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아이스와 얼음팩이 오가는 작업장에서 알게 된 책임감

쿠팡 물류 출고 파트에서 보낸 일요일 밤

등록 2025.12.30 08:15수정 2025.12.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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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저녁, 또다시 쿠팡 신선센터로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이번에 배치된 곳은 출고 파트였다. 지난주에 일했던(관련 기사 : 쿠팡 물류 알바 이탈자를 보며 마음 속으로 빈 것) 집품 파트에서 작업자가 바구니마다 물품을 담아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면, 출고 파트에서는 그 물품을 프레시백(다회용 포장상자)이나 종이상자에 담아 밀봉한 뒤 출고용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일을 맡는다.

안전화 안전화와 방한복,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하지만 냉동층이 아니었기에 아이젠을 벗어버렸다.
▲안전화 안전화와 방한복, 아이젠을 착용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하지만 냉동층이 아니었기에 아이젠을 벗어버렸다. 유수영

작업은 주문서 단위로 진행된다. 물품이 모여 있는 바구니를 가져와 화면을 클릭하면, 프레시백을 사용해야 하는지 종이상자를 사용해야 하는지가 표시된다. 종이상자를 선택해야 할 경우에는 상자의 크기까지 안내된다. 작업대 옆에 쌓여 있는 여러 크기의 상자 중 맞는 것을 꺼내 조립하고 테이핑을 하면서 포장이 시작된다.


바나나나 계란처럼 쉽게 깨질 수 있는 물품은 에어캡으로 한 번 더 감싼다. 냉장·냉동 제품의 경우에는 드라이아이스를 사용할지, 얼음팩을 사용할지와 필요한 수량까지 화면에 표시된다. 포장 자재가 떨어지면 작업자가 직접 입구 쪽에서 가져와야 한다. 바쁜 시간대나 비교적 여유가 있는 관리자의 경우에는 현장을 돌며 상자나 에어캡, 드라이아이스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신선센터 출고 파트의 작업장의 온도는 늘 서늘하다. 냉장·냉동 상품을 취급하는 곳이어서 일부러 온도를 낮추는 이유도 있지만 그와 함께 사용하는 드라이아이스와 얼음팩에서 나오는 냉기가 작업장 온도를 더 낮추는 데에 일조하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이 금세 차가워진다. 이 환경에서 맞이하는 저녁식사시간은 얼어 있던 손을 잠시 녹일 수 있는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뜨거운 국물로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작업자들은 종종 드라이아이스나 얼음팩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바쁘게 오가는 동선 속에서 그것을 제때 치우지 못하면, 바닥은 순식간에 미끄러워진다. 나는 그걸 미처 보지 못했다. 일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음을 밟고 넘어졌다.

안전화는 신고 있었지만, 차가운 바닥 위에 흩어진 얼음 앞에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시 일어나 작업을 이어갔지만, 안전화 안에서 발목이 점점 붓는 느낌이 들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신경 쓰다 보니 손놀림은 느려졌고, 곧 "속도를 좀 더 내달라"는 관리자의 재촉을 들었다.

결국 조퇴를 선택했다. 이런 발목 상태로는 오래도록 서서 작업을 이어가기 어렵겠다는 판단이었다. 관리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조퇴 허락을 받은 뒤, 퇴근 시간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탈의실로 가서 의류함에 방한복과 안전화를 반납했다. 퇴근 체크 기기는 켜져 있지 않아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건물 입구 퇴근시간이 아니라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가 없어 택시를 기다리며 입구를 촬영해보았다.
▲건물 입구 퇴근시간이 아니라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가 없어 택시를 기다리며 입구를 촬영해보았다. 유수영

집에 도착해 씻고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조금만 더 일을 하다가 정시 퇴근시간에 나왔어야 했던 건 아닐까, 남아 있는 다른 작업자들에게 부담을 남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새벽 네 시쯤, 쿠팡 신선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퇴근 체크가 되지 않아 내가 아직 현장에 남아 있는 것으로 인식됐다는 설명이었다. 관리자에게 조퇴 사실을 전달했지만, 내용 공유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상황을 설명하자 "알겠다, 푹 쉬라"는 말과 함께 통화는 끝났다.


월요일에 본업으로 출근을 해야했기에 다시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때에 내게 발목의 통증보다 더 오래도록 머릿속을 괴롭힌 것은 그 안에서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아르바이트 #일용직 #쿠팡 #신선센터 #물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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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나가는 인물과 장소, 고단한 날들에서 흘러나온 진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길 바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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