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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만하다 싶을 때 뒤통수, 수영과 인생의 공통점

인생과 꼭 닮은 수영, 느리지만 나아갑니다

등록 2025.12.27 14:33수정 2025.12.2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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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영법을 배우는 수영장
다양한 영법을 배우는 수영장 unsplash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같은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음악에 살짝 당황했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내 몸 역시 저절로 반응한다. 아주 오래 전의 국민체조인데, 음악이 흐르자 몸은 자동적으로 그때의 동작들을 만들어낸다.

수영 수업 첫날의 기억이다. 여름이었다. 수영장의 시원한 물을 떠올리며 가볍게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두어 달만 다녀야지 했던 수영은, 애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현재진행형이다. 6월의 수영은 어쩌다 해를 바꿔 1월의 수영까지 오게 됐을까.


수영의 시작은 수영 수업이 아닌 국민체조다. 어릴 때는 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던 체조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체조를 하다 보면 몸 구석구석 찌뿌둥한 곳들이 하나둘 쭉쭉 펴진다. 상쾌하다.

다음 순서는 물속에서 킥판 잡고 발차기다. 이제 막 수영을 배우는 초급자든, 수영을 10년 가까이 배운 상급자든 동일하다. 일제히 물보라를 일으키며 힘차게 발차기하는 소리가 수영장 전체를 가득 메운다. '생기'나 '활력' 같은 단어를 소리로 바꾼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할 만하다 싶을 때 새롭게 어려워지는 수영

국민체조와 발차기를 마쳤다면 드디어 본격적으로 수영을 할 차례다. 그런데 이게 참 될 듯 말 듯하다. 국민체조도 발차기도 쓱쓱 했는데, 이쯤에서 주춤한다. 사실 영법이라고 해봤자 자유형, 평영, 배영, 접영 네 가지가 다다. 그래서 기본 영법만 배워도 물에서 뜰 수는 있으니 이 정도면 괜찮다 싶다.

그런데 이만하면 됐겠지 싶을 때마다 새로운 난관과 마주한다. 풀 부이(pull buoy)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자유형하기, 손에 저항 높이는 패들 끼고 자유형하기, 팔은 평영 발은 자유형하기, 롤링하면서 배영하기, 이마 위에 컵 올려 둔 채 배영하기, 접영 팔에 평영 발차기하기 등등 강사님이 제시하는 갖가지 변주 앞에 적잖이 당황한다. 할 줄 안다 생각했던 영법들이, 마치 처음 배우듯 새롭게 다시 어려워진다.


영법은 고사하고 가장 기초인 물 속 호흡부터 흐트러지기도 한다. 새로 배운 동작이 좀처럼 잘 되지 않을 때면 불필요한 동작들로 인해 물을 거스르게 된다. 물속 저항만 한가득이다. 그래서 당황하는 순간, 침착함을 잃는 순간, 호흡이 꼬인다. 몸은 기우뚱, 물은 인정사정없이 콧속으로 맵게 들이친다. 그러다 보면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절로 푸념이 나온다. 할 만하다 싶을 때 뒤통수를 치는 것이, 꼭 우리 인생 같다.

느리지만 나아갑니다


 어렵지만 매력적인 운동, 수영
어렵지만 매력적인 운동, 수영 unsplash

그런데 또 참 묘한 것이, 재밌다. 정확히는 힘들지만 재밌다. 강사님의 시범이 끝난 뒤면, 되든 안 되든 순서대로 물속으로 뛰어들 차례다. 해볼까 말까 고민할 시간 같은 건 없다. 일단 한다. 가르쳐 주는 강사님이 있지만 물속에서는 오롯이 혼자다. 시범 동작을 되새기며 호흡을,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떻게든 나아가려 애쓰면, 어느새 출발점에서 벗어나 있다. 몸으로 체득하는 운동인 만큼,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대로 된 동작에 가까워진다. 느릴지언정 말이다. 비록 나는 분명 기세 좋게 양팔을 착 펼치며 접영을 했는데, 관찰자 시점에서는 저 사람 저거 괜찮나, 구조요청 아닌가 싶은 우려를 자아낼지라도 말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조금씩이나마 나아간다. 나만의 속도로 내 앞에 놓인 25미터 레인을 끝까지 가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천천히 부드럽게 물속에 섞여 들어가듯 하는 날도 오겠지. 슥슥 물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기분 좋게 들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어렵고 묘하고 매력적이다. 어쩌면 이 또한 인생과 조금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영 수업이 끝난 뒤, 샤워실에서 탈의실에서 가벼운 담소가 오간다.

"언니야~ 나는 능력도 안 되지만, 윗반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상급반 가면 스트레스만 받고."
"그래~ 급하게 올라갈 필요 있나. 쪼매 더 빨리 가고 늦게 가고 차이지~"

또 다른 날은 나이 지긋한 두 수강생의 이런 대화도 들려왔다.

"잘하고 있어요?"
"잘은 못하고, 열심히는 하고 있어요."

조금 더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일 뿐. 잘은 못할지라도 열심히. 왜일까. 위로가 된다.

쏴~ 하는 샤워기 물줄기 소리,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드라이어 소리 등 분주한 일상의 소리에 묻혀, 여러 대화의 흐름 속에 묻혀 휙 지나가고 말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명언이 따로 없다. 수영장 샤워실은, 탈의실은 명언들이 일상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공간이다.

이제 곧 해가 바뀐다. 그게 뭐든 시작하기 참 좋은 때, 2026년 1월이다.

쩌렁쩌렁 수영장 전체를 울리는 강사님의 힘찬 구령 소리가 들려온다.

"출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그래서, 여행’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실립니다.
#새해 #운동 #수영 #도전 #실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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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여행하며 자주 글자를 적습니다. <그때, 거기, 당신>, <어쩜, 너야말로 꽃 같다> 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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