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12.29 17:04수정 2025.12.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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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 때문에 살겠냐. 다 너희들 보고 사는 거야."
일흔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갑작스레 이런 말을 꺼냈다. 설명도, 맥락도 없이 던진 한 마디였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한숨만 내쉬었다. 그 말이 고백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수십 년을 젖소 목장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유함'이 무엇인지 모른 채 평생을 일로 살아왔다. 삼남매와 부모를 책임지며 억척스럽게 살았고, 그 삶을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땀으로 만들어진 기름들 부모님께서 일년동안 농사지은 참깨와 들깨로 짜낸 기름들이 냉장고 안에 가득하다.
유수영
그런 아버지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2021년 봄이었다. 방광암 진단을 시작으로 병은 폐까지 번졌고, 지금까지 20번에 가까운 수술을 받았다. 투병은 2025년 12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협심증 진단까지 받았다. 가슴을 찢는 통증으로 정신을 놓을 뻔한 순간, 가족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아버지는 앞선 말을 꺼냈다. "다 너희들 보고 산다"라고.
지난 12월 24일, 엄마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춥겠는데구르마끌고오면 좋겠는대."(엄마는 핸디카트를 구르마라고 말씀하신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인 채였지만 단 몇 글자 안에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문자를 핑계 삼아 주말인 27일, 파주에 있는 본가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차를 타는 이동이었다. 전날까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기록했던 날씨 탓에 걱정이 앞섰지만, 그날은 다행히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 문산역으로 가기 위해 갈아탄 능곡역의 지하철 승강장.
유수영
문산역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역 바로 앞까지 차를 몰고 나와 있었다. 병을 앓은 뒤로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는데, 그날은 컨디션이 좋았는지 쉼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까지 가는 20여 분 동안 말이 끊기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맞장구를 쳤고, 순간순간 울컥했지만 애써 표정을 숨겼다.

▲기러기 본가로 향하는 동안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에 기러기들의 먹이활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수영
집에 도착하자 연골이 다 닳아 뒤뚱거리면서도 엄마가 계단을 바삐 내려오고 있었다. 얼굴과 발걸음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가장 먼저 꺼낸 말은 구르마 이야기였다. 돌아갈 때 가져갈 짐을 챙기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서둘렀다.
엄마는 저온저장고와 창고, 냉장고를 오가며 물건을 꺼내왔다. 조류독감 때문에 곧 계란값이 오를 거라며 이웃에게 얻어 온 계란 두 판을 삶아둔 것, 맛있다며 따로 챙겨둔 귤, 직접 농사 지은 참깨와 들깨로 짜낸 참기름과 들기름까지. 다리도 아픈 사람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카트는 금세 가득 찼다.

▲ 바리바리 싸주신 선물들이 핸디카트 안에 가득하다. 이후로도 과자와 젤리, 무와 고춧가루 등이 더 담겼다.
유수영
집 안에서도 잠시 쉴 틈은 없었다. 마흔이 넘은 딸 앞에 여전히 젤리와 과자, 과일이 놓였다. 김이 박힌 생과자와 설탕이 잔뜩 묻은 종합젤리는 어릴 적 먹던 그대로였다. 부모의 눈에 나는 여전히 돌봐야 할 아이였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엄마는 먹고 싶은 게 없느냐고 물었다. 말없이 웃는 나에게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게 생각났는지 낙곱새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차 안에는 엄마, 아버지, 이모까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나는 그 시간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낙곱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즐겨 드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분 역시 서로를 배려하다 선택한 메뉴였다. 그렇게 작은 오해는 웃음으로 지나갔다.

▲낙곱새 부모님과 이모가 함께 했던 저녁시간. 이 시간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낙곱새 너머로 엄마의 꽃무늬 조끼가 귀엽다.
유수영
해가 저물 무렵, 부천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엄마의 눈에 서운함이 고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겨울 들판이 흘러갔다. 부모의 병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삶은 불확실하다. 다만 새해를 앞두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구르마를 끌 준비를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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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나가는 인물과 장소, 고단한 날들에서 흘러나온 진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길 바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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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겠는데구르마끌고오면 좋겠는대" 문자 한 통에 파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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