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민신문
추락을 거부하는 돼지의 등을 수톤의 힘을 가진 포크레인 팔이 찍었다. 척추가 부러졌고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허리가 동강난 채 구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냥 떨어진 돼지들은 그나마 네 발로 서서 꿈틀거렸지만 허리가 부러진 놈들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 돼지를 다른 놈이 밟고 벽을 긁어댔다. 자기 키보다 족히 열배가 넘는데도 쉴 새 없이 긁어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구덩이 바닥이 돼지들로 가득차면 다음엔 그들의 머리위로 흙이 뿌려졌다. 아비규환, 숨 한 번 쉬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등을 밟고 주둥이를 잔뜩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몸부림보다 포크레인 삽질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묻혔다.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우리 안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던 돼지들이...
똑같은 작업이 반복됐다. 돼지가 쌓이고 흙이 덮이고, 석회가 덮이고.... 나는 점점 무감각해져갔다. 그저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
밤을 꼬박 세워가며 작업했던 다음날 아침, 작업 위치 교대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구덩이 앞쪽에 배치됐다. 가장 하기 싫었던 자리다. 추락하는 돼지며 바닥이 너무 잘 보이고 포크레인은 바로 앞에 있다. 이제는 그저 돼지들이 거부하지 말고 순순히 빠져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삽과 널빤지로 구덩이 입구 폭을 좁히는 작업을 했다. 돼지들이 옆으로 새다가 포크레인 공격을 받을까봐서였다. 그 덕에 처음엔 순조로웠다. 뒤에 오는 돼지들에 밀려 빠져나갈 틈 없이 차례로 추락했다. 똑같은 비명에 똑같은 발버둥. 점점 더 무감각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한 마리가 추락을 거부하며 튀어오르고 돌아서서 우리쪽으로 달려왔다. 놀란 우리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여지 없이 포크레인 팔이 그 녀석의 등을 후려치고 척추가 부러지는 쩍 소리와 함께 하늘을 찌르는 비명이 터졌다. 바로 내 눈 앞에서...
미칠 것 같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들고 있던 유인용 작대기를 집어 던지고 자리를 빠져 나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농장 담벼락에 기대앉아 이게 무슨 짓인가, 전쟁이라고 이것보다 더 잔인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10여 분을 그렇게 있다가 다시 위치로 복귀했다. 그런데 이번엔 포크레인 삽날에 배가 찍혀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 일부가 튀어나온 돼지가 구덩이 반대쪽을 내달렸다. 어떤 직원이 쇠봉으로 보이는 작대기로 머리를 내려쳤다. 나는 그 직원을 안다.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선한 눈을 가진, 행사 때 재미나게 사회 보던 친구였다. 우리는 그렇게 거기서 눈이 뒤집혀 있었다.
드디어 우리 안에 있던 돼지들을 모두 구덩이에 몰았다. 이제 끝났구나 했는데 아직 일이 남았다며 어떤 시설 앞에 두 줄로 서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미 출동한 지 스무시간 쯤 됐을 텐데. 지칠대로 지쳤고 빨리 끝나기만 소원했다.
그런데 마지막 작업은 어이없게도 새끼 돼지 살처분이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니 일주일이나 됐을까? 그런 아기돼지들을 두 줄로 서서 양 팔에 각각 한 마리씩 들고 구덩이에 빠뜨렸다. 당시 아기 돼지의 따뜻하고 여린 느낌을 15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이 기억한다. 동원된 인원 한 사람당 두세차례 쯤 작업(?)했던 것 같다.
작업 도중에 참이라며 컵라면이 나왔는데 바닥에 그대로 철퍼덕 주저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야속하게도 하얀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바로 옆에는 구덩이에 빠진 돼지들이 빠져나오려고 소리를 지르며 긁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컵라면 먹는데 방해되지 않았다. 그 곳에서 나도 변해있었다.
투입된 지 서른 시간쯤 지났나? 작업을 마친 우리는 방역복을 갈아입었던 컨테이너에 돌아와 팬티만 빼고 모두 태웠다. 그렇게 첫 번째 살처분 작업이 끝났다. 하룻밤 사이 4천 마리가 넘는 돼지들이 매몰됐다.
집에 돌아와 아무 생각 없이 골아 떨어졌다. 집사람 말로는 내가 자면서 손을 이리저리 허우적대며 헛소리를 하더라고 했다. 왜 그러나며 말은 못 하겠고 꽤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집단 살처분, 집단 학살의 다른 이름
나는 이런 살처분 작업에 여섯 번 차출됐다. 나 뿐만 아니라 남성 공무원들 모두 같은 신세였다. 작업이 너무 잔인하고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 남성들만 차출됐다.
당시 전국의 공무원들이 똑같은 신세였을 것이다. 횟수만 달랐을 뿐. 동원될 때마다 조금씩 효율이 높아지고 방법도 개선되긴 했다. 그러나 구덩이에 산채로 매장하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당시 우리 지역의 돼지 2/3가 매몰됐다. 전국적으로도 2010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약 3백만여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구제역만이 아니었다. 조류독감도 번져 양계농가들을 습격했다. 조류독감이 유행병처럼 된 20여 년 동안 1억 2천만여 마리가 살처분됐다고 한다. 해마다 평균 5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들이 희생된 것이다.
집단 살처분은 동물을 대상으로 자행된 '제노사이드'의 다른 이름이다. 인류를 위해 우유와 계란을 내어주고, 끝내는 제 몸까지 내어주었건만 인간은 그들을 집단 학살했다. 닭을 살처분할 때 닭장 전체를 밀폐하고 가스를 넣어 질식사시킨다고 한다.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독가스실과 무엇이 다른가!
다행히 돼지와 소들에 대해서는 백신 정책으로 바뀌어 독감이나 코로나처럼 백신을 투입하고 발병 개체만 처리한다고 한다.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닭을 포함한 가금류들은 아직도 대량 살처분 정책 뿐이다. 이제 닭들에게도 마찬가지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 하고자만 한다면 방법이야 없겠는가. 이제 정말 동물들을 집단 학살하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감이 모든 일에 앞서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다. 그래야 진정 사람이다.
경기도민 임송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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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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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살처분, 동물을 대상으로 자행된 '제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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