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실 자료사진
Creative Commons Zero
대입 전형에서 학교폭력(학폭) 가해 기록은 치명타다.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에 따라 올해부턴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학폭 가해 기록을 대입의 모든 전형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기준이 강화되었다. 최근 한 지방 거점 국립대의 수시 전형에 응시한 학폭 가해자 18명이 전원 불합격 처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이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에서 어떻게든 학폭을 줄여보려는 고육지책이다. 이를 통해 학폭에 대한 경각심이 고취되었고, 학폭 가해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는 여론 또한 팽배해 있다. 교사들도 아이들 앞에서 학폭을 저지르면 그걸로 학교생활은 끝이라고 연일 강조한다.
그런데도 학폭은 줄어들 기미가 없고 나날이 흉포화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폭 신고 센터와 112 등에 접수된 학폭 신고 건수가 무려 72%나 증가했다. 학교에서도 봇물 터지듯 학폭 사안이 접수되면서 학생부장직은 기피 업무 '0순위'가 됐다.
관련 통계를 보면, 초등학교에서 학폭 피해 응답률이 높다는 점이 주목된다. 학폭의 해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화됐고, 덩달아 학폭에 대한 아이들의 민감도가 높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신고된 셋 중 하나는 별다른 조치 없이 마무리되지만, 사안 처리 과정에서 학교의 부담은 교육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고등학교에서 학폭은 변호사를 선임해 대처하는 경우가 확연히 늘어나는 추세다. 대입 전형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사안의 처리 과정에서 온갖 꼬투리를 잡아 이른바 '맞폭'으로 대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때마다 학교는 살얼음판을 걷듯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일단 학폭 사안이 접수되면, 학교는 화해를 권유하거나 중재하는 그 어떤 행위도 해선 안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한쪽에서라도 문제를 제기할라치면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둘 사이에 접촉을 차단하고, 사안 조사와 처리를 교육청의 학폭대책심의위원회에 넘기는 게 상수다.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
문제는 학폭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쌓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판단한 뒤 화해를 유도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건 교사의 당연한 책무일 테지만, 현행 제도상 엄격하게 금지된다. 되레 즉시 해야 할 업무는 피해 학생으로부터 '분리 의사 확인서'부터 서명받는 일이다.
피해 학생의 요청에 따라 가해 학생을 분리하면, 가해 학생은 최장 일주일 동안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없다. 해당 기간에 교과 담임교사들은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 별도의 수업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가해 학생의 학습권도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분노를 가라앉히고 학폭에 대해 숙려하도록 한다는 취지이지만, 교육적 효과는 거의 없다. 가해 학생에 대한 징벌적 성격이 강한 데다, 그가 머무는 공간에 매시간 교사가 임장해야 해서 학교의 부담도 적지 않다. 교실에 남은 피해 학생도 불편해하는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일단 분리되면, 둘 사이의 관계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사안 종결 뒤에 그나마 '소 닭 보듯 하는' 정도면 다행이다. 가해자로 처벌을 받은 아이가 온갖 꼬투리를 잡아 피해자를 가해자로 신고하는 사례도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요지경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학폭 신고를 한다는 건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다. 신고하면서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난에 표시한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다. 실제로 학폭대책심의위원회의 결정서에서 졸업할 때까지 접촉과 협박, 보복 행위를 금지하는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가 흔하다.
화해, 중재자, 또래상담자...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 과거엔 웬만한 갈등은 교사가 알아차리기 전에 아이들 스스로 해결했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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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서로 눈 부라리며 주먹다짐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동무한 채 교문을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교실 안에서는 앙숙처럼 지내다가도 다른 반 아이와 다툼이 생기면 기꺼이 제 편이 돼주는 아이도 있었다. 웬만한 갈등은 교사가 알기도 전에 아이들 스스로 해결했다.
교실 내에 싸움이 일어나면 앞다퉈 중재자를 자처하는 친구들이 여럿이었다. 분한 나머지 씩씩거리는 아이들에게 부러 찾아가 위로하며 화해를 끌어내는, 이른바 '또래 상담자'가 어느 학급에나 최소 한두 명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이들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고등학교의 교실에선 화해시키기는커녕 말리는 아이들조차 드물다. 무슨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빙 둘러서서 친구들 간의 싸움을 지켜보는 현장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올해 접수된 학폭 사안 중에 피해 당사자가 아닌, 친구 등 목격자가 신고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심지어 친구들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가 하면, 드물게는 피해자와 가해자 편으로 갈려 패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마저 있다. 지금껏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해결해 본 경험이 전무해서 생기는 사달이다. 이를 뻔히 지켜보면서도 '행정적인 사안 처리'만 요구받는 교사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학폭 사안 해결에 대해 아무런 '실권'이 없는 교사의 궁색한 처지는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다. 학교에 신고해 봐야 문제 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뿐더러 작성해야 할 서류도 많아 번거롭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학폭은 스마트폰을 켜서 112로 신고하는 게 직방이라는 거다.
교사의 개입이 불법인 양 치부되는 학폭은 이미 학교 울타리를 넘어섰다.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보호자 사이에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비화했고, 변호사의 도움이 불가피해졌다.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그어질 '빨간 줄'을 막기 위해 부모는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학폭에 대한 사회적 엄벌 분위기 속에 학폭 가해 기록이 대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도 학폭의 증가세는 멈출 줄 모른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폭 건수도 최근 해마다 갑절로 증가하고 있다. 학폭 가해 기록에 대한 대입 반영의 부작용을 직시하고 보완을 검토할 시점이다.
학폭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인 건 분명하지만, 대입 불합격과 같은 '응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온존한 학벌 구조에 기대어 학폭을 줄여보려는 심산 자체가 의뭉스럽다. 자칫 학폭의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가 학벌 구조라는 사실을 호도할 우려가 크다.
학폭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손을 떼다 보니, 학폭은 교육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돼버렸다. 학교마다 학폭을 전담하는 경찰관이 상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는 실정이다. 학생부장 스스로 교사가 아닌, 학폭 서류를 챙기는 '사무 보조원'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요컨대, 학폭 가해 학생도 교육을 통해 바룰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학교는 존재 이유가 없다. 철저히 사법화한 지금 학교의 학폭 사안 처리 과정은 교육은 사라지고, 오로지 처벌하는 게 목적처럼 돼버렸다. '응징 일변도'의 현행 제도 하에선 교육을 통해 학폭 가해자에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조차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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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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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기는커녕 빙 둘러싸고 싸움 구경... 학폭 제도가 만든 교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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