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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산불, 가뭄, 폭염, 홍수라는 단어들이 뉴스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이 위기의 중심에 있는 '물'에 대해서는,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제자들이 모였다. 토목과 환경 분야에서 20~30년을 연구와 실무로 살아온, 이른바 '물박사'들이다. 강의실도 회의실도 아닌 학교 식당 한켠에서, 피자와 치킨을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처음부터 거창한 주제는 아니었다. 올해 유난히 잦았던 산불 이야기, 비가 왔는데도 계속되는 가뭄 이야기, 현장에서 느끼는 답답함 같은 것들이 오갔다. "이상하지 않아요?" 누군가가 말했다. "비는 분명 왔는데, 물은 늘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홍수 이야기를 하다가 며칠 지나면 다시 가뭄 이야기로 바뀌는 현실 앞에서 식탁 위는 잠시 조용해졌다. 누구도 쉽게 답을 정리하려 들지 않았다. 그때 조심스럽게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가 물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온 건 아닐까요.
물순환 과정의 전체를 보자
대화는 우리가 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옮겨갔다. 비가 오면 홍수, 비가 안 오면 가뭄, 불이 나면 산불. 우리는 늘 사건은 잘 보았지만, 그 사이에서 물이 어떻게 움직이고 순환하는지는 충분히 보지 못해왔다는 데 생각이 모였다. 누군가 테이블 위의 피자를 가리키며 웃듯 말했다. 피자 한 판을 놓고도 누구는 삼각형이라고 하고, 누구는 정삼각형이라고 하고, 누구는 직각삼각형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국 한 조각만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피자 전체를 보지 않으면 그것이 어떤 음식인지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치킨을 집어 들던 사람이 말을 이었다. 치킨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조각만 보면 그냥 튀김이지만, 닭 한 마리를 다 보면 어디서 왔고 어떻게 나눠 먹어야 할지도 보인다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 낮게 말했다. 물도 그런 것 같다고. 우리는 늘 한 조각만 보고 전체를 안다고 생각해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기술보다 방향을 먼저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요즘 연구 동향으로 옮겨갔다. AI, 디지털 기술, 드론, 인공위성 같은 첨단기술들이 물과 기후 연구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따라가기 어렵다는 말도 곧 이어졌다. 너무 빠르고,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묻곤 한다. 그런 연구들이 지금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알고 싶은 해법을 과연 직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는지 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중요한 단서는 주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법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무엇을 먼저 바꿔야 하는지까지 대신 판단해주지는 못한다는 말이었다. 기술은 혼자 앞으로 갈 수 없고, 사람들이 이해하고 따라오고 함께 써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개별 기술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 기술들을 어디에 어떤 순서로 왜 써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전체를 보는 통찰력이 아닐까 하고.
우리땅에는 우리 방식의 물관리 (수토불이)가 필요하다
대화는 외국의 물관리 사례로 이어졌다. 그래서 외국 사례를 그대로 가져와도 자꾸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우리는 너무 오래 외국의 것이 더 좋다고만 생각하며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전에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유럽에서 만들어진 이론들이 몬순 기후에 사는 우리나라나 동남아시아 지역에 그대로 맞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비가 내리는 방식도, 땅이 물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물과 함께 살아온 시간의 밀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 땅에는 우리 물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누가 정리한 결론도 아니었고, 선언처럼 던진 말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도달한 생각이었다. 예전에 쓰이던 말, 수토불이. 물과 땅은 둘이 아니라는 그 말이 지금에 와서야 현실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그날 식당에서 정답이 정리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물을 홍수와 가뭄 같은 사건으로 나누어 볼 것이 아니라, 순환 전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순환은 언제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식당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의 실체를 과연 나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하고. 어쩌면 이 글은 물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쓰고 살아가는 것들의 실체를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제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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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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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물을 전체로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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