에 가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탄핵 집회 현장에서 어묵포차를 운영하기도 했다.
남소연
'단속과 철거'보다 '생존'을 모색하는 법이 노점상들에겐 필요했다. 그런 내용을 담아 노점상들이 직접 만든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을 이씨는 신촌역에 와서야 알게 됐다. 2022년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회부된 이 법을 두고 민주당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논의"(이동주), "적극적으로 검토"(김회재)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신중 검토" 입장을 내놨다. 해당 청원은 2024년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특별법은 노점상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인정하고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노점상 납세 의무'를 규정해 '노점상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불법·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한다는 점도 민주노련은 강조했다(현재 노점상은 소득세법·부가가치세법·지방세법상 '면제 대상'). 노점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면 지자체 산하 '노점상생계보호협의회(노점상·주민·상인대표 포함)'가 갈등을 해결하도록 했다. 노점상에겐 통행권 확보와 위생관리를 위한 '자율질서 사업'을 의무화했다.
특별법 발의를 추진 중인 윤종오 의원은 법 제정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삼둘둘(5322).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에선 노점상을 이렇게 코드번호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엄연한 직업이죠. 노점상 특별법은 노점을 무조건 허용하자는 것도, 무조건 불법으로 내몰고 단속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최소한의 상생 방안을 찾아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겁니다."
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제정되는 '소식'을 듣는 건 이씨의 "2026년 새해 바람"이기도 했다. "주민들에게 따뜻하게" 장사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이씨는 놓지 않았다. '공존과 상생의 계란빵'이 구워질 내년을 고대하며 이씨가 말했다.
"우리도 시민들과 같이 살아가는 '시민'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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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탄핵 오뎅탕' 만든 신촌 노점상의 '세금 내고 장사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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