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12.27 16:58수정 2025.12.2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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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물을 끓이려 주전자를 찾는데 안 보인다. 전기 포트가 있지만 직접 불에 끓인 물을 좋아하는 나는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이상하다 여기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작은 목소리로 "주전자를 태웠다"라고 말씀하신다. 대추차를 끓여 먹으려 했는데 불 끄는 걸 깜빡 잊어버려 주전자를 다 태워서 열심히 닦는 중이라 하신다. 그러고 보니 구석에 닦다 만 주전자가 있다.
들여다보니 꽤 많이 닦였지만 그래도 거뭇거뭇 탄 흔적은 남아 있다. 분명 새카맣게 탔을 텐데 저렇게나 많이 벗겨낼 정도로 닦았다면 많은 힘과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냥 버리시라고 저기다 물을 끓여 먹으면 탄 게 계속 딸려나온다고 말하니 어머니가 아쉬운 목소리로 알았다고 하신다.
며칠이 지나 새로 사오신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데 버린 줄 알았던 탄 주전자가 구석에 오롯이 있는 게 보인다. 왜 버리지 않았냐고 하니 탄 부분이 많이 벗겨졌다며 저 만한 크기의 주전자가 흔치 않아 아깝다 하신다.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시는 걸까' 생각한다.

▲ 생생한 그날 그날의 기사는 희망을 준다.
임혜영
며칠 후 기시감이 드는 경험을 했다. 오래 전부터 두 종류의 신문을 보던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신문을 읽지 못한다. 쌓아 놓은 신문의 높이가 상당하다. 언젠가는 봐야지 라고 생각만 할 뿐이다.
보다 못한 남편이 보지도 않는 신문 당장 끊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어느 날은 쌓아 놓은 신문을 남편이 다 버리겠다고 해 나는 기겁하며 베란다로 신문 무더기를 옮겼다. 신문 더미를 옮기고 있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남편은 속으로 '왜 저리 고집을 부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 집에서 커피 물을 끓이고 있는데 어머니가 옆에서 "이것 봐. 주전자가 깨끗해졌어"라며 주전자를 보여주신다. 많이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탄 자국이 보인다. 기어코 안 버리실 건가 보다. 순간, 보지도 않는 신문을 버리지도 끊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겹쳐진다. 나야말로 괜한 고집을 부린다 싶어 이참에 신문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한다.
2025년 크리스마스에 나는 밀린 신문을 읽고 있다. 보다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버지께서는 신문을 보시며 우리 자매에게도 어린이 신문을 읽게 하셨다. 나와 동생은 맨날 만화만 봤지만 그래서인지 신문 보는 게 즐거운 놀이 같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신문을 즐거움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련된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 탐사하여 정제된 글로 올리는 양질의 기사를 앉은 자리에서 매일 읽을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결국 나는 올해도 신문을 끊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안방에서 야구 보는 것을 좋아해 한동안 야구에 푹 빠져 살았다. 나이 들며 스포츠를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어떤 계기로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책을 굉장히 좋아해 애서가로도 유명한 젊은 야구 선수가 독후감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수기인 겨울철에도 외국에서 동계 훈련을 하고 국내에 들어와 다시 또 훈련을 시작하는 고된 프로 생활을 하다 보면 번 아웃이 오거나 좌절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독서를 하며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다. 많은 야구 선수들이 가방에 '채근담'이나 '논어' 같은 책을 넣어 가지고 다니며 보는 이유가 야구는 '정신'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야말로 지지부진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짜증이 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할 때 희망적이고 고무적인 생생한 그날 그날의 글이 실려 있는 신문을 보며 마음을 정돈하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주전자와 나의 신문은 어쩌면 고집이고 핑계이다.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어머니께서 주전자를 버리지 못하는 게 혹시 어떤 추억이 있어서 아닐까. 돌아가신 아버지와 여러 가게를 다니며 당신들이 원하던 크기의 주전자를 마침내 사셨다든지 하는.
사실 저 만한 크기의 주전자는 인터넷에서도 그릇 가게에서도 구할 수가 없어서 새로 산 주전자는 훨씬 큰 것이다. 요즘은 저 크기의 주전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고집 앞에 '옹'을 붙여 완강함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어쩌면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는 이유 중에는 타인이 알지 못하는 소중한 무엇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 나도 자식들에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고집만 부린다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데에 방점을 두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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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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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주전자 버리지 않는 어머니, 그 고집이 이해가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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