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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오그라든 몸, 따숩게 쫙 펴드립니다

[에디터조의 부릉부릉] 붉은 말의 해, 기운 넘치는 말 한 마디... 무탈한 한해를 기원합니다

등록 2026.01.05 07:00수정 2026.01.0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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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 주 월요일 오전 7시. 라이프플러스팀 에디터가 힐링 가득한 글로 당신의 아침을 고속 충전합니다.[편집자말]
"완전 작품이네."

감탄과 함께 가족 단체 대화방에 뜬 사진 하나. 연말에 어머니와 경주 여행을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찍으신 문무대왕릉 일출 모습입니다. 인공지능에게 부탁해 문구를 추가해봤습니다. '붉은 말'과 함께 담긴 글씨를 새겨줍니다. 병오년 첫 월요일 아침, 여러분께도 새해 인사와 함께 이 연하장을 띄웁니다.


 병오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병오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I생성이미지

지난 연말 사는 이야기 면에는 어느 때보다 따수운 '말'들이 찾아왔습니다. 추위에 오그라든 묵은 몸을 일으키듯 한 마디 한 마디 읽어나가다 보면 시작을 위한 훈기가 조금씩 마음 속에 차올랐습니다.

병오년을 '따뜻한 불의 해'라고 풀이하곤 합니다. 아직은 먼 봄을 기다리는 지금, 우리를 다정히 감싸는 말들로 하루를 포근하게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2025.12.30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2025.12.30 연합뉴스

미각

지난해 동짓날, 난생 처음 팥죽을 직접 쑤어 먹었습니다. 때마침 속속 도착한 팥죽 기사들 덕분이었는데요. 붉은 죽 한 그릇에 담긴 마음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마치 신년을 본격적으로 맞이하기 전 속을 데우는 에피타이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김이 한풀 꺾이고 나면 신기하게도 죽 표면 위로 얇고 부드러운 분홍빛 '막'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추운 겨울날 팥죽이 스스로를 보호하려 덮은 보들보들한 담요 같기도 했고, 자식들을 위해 어머니가 씌워둔 비단 덮개 같기도 했다."

'아, 나도 이 담요 아는데!' 했던 기사입니다. 글 끝에는 "가장 깊은 밤을 지나 비로소 밝아올 새해의 서광(曙光)을 기쁘게 맞이하길 기원드린다"는 인사도 붙어 있습니다. 어린 날 맛본 뜨끈한 한 그릇이 주는 여전한 힘. 함께 떠올리며 충전해 봅니다.


 따뜻한 동지팥죽.
따뜻한 동지팥죽. AI생성이미지

♥ 관련 기사 : 동지 팥죽 위 비단 덮개, 그 보드라운 맛을 아시나요

후각


새해를 시작하며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가까운 사람의 응원 한 마디, 따뜻한 눈길 한 줄이 아닐까합니다. 이따금 부족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디딤판에 발을 올려둘 때 "힘내", "괜찮아" 하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말.

♥ 관련 기사 : 6년째 미완인 우리집, 부부를 버티게 한 것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내집 짓기'로 고단해진 마음을 돌아본 기사입니다. 글 가운데 이 6년이라는 시간을 표현한 두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함께하기 위해, 그려왔던 그림이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기대에 못 미쳐도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렇게 부부로 자라온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를 버티게 하는 건 지금도 동일하다. 미숙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집중하며 자라온 시간들이다."

앞으로 다가올 알 수 없는 일들 앞에서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면, 조금은 덜 막막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글을 읽으며 마음 속으로 새해 결심을 덧붙입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일상의 소식들을 접하는 틈에도 다정한 글을 수집하고 전하는 일을 귀히 해야겠다고.

같은 기사를 쓰신 기자님이 길어올린 이해인 수녀님의 글도 함께 나눕니다. 꾸준히 나누고픈 "향기나는 글자"를 떠올려 보며 음미해봤습니다.

"저는 시를 완성하기 위해서, 글 꽃을 피우기 위해서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글자들을 마음속에서 자꾸 굴려 봅니다. 이 말이 적절할지, 더 향기가 나는 글자는 없을지 생각하면서요." - <민들레 솜털처럼> 중에서

♥ 관련 기사 : "넓어져라, 깊어져라, 순해져라" 이해인 수녀의 당부

촉각

'시작'이라는 말은 설레는 두근거림과 동시에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지난해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 '지금'이라는 새로운 시점 위에 가볍게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새 길로 가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일 일어날 일도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지금 일어나는 일 뿐입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새해가 오기 직전, 마지막달 12월을 '좋은 말 필사'로 보낸 기자님의 기사 속 인용구입니다. 꾹꾹 필압으로 정갈히 옮겨 쓴 글씨를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에도 새겨지는 기분입니다. 이따금 시작이 버거울 때, 오롯이 '지금'에 집중할 수 있는 문장 하나를 따라 써봐야겠습니다.

♥ 관련 기사 : 12월 1일부터 시작, 2025년을 보내는 특별한 방법

 '지금'을 위한 문장을 떠올리며.
'지금'을 위한 문장을 떠올리며. ashleywedwards on Unsplash

시각

사실 해가 바뀌었다고 해도, 흘러가는 일상은 어제와 다름 없는 날이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매일의 '시작'이 거창할 필요가 없겠다는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중에서

♥ 관련 기사 : 문학소녀들의 영원한 오빠, 그 추억에 흠뻑 빠져드는 곳

'내를 건너서 숲으로'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도서관을 다녀오신 기자님의 기사 속 시 한 편입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새해에도 '횡단보도를 건너서' 또는 '지하철 환승 구간을 넘어서' 갈 여러분의 많은 길들이 늘 안전하고 무탈하길 빕니다.

we_are_rising on Unsplash

분주한 하루를 마치고 출근길을 되돌아와 집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종일 나를 뒤쫓던 생각들이 다시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라이프플러스팀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것 중 하나는 바로 가득찬 생각들을 비울 수 있는 비법들이었습니다. 짊어진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는 틈을 내는 것. 달리기, 수영, 글쓰기, 요리... 그 방식도 다양했습니다.

"달리는 건 나에게 운동 뿐만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도구였고, 숨 쉴 틈이었으며 복잡한 삶에 질서를 잡아주는 명상이고 기도였다."

♥ 관련 기사 : 러너인데요, 이 글은 '일종의 고백'입니다

올해는 새로운 길을 앞둔 기합 사이에, "숨쉴 틈" 한 자락을 깔아두리라 다짐해봅니다.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법정 스님의 글귀를 함께 나눕니다.

명상은 언제나 새롭다
명상은 연속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새로움이란 새로 켠 촛불과 같다.
초 자체는 같아도.

- 법정 스님 <간다, 봐라> 중에서

여러분의 오늘 하루에 작은 초 하나 켜두는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마무리합니다.
#병오년 #붉은말 #사는이야기 #새해 #복많이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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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하는 모든 이야기가 '제때에 아름답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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